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가 쏘아 올린 국적 논란... 100년 전 우리는 일본인?

윤한슬 2024. 9. 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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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일본 국적" VS 한덕수 "당연히 한국"
일본, 내지·외지 구분… 법체계도 달라
"한 나라라면 같은 법 적용했어야"
"한일병합조약 무효, 일제 신민 아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당시 언급한 '일제강점기 선조 국적은 일본'이라는 주장을 공개석상에서 되풀이하면서 일제강점기 국적을 두고 때아닌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장관은 3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일제강점기에 거주한 한국민 국적은 어디냐'라는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민국이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되었기 때문에 (당시) 대한민국 국적은 없었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다음 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도 같은 취지로 발언했다. 1965년 한일 회담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무효화를 합의했더라도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없는 사실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선조들은 일본 국적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김 장관의 주장이다. 그는 고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일본 대표팀으로 출전한 점을 들며 본인의 논리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선조들의 국적은 당연히 한국 국적"이라며 "일본의 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건 정말 오산"이라고 말해 김 장관과 정반대 입장을 보였다. 역사적 사실은 하나지만, 그에 따른 해석은 정반대로 엇갈렸다. 김 장관의 주장대로 우리 선조들은 일제강점기 시기 정말 일본인이었을까.


'조선인', 일본인과 다른 취급… 내지·외지 구분

1910년 8월 29일 반포된 한일병합조약. 한국학중앙연구원

한일합병 당시만 보면 국적에 대해서는 공식화된 내용이 없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한일병합조약 원문을 보면 한국(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 황제에게 양여한다는 내용과 한국 황제와 그 후손의 지위에 대한 내용만 언급돼 있을 뿐, 일반 신민(시민)에 대한 국적이나 법적 지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본은 합병일인 1910년 8월 29일 칙령 제318호 '한국의 국호를 개정하여 조선으로 하는 건'을 공포하며 한국의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대한제국 신민들을 조선인으로 칭했다.

조선총독부는 법률을 대신하는 '제령'을 발표해왔는데, 제령에서 일본인과 우리 선조들을 엄격히 분리했다. 1912년 3월 조선총독부 관보에 제령 제13호가 실렸는데, 조선태형령에 대한 규정이었다. 조선태형령 제13조에는 '본령은 조선인에 한해 적용한다'고 적시됐다. 일본인과 한반도 인민은 다르다는 점을 명시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대외적으로 조선은 일본의 영토이고, 조선인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일왕(일본 황제)의 신민이라고 주장해왔으나 대내적으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엄격히 구분해왔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1918년 4월 '공통법'을 시행하면서 일본 제국의 내지(內地)와 외지(外地)를 구분했는데 일본 본토가 내지, 조선과 대만, 사할린 남부(1944년 내지로 편입) 등 식민지를 외지로 분류했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내지와 식민지 상태에 있던 한국, 대만 등 외지는 권리가 분명히 달랐고, 법체계도 달랐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역과 호적에 따라 차별을 뒀다. 한반도 인민이 외견상, 형식상 일제 신민(일본 국적자)으로 분류됐을지라도 어디에 적을 뒀는지, 현 거주지가 어디인지 여부 등에 따라 권리와 대우가 천차만별이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호적에 따른 차등, 거주지에 따른 차등이 있어서 같은 일제 신민이라 할지라도 신민으로서 온전한 권리를 갖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며 "조선인이 일본에 거주하면 참정권 행사가 가능했던 반면 일본 내지 호적에 등재된 사람도 조선에 거주하면 제국의회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일본인이라면 같은 법 적용됐어야"

1943년 '타라와 전투'에서 승리한 미군의 감시 아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부상당한 동료들을 살피고 있다. 미국 태평양전쟁 박물관 제공

일본은 필요에 따라 한반도 인민에게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며 때로는 일본의 신민, 때로는 그렇지 않게 취급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적법이다. 일본은 자국에 있는 국적법을 한반도에서는 시행하지 않았다.국적법을 적용하면 국적자로서 국적을 버리는 것이 가능해져 자칫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반도가 일본 영토가 됐다면 같은 법을 적용하는 것이 상식일 텐데 일본이 상황에 따라, 편의에 따라서 일관성 없이 법을 적용해 이런 (국적) 논란이 벌어졌다"며 "일본 신민의 자격은 법률에 따라 정하게 돼 있고, 그걸 정한 것이 국적법인데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필요할 때만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 신민으로 여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손기정 선수처럼 조선인도 해외에 나갈 때는 표지에 '대일본제국'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여권을 발급받았다. 물론 여권에 이 사람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외에서는 일본인 취급을 받았던 셈이다.


핵심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

외무부(현 외교부)가 1986년 7월 24일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한 내역과 '대한제국이 체결한 다자조약의 효력확인' 문서 표지. 국가기록원

국적 논란과 동시에 언급되는 것이 1910년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의 불법성이다. 국무위원 후보자에게 물어야 할 질문으로서는 '일제강점기 국적이 무엇이냐'보다는 '일제 침략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가 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론 후자가 본질적인 질문인데 이를 국적을 통해 묻다 보니 불필요한 논쟁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제가 한국을 병합한 것이, 식민 지배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대한 견해만 물으면 되는데, 국적을 따지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며 "선조들이 일본 법제하에 살았고, 만약 일본 법제상 일본 국적이라고 보더라도 한일병합이 불법이라 무효였다면 논리상 일본 국적을 강제로 부여받은 것도 무효가 돼 더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일병합조약은 1910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의 이름으로 조인됐고, 그해 8월 29일 반포됐다. 그간 한국 정부는 해당 조약이 애초부터 불법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반면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을 통해 사후적으로 무효가 된 것일 뿐, 체결 당시에는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외교부는 지난달에도 일제의 국권 침탈이 불법·무효인지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광복회의 요청에 해당 해설을 인용하며 원천 무효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한일병합조약이 우리 국민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체결됐고, 이에 따라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은 그간 일관되게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는 게 외교부 공식 입장이다.

반면 김 장관은 한일병합이 무효라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4일 새벽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동일성은 계속 유지되는 것"이라고 명시한 1986년 외교부 공식 문서 내용에 동의하냐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의 질문에 거듭 "동의를 못 하겠다"고 답했다.

1986년 7월 24일 외무부(현 외교부)가 작성한 이 문서는 을사늑약과 한일강제합방조약 등이 무효임을 밝히고, 과거 대한제국이 타국과 맺었던 다자조약의 효력을 확인하고 조약번호를 부여한 문서다. 이 문서는 당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된 정부 공식 문서인데도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김 교수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무효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한반도 통치권이 일본에 넘어간 적이 없어서 일제의 영토가 된 적도, 일제의 신민이 된 적도 없다는 의미"라며 "일본의 입장은 조약이 유효해 조선인이 천황의 신민이라는 것이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서 보면 선조들은 일본 국민이었던 적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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