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만 덥지 않다. 요즘이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에 몸 둘 바를 몰랐더랬다. 그런데 24절기가 참 묘하다. 처서가 지나면서 맹렬한 더위가 눈에 띄게 꺾였다. 한낮 거리도 땀은 흐를지언정 복날에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다가왔다는 얘기다.
하늘도 더 높아졌다. 푸름도 더 짙어졌다. 새로운 계절의 색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이 시기 마음껏 가을 정취를 뽐내는 한 곳을 꼽으라면 제주를 빼놓을 수 없다. 푸른 하늘에, 은빛 억새 물결 그리고 제주만이 주는 계절감까지. 제주 자체가 가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플러스는 제주관광공사와 함께 제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가을 나들이를 먼저 떠난다.
해안도로 달리기부터 해녀 체험까지
야외활동하기 딱 좋은 계절, 더위에 지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고 자연으로 나가보자. 맑은 공기 마시며 숲길을 차분하게 걸어 보거나, 푸른 바다를 보며 해안도로를 달리면 일상에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풀릴 것이다. 여기에 해녀 체험의 특별한 추억까지 더해진다면, 제주의 가을이 한 뼘 더 가까이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차분하게 숲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일단 숨을 깊게 내쉬어 보자. 청정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 몸은 재충전을 시작한다. 지저귀는 새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 소리는 복잡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게다가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숲길에서의 걷기는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숨이 차오를 만큼 힘차게 움직이고 싶다면, 탁 트인 바다를 따라 해안도로를 달려보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제주 러닝크루 게스트로 참여해서 같이 달린다면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좀 더 특별한 추억을 위해서는 해녀 체험만한 것이 없다. 해녀와 함께 물질과 문화를 배우는 진짜 해녀 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기존 해녀 체험과 다르게 해녀 삼춘들과 함께 물질을 배우고 베테랑 해녀들과 함께 바닷속을 누비며 해산물을 잡는다. 직접 잡은 소라, 문어 등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해녀 물소중이 옷을 입고 사진 찍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바다 수영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며 제주의 바다를 만끽해보자.
눈부신 은빛 억새부터 핑크뮬리까지
가을바람을 타고 은빛 억새들이 물결친다. 화창한 날, 오름을 오르며 억새를 감상하는 것은 으뜸 감상법이다. 새별오름과 따라비오름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가을이 무르익으면 억새가 풍성하게 피어난다. 신촌리 닭머르 해안은 노을 질 때 가보면 저무는 해와 잔잔한 바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억새를 만날 수 있다. 은빛 물결 속에서 제주의 가을을 기록해보자.
서양 억새라 불리는 핑크뮬리도 가을을 빛낸다. 화사한 핑크 숲 사이를 거닐다보면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설레는 기분이 든다. 마치 우리를 동심으로 데려다주는 느낌이다. 손끝에 부드럽게 닿는 촉감마저도 기분 좋다.
말고기부터 갈치국까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가을은 제주를 두고 한 말 같다. 가을을 맞은 제주는 편견을 깨는 말고기 요리에서부터 맛있게 매운 양념에 볶아 먹는 돼지고기 두루치기, 그리고 푹 끓여낸 보양식 생선국과 식개(제사)음식 등 더위에 도망갔던 입맛을 되찾아줄 ‘맛’이 넘쳐난다.
제주에서 먹었을 때 더 맛있는 음식하면 말고기는 제격이다. 질기고 냄새난다는 건 오해이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육질을 먹어보면 그 맛에 푹 빠지게 된다. 말 육회부터 고소한 구이, 담백한 샤브샤브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육즙 가득한 말고기 패티가 들어간 수제버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별미다.
제주하면 돼지고기도 빼놓을 수 없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만큼 맛있는 매운 양념에 볶아 먹는 두루치기는 한 끼 식사로 딱이다. 콩나물과 파채, 무채를 듬뿍 넣고 입맛 돋우는 멜젯을 얹어 먹는 상추쌈 한 입은 상상만으로 군침이 돈다.
푹 끓인 생선국 한 그릇은 보양식으로도 좋다. 통통한 갈치와 배추, 숭덩숭덩 썬 노란 호박이 들어간 진한 갈치국, 전갱이를 맑게 끓인 각재기국 그리고 담백한 멜국까지,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맛은 가을에 더욱 맛난다.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진국 옥돔지리와 장대국도 놓치지 말자.
경북 안동에 헛제삿밥이 있다면 제주에는 식개(제사) 음식이 있다.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 특별한 식문화는 제주 사람들의 제사상에서 전통적으로 차려진다. 혹시 추석 명절 쯤 제주를 찾는다면 제주 전통 식개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통통한 옥돔구이와 돼지고기, 소고기, 상어고기 등으로 만든 고기산적, 삼삼한 빙떡과 고소한 전까지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맛보다 보면 밥 한 그릇은 금세 비운다.
폐교의 색다른 변신
가을 감성과 낭만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추억 소환 여행을 떠나보자. 문을 닫았던 분교들이 먼지를 털어내고 새롭게 단장했다. 폐교를 살리기 위해 카페와 문화공간, 마을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어음분교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변모해 넓은 잔디밭과 트램폴린, 놀이터까지 갖추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 좋다.
삼달분교를 개조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미술관에서는 20여 년 동안 한라산과 오름을 담아온 김영갑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자연사랑미술관에서는 제주의 삶과 문화를 기록해 온 서재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경을 기억 하고 있는 사진으로 어제의 제주를 만나보자.
여행지에서의 노래와 책 한 구절은 그날을 함축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LP카페를 찾아 음악을 음미하며 사색에 잠겨보자. 선선한 바람에 저절로 책에 손이 간다. 에세이, 소설, 시집 등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활자가 전하는 깊은 의미를 사색하자.
복잡한 도심 벗어나 즐기는 자유로운 캠핑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가을의 어느 날을 평온하게 채우고 싶다면 자유로운 캠핑은 어떨까.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는 온 데 간 데 없다.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데크에 텐트를 설치할 수 있고, 캠핑장비가 없다면 휴양림을 이용해서 즐길 수 있다.
맑은 공기가 가득한 이곳에서 그동안 쌓인 피로를 씻어내 보자. 방해받지 않는 고요한 밤, 오롯이 나를 위한 하루의 끝자락에서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고 별빛을 조명 삼아 잠을 청한다. 아침이 되면 기분 좋게 일어나 숲길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하자. 자연에서 머무는 하루는 아늑한 쉼이 돼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