"버는 돈 0원, 받는 연금도 0원" 이런 일 생길라…'65세 정년시대' 오나
[편집자주] 정부가 정년연장 검토에 착수한다. 국민연금 보험료 내는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단 우려를 넘어 '65세 정년시대'를 열 수 있을까.
'100세 시대'를 맞아 정부가 근로자의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방안에 대한 검토에 착수한 가운데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연금·의료·노동·교육 등 4대 개혁 가운데 연금개혁 차원에서 제시된 방안이다. 국민연금의 고갈을 늦추기 위해 근로자들이 일하면서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늘리자는 취지다.
그러나 정년연장을 위해선 임금피크제 확대 등 임금체계 유연화와 청년층과 장년층의 세대 간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의 '연금개혁 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 확보 및 실질소득 제고 방안 중 하나로 현재 60세 미만인 국민연금 의무가입상한을 65세 미만으로 5년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방안이 시행될 경우 국민연금을 타려면 연금 보험료를 현행 59세가 아닌 64세까진 내야 한다.
정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 연장을 검토하는 것은 연금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국민의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고령자들의 경제활동이 늘어난 상황도 고려했다.
현행 규정으로도 임의계속가입을 통해 64세까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경우 사업주가 보험료의 절반을 지원할 의무는 없다. 보험료 의무 납입기간 동안 근로자와 사업주가 반반씩 연금을 부담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국민연금 의무가입상한을 5년 연장하는 방안은 정년연장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
실제로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 조정은 고령자 계속고용 여건 개선 등과 병행해 장기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라며 연금납부 기간연장과 정년연장을 함께 다루겠다는 구상을 전했다.
정부의 정년연장 검토는 장기적으론 저출생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와도 무관치 않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장례인구추계 상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올해 5175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선 뒤 2030년 5131만명, 2072년 3622만명으로 급감할 전망이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 3674만명에서 향후 10년간 332만명씩 줄어들어 2072년 1658만명에 그친다. 반면 2022년 898만명인 고령인구는 2025년 1000만명을 넘고 2072년에는 1727만명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앞으로 50년 내 고령인구가 생산연령인구를 넘어선다는 얘기다.
국회에선 이미 정년연장을 골자로 한 법률 개정안들이 제출됐다. 22대 국회 들어 서영교·박정·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이 같은 취지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들 법안은 구체적인 내용에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는 법 19조를 고쳐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선진국들은 근로자의 정년이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 이미 정년을 폐지했다. 미국은 1986년 정년을 없애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영국은 경찰처럼 육체적 능력이 필요한 직업을 제외한 나머지 직군에선 정년이 사라졌다.
한편 실제 정년연장을 위해선 임금피크제 확대 등 노동시장의 임금체계 유연화와 세대 간 일자리 갈등 조정 등의 과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년연장은 사업주에겐 임금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기업의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고임금 직종 등에서 청년들을 위한 새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정년연장시 '5년 더' 일하게 되는 장년 세대가 생산성 저하분 만큼 임금 일부를 양보하는 등의 임금체계 유연화가 정년연장의 필수조건으로 꼽힌다.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강훈식·박정·박홍배·서영교(성명 가나다순·이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년 연장의 내용을 담은 고령자 고용법(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아직 상정 전이다.
이들 의원은 대부분 우리나라 고령화 진행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을 들어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봤다. 한 국가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도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7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를 넘겨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8년 만이다.
서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우리나라의 2022년 기준 65세 이상 고용률은 36.2%로 지난 10년간 6.1%P(포인트) 상승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고 65세의 기대여명은 21.6년으로 OECD 평균 대비 남자는 1.5년, 여자는 2.5년 더 높은 수준"이라며 "현장에서는 업무 경험이 풍부하고 숙련도가 검증된 고령 근로자를 계속 고용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법에서 정하고 있는 정년을 높여야 한단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정년이 60세인데 비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앞으로 더 늦춰져 '연금 크레바스'(빙하의 틈, 직장에서 은퇴해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무소득인 기간을 뜻함)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법안도 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현행 조정 계획에 따르면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23년 63세에서 2028년에는 64세로, 2033년에 65세로 5년마다 1세씩 상향된다.
박홍배 의원이 낸 개정안은 '정년에 관한 적용 특례' 부칙을 통해 정년 연령을 법 개정 시행일부터 2027년까지는 63세로, 2028년부터 2032년까지는 64세로, 2032년 이후에는 65세로 높이는 방안을 담았다.
박홍배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많은 국가에서 노동력 부족과 연금재정, 노인 빈곤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은퇴자들이 연금을 지급받게 될 때까지 소득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용을 연장하는 등 연금정책과 고용정책을 연계해 정년 연장을 강제하는 추세"라며 "OECD에서도 최근 우리나라에 정년제 폐지와 연금 수급개시연령 상향을 권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직전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들이 발의됐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년 연령을 법으로 일률적으로 높이다보면 기업 측면에선 부담이 되는 게 현실"이라며 "고용주와 노동자간 입장차가 있고, 고용주라 할지라도 사업장 규모에 따라 입장들이 다르고, 최근 또 다양한 고용 형태들이 생기다보니 해당 입법 관련해서는 먼저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고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 노인빈곤, 저출생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데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과 맞물려 정년 연장에 관한 논의는 국회에서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난 4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민주당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 민주당의 서영교·김주영·박홍배 의원은 공동으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동시장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정년연장 입법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고 학계와 노동계 의견을 수렴했다. 민주당은 비슷한 내용의 토론회를 다음주에도 준비중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주영 의원은 6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정년 연장의 문제는 단순히 고용자와 노동자 간 입장이 다른 문제 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 문제도 있고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어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과정이 필요하고 국회에서도 그런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고 저출생 문제는 심각해지고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인 점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있어 정년 연장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건 맞다"며 "국회에서도 좀 더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김훈남 기자 hoo13@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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