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의 창업, 망하려고 작정했냐고요?”[서영아의 100세 카페]

대구=서영아 기자 2024. 9. 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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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2막]
시집 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詩’ 책방지기 이석대 씨
“일흔은 호기심과 열정의 나이”
모두가 뜯어말려도 내 갈 길 간다
6070, 흐르는 세월에 떠내려가지 말자
13평 책방서 누리는 설렘과 ‘갇힌 자유’
“내 시집이 책방에…” 시인들 감사 답지
자매 책방 늘리기, 책 읽는 세상 꿈꿔
그가 책방 주인으로서 본명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겸손하고 부끄러움 많은 이씨는 아무리 카메라를 들이대도 제대로 정면을 봐주지 않았다.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시집전문서점 산아래 詩 내외부를 한 컷에 담았다. 이석대 씨 제공

남들은 하던 일도 접는다는 나이 일흔에, 이석대(71) 씨는 불쑥 책방을 내겠다고 나섰다. 가족을 제외한 모두가 반대했다. 잘 나가던 서점들도 줄줄이 문닫는 판에, 책 중에서도 가장 안 팔린다는 시집만 파는 책방이라니. 하지만 고집과 뚝심은 그의 힘의 원천. 지난해 5월 ‘산아래시(詩)’ 라는 간판을 단 독립서점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왜 가족은 반대하지 않았을까.

“워낙 오래 전부터 제가 말해왔거든요. 더 나이 들면 작은 책방 하나 내겠다고.”(이석대 씨)

그의 딸 현경 씨도 “당연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의 존재는 딸 현경 씨가 최근 보내준 책 ‘일흔살의 창업일기’를 통해 알게 됐다. 표지에는 “은퇴한 뒤/‘여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이 땅의 6070님들께/ ‘일흔’/ 이 출렁이는 기운을 바칩니다”라고 씌여 있다. 100세 카페에 딱 맞는 컨셉이다.

그는 인터뷰에 응할지 여부를 놓고 무척 망설였다. 책 저자는 ‘이동림’이라는 필명(아명)이었고 그는 이름 없는 책방지기가 되고자 줄곧 본명을 숨겨왔다는 것. 겨우겨우 인터뷰를 약속한 이튿날 아침, 다시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책방이 알려져 자매 책방들의 기를 살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조명이 맞춰지는 건 아닌 것같다’는 얘기.

결국 인터뷰는 자매 책방 대표님들도 모시고 지난달 26일 진행했다. 그가 이 책방 주인으로서 본명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의 시인들에게 시집 우송받아 판매

시집전문책방 ‘산아래 詩’는 대구시 남구 현충로 앞산 카페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엔 카페로 쓰이던 13평 공간을 빌려 책꽂이를 설치했다. 나머지는 시집들이 저마다 색깔과 내공을 뽐내며 공간을 채워준다. 초록색 바탕에 하얀 글씨로 된 간판로고. 꼬부랑 전선줄로 늘어뜨려진 전등까지, 소박하지만 세련된 장식품들은 모두 그의 수제품이다.

책방 한켠에 놓인 액자에 쓰인 ‘시가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문장도 글씨도 이 씨의 작품이다.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책방 열고 1년 여,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고맙다’였다고요.

“시인들은 시집을 보내며 ‘고맙다’고 하시고 손님들도 고맙다고 하셨죠. 많은 시인들이 ‘시인되고 처음으로 내 책이 책방에 걸렸다’고 감격해 했습니다. 그 정도로 독자를 기다려온 시인들이 많습니다.”

시집만 파는 책방이 개업을 앞두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자작 시집을 챙겨들고 찾아오거나 택배나 소포로 보내는 시인들이 늘었다. 어쩌면 책방이라기보다 참여시인들의 작품집을 한곳에 모아놓은 ‘시집 전람회장’이다.

멀리 지방에서 감격에 겨워 책을 싸들고 찾아오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책방에 걸면 어울릴 것 같다며 그림을 보내주는 시인도 있었다. 산아래시에는 8월말 현재 350여 명의 시인이 회원으로 등록해 있고 시집 390종이 진열돼 있다. 200여 명의 시인들이 모인 단체카톡방도 운영된다.

“지난해 6월에 책 판 돈을 처음으로 송금했는데, 기껏해야 몇천 원씩이죠. 그런데 그걸 받아본 한 분이 단톡방에 ‘내 시집 팔렸다! 제주도에 땅 보러 가자!’라고 올리더군요. 하하.”

