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한 재료의 조화, 한국 절밥 대단해…중요한 건 음식 철학"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요즘에는 이것이 건강에 좋다느니, 저것이 더 좋다느니 하면서 상당히 가식적인 트렌드도 있지만 사찰 음식은 전혀 가식적이지 않습니다."
최근 방한해 사찰 음식을 맛본 영국 런던의 유명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 런던의 학과장 셰프인 에밀 미네프(50)는 "정성을 다하고 간소한 재료들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며 한국 절밥을 극찬했다.
4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미네프 셰프는 "30년 넘게 요리사로 일하고 일본이나 홍콩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음식을 만나본 적은 없다"며 "특히 오신채(五辛菜·마늘, 달래, 무릇, 김장파, 실파 등 자극적인 5가지 채소)를 쓰지 않으면서 이렇게 맛을 내는 것은 놀랍다"고 강조했다.
2016년부터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미네프 셰프는 런던 소재 한국문화원과 함께 한 행사에서 사찰 음식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을 계기로 2020년 르 코르동 블루 런던의 교육과정에 한국 사찰음식 강좌를 도입했다.
사찰 음식의 매력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사찰음식 명장인 정관스님이나 사찰음식 장인 법송스님 등을 만나 대화하면서 절밥에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음식 이면에 있는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
불교에서는 밥을 먹는 것을 단순히 굶주림을 면하는 행위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일종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정관스님의 지도를 받아 절밥을 체험하는 이들은 젓가락을 들기 전에 "이 밥은 /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이 빚은 / 모든 생명의 선물"이라고 공양송을 읊으며 먹는 행위에 담긴 의미를 돌아본다.
미네프 셰프는 이와 관련해 사찰 음식이 "채식이 유행하는 것처럼 근래에 나타난 트렌드가 아니라 불교의 수행 과정에서 수천년간 자리 잡은 하나의 생활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르 코르동 블루 런던의 사찰음식 강좌가 교육 프로그램에 단순히 사찰음식 레시피를 끼워 넣은 것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사찰음식 명장을 굳이 멀리까지 초청하는 것은 "음식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려면 대면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런던에서 개최하는 김치를 활용한 요리 경연대회의 심사위원도 미네프 셰프는 맡고 있다. 일반적인 한식과 사찰음식의 매력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핵심적인 차이는 마늘이다. 일반적인 한식에는 마늘이 들어가고 사찰음식에는 마늘이 안 들어가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깻잎을 활용해서도 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놀라웠다"며 방한 중 처음 본 깻잎무침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미네프 셰프는 기후 변화 등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도 사찰음식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기후 변화는 정치인 등이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크고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사찰음식이 환경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인류가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중 하나라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 사찰음식을 세계에 더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달라고 하자 "나는 며칠간 잠을 거의 못 자서 매우 피곤하지만, 친구들에게 '정말 대단하다'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벌써 나름대로 홍보하고 있다"면서 사찰음식을 접해 본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가리아 출신인 미네프 셰프는 미슐랭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고 몰디브와 도쿄의 샹그릴라 호텔 앤 리조트에서 총주방장을 지내는 등 셰프로서 명성을 쌓아왔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초청으로 1일 입국해 전남 장성군 백양사 천진암, 대전 영선사, 서울 은평구 진관사 등에서 사찰 음식과 명상 등을 체험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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