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 열렸다…문재인 겨눈 검찰의 칼, 퇴임 뒤 윤석열은 넘어갈까
검, 전직 대통령 표적 수사 재개
“사위 월급=뇌물”은 비상식적
국정동력 상실 탈출의 희생양?
정치보복 악순환 부메랑 될 수도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겨레신문에 ‘돌아보고 내다보고’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16일치 12회에 ‘검찰정권의 등장’을 썼습니다. ‘‘수사 포퓰리즘’으로 개혁 맞선 검찰’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8월30일치 13회에는 ‘‘명백한 운명’ 검찰의 정치 진출’을 썼습니다. ‘검찰 의지해 싸우던 여야 모두 패자 신세’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저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여러차례 쓴 적이 있어서 관심 있게 읽고 있습니다. “승자는 검찰일 뿐이고, 보수 역시 패자나 다름없다. 잘 봐야 들러리다. 한국의 정당, 정치인들은 말처럼 사냥꾼인 검찰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때론 사슴처럼 사냥꾼에게 당했다. 그 덕에 그들은 입과 등에 족쇄를 차야 했다. 마부에게 멱살 잡힌 꼴이다.”
검찰은 막강합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졌습니다. 시퍼렇게 날을 벼린 긴 칼과 같습니다. 칼은 살아 있습니다. 피를 부릅니다. 휘두르는 사람이 칼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칼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이외수 작가의 장편소설 ‘칼’이 그런 내용입니다.
윤 대통령, 얼마나 관여했나
칼이 또다시 피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8월30일 전주지검 형사3부(부장 한연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의 서울 주거지를 압수수색했습니다. 8월31일 밤 문화방송(MBC)이 그 압수수색 영장에 문재인 전 대통령 이름과 뇌물수수라는 죄명이 적시되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아무개씨가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이 소유한 타이이스타젯 항공에서 받은 월급(약 800만원)과 타이 체류비(약 350만원)의 총액인 2억2300만원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보고 수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뇌물수수 피의자로 입건한 이상 검찰은 머지않아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검찰청사로 소환할 것입니다. 아마도 구속영장까지 청구할 것입니다. 그게 검찰의 생리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이상합니다. ‘유죄 추정’의 색안경을 낀 검사의 눈에는 뇌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위가 받은 월급을 뇌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밀고 나가려면 좀 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수사에 얼마나 관여했느냐입니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리는 없습니다. 두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시로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표적 수사하는 경우입니다. 둘째,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내버려두고 있는 경우입니다. 사실 별 차이는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문재인 전 대통령을 사법 처리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의 중심에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창수 지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대변인을 했습니다. ‘윤석열의 입’이었던 셈입니다. 그는 2023년 9월부터 올 5월까지 전주지검장으로 재임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전주지검은 이상직 전 의원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이 된 대가로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를 타이이스타젯 항공에 취업시키는 방식으로 뇌물을 줬다는 고발 사건 수사를 재개했습니다. 3년 이상 덮어두었던 사건의 봉인을 해제하고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전방위 수사에 나섰습니다. 최근 문다혜씨 서울 주거지 압수수색도 그 연장입니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곧 전주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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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특정한 시점이 지난해 11월인지, 최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본래 문재인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자신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발탁해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개인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여러 잘못은 문재인 전 대통령 주변의 ‘반국가세력’이 한 것이지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 것은 아니라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초기에 문재인 정부 고위직 출신 정치인이 그를 만나서 “딱 한가지만 부탁한다. 전직 대통령 사법 처리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달라”고 요청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탈북어민 강제 북송 의혹’ 등을 수사하면서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들을 줄줄이 구속하고 기소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을 입건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몇가지 정황 때문에 저도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사법 처리하는 일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예측했습니다. 결국 저의 예측은 엉터리였던 셈입니다. 어쨌든 윤석열 정부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이 바뀐 것일까요? 바뀌었다면 왜 바뀌었을까요?
전직 대통령 수사, 고도의 정치적 사안
전직 대통령 수사는 단순한 형사 사법 절차가 아닙니다. 고도의 정치적 사안입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국정 동력을 상실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 만회를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이번 사건의 파문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태의 심각성 때문일까요? 이른바 보수 신문 사설 논조도 엇갈렸습니다. 중앙일보는 9월2일치 사설에 이렇게 썼습니다.
“검찰도 사안의 무게가 막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건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발된 지도 3년이 넘었다. 의혹이 있다면 서둘러 조사해 기소하거나 혐의가 잡히지 않으면 신속히 종결해야 했다. 그런데 수사를 질질 끌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서야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으니 나빠진 여론을 돌리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란 뒷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이도 저도 입증하지 못한다면 정치보복 차원의 망신주기 수사였다는 비판을 피할 도리가 없다. 신속, 공정, 엄정한 수사를 기대한다.”
반면에 조선일보 9월2일치 사설 제목은 ‘‘문 가족 비리’ 감싸려면 ‘박 경제 공동체’ 판결문부터 보라’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경제 공동체로 엮여 뇌물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정당하다는 논리입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조선일보의 주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9월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권 초기 전직 대통령 2명이 구속되고, 숱한 보수 진영 인사들이 구속당할 때 민주당은 적폐청산이라며 열광했다. 여당일 땐 적폐청산, 야당일 땐 정치보복이라는 민주당의 내로남불에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재원 최고위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돌이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그 돌은 당신들이 벌인 적폐청산 광풍, 그리고 당신들이 벌였던 그 국정농단이라는 죄를 뒤집어씌워서 많은 사람들을 교도소로 보내고 피를 뿌리게 했던 그때 당시에 던진 돌이다. 이제 당신들로 날아갈 것이다.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두 사람은 대구·경북 정치인들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대구·경북의 정서는 좀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의 고위 정치인들이 ‘우리도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봐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온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지옥문 열린 듯
우리나라에서 정치보복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평생 김대중 대통령을 미워했지만 사법 처리를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임기 말에 대통령 선거를 두달 앞두고 ‘디제이(DJ)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검찰에 수사 유보를 지시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형사 책임을 전임자인 김영삼 대통령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세풍’ 사건 때 이회창 총재를 사법 처리하지도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때 이회창 총재를 사법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달라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지지율이 바닥을 치자 전임자를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결국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의 역풍으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박영수·윤석열 등 검사들을 앞세워 두 전임자를 사법 처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이라고 했고, 보수 세력은 ‘정치보복’이라고 했습니다.
적폐청산의 예리한 칼이었던 윤석열 검사가 보수 정당에 입당해 대선후보 자리를 거머쥐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은 한편의 거대한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은 역설적으로 정치보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왜냐고요?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검사 시절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라는 말을 한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다 틀렸습니다. 아무래도 지옥문이 열린 것 같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법 처리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퇴임 뒤에 어떻게 될까요? 검찰이 같은 식구라고 봐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칼은 피를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뒤를 잇는 다음 대통령은 또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 대통령 자리는 비참하게 죽거나 감옥에 가는 저주를 받은 것일까요? 우리가 이 저주를 풀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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