시가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전국 시인들과 직거래를 통해 위탁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시인들이 시집을 10부씩 보내주면 책방이 전시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것.

책장 모서리마다 산아래시의 각종 안내들이 붙어 있다. 시집을 꼭 사야 하는 책방이 아니라는 안내(첫 사진). 독자들에게 ‘좋은 시집’을 따로 추천하지 않는다는 안내(가운데 사진). 시집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옆으로 아래 위로 자리를 옮긴다는 안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장롱 속에 쌓여 있던 책들이 보내지니 동네책방의 고민인 사입 비용이나 재고 부담이 없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이 책방이 망할까봐 모두가 걱정인 듯하다. 책을 보내주며 ‘책값은 필요 없으니 서점 운영에 보태라’는 시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고집있는 원칙주의자다. 책값을 송금할 계좌번호를 주지 않으면 책을 진열해주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또 처음 보내온 10권이 다 팔려도 한동안은 새로 주문하지 않겠다고 미리 밝혔다. 아직 안 팔린 다른 시집들도 기회를 얻어야 하므로.

운영원칙은 더 있다. 시집들은 독자들을 고르게 만날 수 있도록 수시로 자리를 옮겨가며 진열된다. 손님이 ‘좋은 시집’을 추천해달라고 해도 절대 응하지 않는다. 책방에 비치된 시집이 모두 다 ‘좋은 시집’이기 때문. 시집에 집중하기 위해 커피나 소품을 팔지 않는다. 시인들에게는 팔린 책값의 60%를 매달 정산해준다.

지난해 6월 서울시인협회 간부가 찾아와 이런 시스템 설명을 듣고는 “출판물 유통구조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수도권에서도 이런 책방 운영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고. 대구수필가협회는 비슷한 방식으로 ‘에세이 전문책방’을 검토한다고 했다.

―시인들과는 처음에 어떻게 연결이 된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시인들끼리 아는 시인들을 초대해서 많이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개념의 서점 창업이 가능했지요.”

―대부분 무명시인입니까?

“이름이 덜 알려진 분들이 많죠. 그런데 저희는 무명이건 유명이건 본인이 보내주면 팝니다. 예컨대 김재진, 안도현 시집도 본인들이 보내줘서 팔았습니다. 이건 호주 교민 시인이, 이건 인도네시아 교민 시인이 보내온 거예요. 제가 한 1년 해보니까 소위 무명 시인 작품들 중에 주옥같은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운이 나빠 매스컴에 덜 나오고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 뿐이예요.”

인터뷰를 돕기 위해 출동해준 산아래시 자매서점 1호점 지기 조미숙 씨(가운데)와 2호점 지기 김민석 씨와 함께.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6070, 은퇴했다고 주저앉지 말자

―나이 일흔에 책방을 낸 이유는?

“책방은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젊을 때 친구 여러명이 투자해 책방을 냈다가 망한 적도 있죠. 하하.여기 더해 6070세대가 흐르는 세월 속에 속절없이 떠내려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을 봐도 매일 산이나 도서관에 가거나 집안에서 눈치보며 빈둥거리는 모습들입니다. 흐르는대로 세월 보내기에는 시간을, 내 삶을 허투루 여기는 것같아서 안되겠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6070세대의 평생 훈련되고 축적된 지식과 업무역량이 ‘나이’ 때문에 멈춰버린 채 낭비되는 게 너무 아쉽고 안타깝지요. 이들이 다시 한번 든든한 ‘현역’이 되도록 우리 삶의 현장으로 불러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흔’이 다시 ‘호기심과 열정의 나이’가 되도록 눈빛을 초롱초롱 밝혀야죠. 제게는 그게 책방이었습니다만, 마음만 고쳐먹으면 다시 도전할 일이 책방 말고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럼 왜 시집만 파는 책방일까요?

“누군가가 해야 할 일 같았습니다. 몇 해 전에 시인인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작품을 모아 시집을 펴냈는데 주위에 몇권 나눠줬을 뿐, 서점에는 한권도 깔린 적 없고 책장 한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다고. 문단에는 이런 시인이 많다’고. ‘그중에는 빼어난 작품도 많은데 도대체 독자를 만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하더군요.

저는 시를 쓰지는 않지만 시 한편 마무리할 때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산고를 겪었을까 짐작은 갑니다. 오랫동안 꿈꿔온 대로 내가 만약 책방을 열게 된다면 이 소중한 시집들만 모아서 독자 앞에 널리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 보람을 많이 느끼는 중이시군요.

“제가 겪어보니 시인들은 개성이 강한 분이 많고 근본이 선합니다. 시집을 사러 오시는 분들도 내가 사회생활할 때 겪었던 많은 분들보다 더 선해요. 그래서 이 시집 책방이 잘 돼야 된다는 생각을 제가 거듭거듭 하게 됩니다.”

시집책방 창업교실 “세상에 시를 뿌리자”

지난해 낸 책 ‘일흔에 쓴 창업일기’는 그가 책방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했다. 적당한 점포를 구하고 사업자등록과 은행계좌 개설, 청소와 인테리어까지 모두 손수 해나가는 과정을 시집을 닮은 편집의 책에 담았다.

2월부터는 ‘세상에 시를 뿌리자’는 슬로건을 걸고 시집책방 창업교실을 두차례 열었다. 강좌에 참여한 수강생들이 창업을 시작해 대구 경북 부산에 자매책방 5곳이 문을 열었고 올해안에 충북 청주, 경기 안성 등 4곳에서 오픈을 준비 중이다. 자매책방들은 기존 영업장 구석에 책방을 내는 ‘샵 인 샵’ 형태가 대부분이라 책꽂이만 준비하면 개업준비가 끝난다.

자매책방 1호인 개정칠곡점 책방지기 조미숙(57) 씨는 현직 중학교 수학교사이자 지난해 11월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5월 가족이 운영하는 비빔밥 체인점 귀퉁이에 책방을 열었다.

“준비에 2주일 정도 걸렸어요. 시인들 단톡방에 ‘제가 책방을 하려는 아무개입니다’하고 주소 올리면 그 200분이 각자 5권씩을 일제히 보내주세요. 일주일이면 1000권이 배달되는데 그걸 주욱 진열해주면 바로 책방 오픈입니다.”

5월에 자매책방 1호를 낸 조미숙 씨는 본인이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산아래시에 진열된 자신의 시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산아래시 2호점의 간판 옆에 선 김민석 씨. 돼지국밥 프랜차이즈 식당 한켠에 책방을 차렸다. 김민석 씨 제공
―본인도 시인이시니 더 공감이 됐겠군요.

“제 시집도 지인들 나눠주고 많이 남았어요. 산아래시 책방의 존재가 너무 반가웠죠. 여기 가져다두면 누군가가 그걸 사준다니. 더 놀라운 건 제 시집을 처음으로 사준 사람이 우연히 이 책방에 들른 제 옛제자였어요. 이 선생님이 바로 사진 찍어 보내주셨는데 너무 신기했죠.

제 책이 누군가에게 팔리고 그 피드백이 오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예요. 1호점 창업을 한 이유도 저같은 분이 많을 거란 생각에서입니다. 써놓고 인쇄는 했는데 줄 데가 없는 시집들의 갈 곳을 찾아드리자. 이제 제 꿈은 이 시인들이 북 콘서트 같은 거 편하게 할 장소를 제공하는 거예요.”

2호점주가 된 김민석(32) 씨는 경산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국밥집 한구석을 책방으로 꾸몄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손님들 반응은 좋다고 한다. “언젠가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내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며 “시집은 마음의 건강 담당”이라고 한다.

2월에 연 시집책방 창업교실. 지금까지 5곳에 자매책방이 문을 열었고 올해 내에 너댓군데 더 생길 것으로 전망한다. 대부분 영업장이 있는 곳에 책방을 설치하는 경우다. 이석대 씨 제공

자매책방은 이 씨에게도 큰 힘을 주고 있다.

“책방들이 더 늘어나고 책방지기들이 보람도 느끼고 신명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독자들이 쉽게 시집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는 열망 같은 게 생겼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이런 말도 합니다. ‘산아래시’ 하면 대구에서 유명한데 왜 자꾸 자매책방을 만드냐. 너 혼자 독점으로 하면 잘 될 건데, 너 장사꾼 맞냐고. 그런데 돈 생각하면 책방 하면 안되지요.”

책방지기의 시선

그가 제일 좋아한 손님들 얘기를 통해 그가 가진 책방에 대한 또다른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경부터 매주 오던 중1(당시) 남학생 2명이예요. 목, 또는 금요일 오후 5시쯤 와서는 저 탁자 밑에 가방 놓고 의자 두 개에 앉습니다. 새로 들어온 시집이 있으면 한 번씩 들고 훑어보고 자기들끼리 종이 가져다가 필사도 합니다.

그리고는 서로 읽어주고 마주보고 웃고. 그렇게 한시간 가량 놀다 가는 거예요. 어찌나 예쁘던지, 저기 사탕바구니도 제가 그 아이들 먹으라고 갖다놓은 겁니다.

지금까지 시집 한 권 안 샀지만, 와서 노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아이들이 저렇게 해맑게 웃고 시를 베끼는 마음을 간직한 채 성장해서 사회에 나간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좀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내가 이러려고 책방을 하는 거다…. 뭐 이런 생각들이죠.

그런데 이 아이들이 5월쯤부터 안 보여요. 2학년일 텐데, 학원을 다니게 됐으려나….”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정면에서 맞이하는 이 자리가 책방지기의 지정석이다. 가급적 서서 독서를 하는 편이라고.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이씨의 자리에서 본 책방 너머 세상. 중1 남학생들이 저 의자에 앉아 시를 읽고 베껴쓰며 놀다가 돌아가곤 했다고.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책방 유리창에 붙여놓은 책방지기의 ‘시에 대한 생각’.

그는 언론인을 거쳐 지역 건설회사에서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외환위기 직후 부도로 직원 120명이 한꺼번에 ‘잘릴’ 상황이 되자 그는 협력업체 1400군데에 편지를 보냈다. ‘회사를 나가야 할 직원들에게 격려 전화라도 해주시고 여력 되신다면 채용해주십사’고. 이 일은 당시 중앙일간지에도 보도됐다.

그 1년 뒤엔 그도 회사를 나갔다. 총무팀장으로서 40여 명의 구조조정을 담당한 뒤 ‘남아 있을 면목이 없다’며.

당시 나이 50세. 부인이 운영하던 작은 광고기획디자인회사 ‘밝은 사람들’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회사는 매년 전국규모 기획디자인상을 수상하며 지역사회에서 정평을 얻고 있다.

정작 그 자신은 젊은 직원들의 참신한 생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4~5년 전부터 업무를 내려놓았다.

‘갇힌 자유’를 만끽하는 칠순

―책방 경영은 괜찮으십니까.

“월세 80만 원 빼고는 돈 들어갈 일이 별로 없어요. 책방 열고 나서 친구들과 밥먹고 술먹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책방 하느라 한 달에 몇십 만 원 손해봐도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밥값 술값 쓰는 것 생각하면 남는 겁니다.

이 책방에 들어올 때 나이 칠십인데 좀 삶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전화번호부터 정리했어요. 1500개 넘던 번호를 절반으로 줄였는데, 시인들 만나느라 다시 200명 넘게 늘긴 했지요.

빈 가게를 혼자 지킬 때는 정말 면벽좌선하는 수행승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 나이엔 그런 시간들이 참 뜻깊고 귀하더군요. 예전엔 밖에 돌아다닐 때 자유로운 줄 알았는데 책방에 묶여 지내면서 갇혀 있는 게 자유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갇혀 있는데 이 안에서 자유로운 거죠.”

이 씨는 13평 책방을 지키며 ‘갇힌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나이 들수록 외로움과 친구가 돼야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들 하시더군요.

“늙어가면서 제가 철없이 살아왔다는 걸 깨닫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일 잘 못 해준 사람이 배우자예요. 젊어 아무 것도 모르고 가난한 월급쟁이에게 시집와서 평생 시부모님 봉양하고 아이들 키웠는데. 내가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서 빚 좀 갚아야겠는데, 별로 갚을 방법이 없어요. 업고 다닐 수도 없고 돈이 많아서 자꾸 줄 수도 없고. 그저 설거지라도, 집안청소라도 틈나는 대로 해주면서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밖에 없더군요. 그냥 제가 더이상 마음고생만 안 시켜도 다행이다….”

―세상을 주도하던 어르신들이 인생 늦으막히 배우자, 가족의 소중함을 토로하시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처음부터 잘 하시지….

“맞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걸 좀 미리 깨달을 수 있다면 가정만 평화로워지는 게 아니고 사회도 달라질 겁니다.”

비록 그가 만든 건 동네책방 하나지만 꿈은 훨씬 창대하다.

“작은 책방들이 여기저기 자꾸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동네마다 들어서는 작은 책방들이 우리 문화생태계와 일상에 새로운 진화의 동력으로 수혈되면 좋겠습니다. 골목마다 카페가 늘면서 커피 수요가 폭증하듯이 동네마다 책방이 많이 생긴다면….”

올곧고 고집스런 칠순 책방지기는 오늘도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히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계산대에서는 그의 ‘일흔에 쓴 창업일기’도 판매되고 있다.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대구=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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