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병원 응급실 ‘진료 중단·축소’…“불안하고 막막해”
정부, 군의관들 파견 나섰지만
현장 근무 부적합 교체 요청도
추석 앞둔 주민들 답답함 호소
5일 세종시 도담동에 있는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응급실 앞. 시간이 오후 6시를 넘어가자 적막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를 바쁘게 실어나르던 119구급차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고, 병원 자체 구급차도 주차장 한편에 멈춰 섰다.
저녁 7시께가 되니 그야말로 개미 새끼 한마리 볼 수 없었다. 이곳이 세종시 유일의 지역 응급의료센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7시가 조금 넘어 응급실 앞에 급하게 멈춰 선 승용차에서 아파 보이는 아이를 안고 한 여성이 내렸다. 이 여성은 “아이가 열이 많이 올라 응급실에 왔다”며 “소아 응급실이라도 운영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응급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날 충북 건국대학교충주병원 응급실을 찾은 한 환자의 보호자도 “다행히 오후 5시까지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해 진료를 받았다”며 “하지만 신장내과 의사 선생님이 없어 여기서는 검사만 받을 수 있었고 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다시 가야 한다”며 구급차를 타고 급히 떠났다.
의료 중단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지역 곳곳의 대형병원 응급실이 야간과 주말 진료를 중단·축소하고 있다. 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주민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세종충남대병원이 1일부터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응급실 야간 진료 중단에 들어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매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응급실 문을 닫고 있다. 앞서 8월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 진료를 중단하거나 축소했는데, 전문의 부족 상황이 더 악화하며 급기야 야간에 응급실 불을 아예 끈 것이다.
이 병원 응급실은 교수 3명과 촉탁의(계약직) 12명 등 15명으로 운영되다 최근 교수 1명과 촉탁의 3명이 사직한 데 이어 이달 1일자로 촉탁의 4명이 추가로 그만둬 7명만 남은 상황이다.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 인력인 12명에 턱없이 부족하다.
강원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병원도 비슷한 상황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가운데 2명이 휴직에 들어가면서 2일부터 야간 응급실 진료를 제한해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성인 환자 진료를 받지 않고 있다.
건국대충주병원 응급의료센터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중 5명이 현장을 떠나면서 이달부터 응급실 의료 제한에 들어갔다.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지만 응급실 접수는 응급처치 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오후 5시까지만 받는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문을 닫고 추석 연휴에도 응급의료센터가 멈춘다.
24시간 운영은 고사하고 응급실 존립 자체가 우려되자 보건복지부는 최근 군의관 파견에 나섰다. 하지만 이도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종충남대병원은 4일 응급의학과 전문의 군의관 2명을 급히 파견받았지만 이들이 응급실 근무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5일 시에 군의관 교체를 요청했다.
5일부터 군의관 5명이 출근하기 시작한 강원대병원에서도 군의관들이 실제 의료 현장에 투입될 때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병원 내부 전산시스템 등에 대한 기본 교육이 필요한 데다 맡길 수 있는 업무 범위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강원대병원 관계자는 “현재 3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24시간 진료를 도맡고 있기에 교수나 촉탁의를 새로 확보하지 않는 한 응급실 축소 운영이 불가피하다”며 “군의관이 응급실에 근무하면 도움이 되는 부분이야 있겠지만 응급실 정상화까지 바라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 여러번 모집 공고를 내고 교수들도 직접 인력을 알아보고 있지만 지원자 자체가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역주민들은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충주에 사는 안연수씨(68)는 “80세가 넘은 시어머니가 건국대충주병원에서 열흘 정도 입원해 있다 상태가 호전돼 최근 퇴원했다”며 “이곳에 그동안의 모든 의료 기록과 익숙한 의사 선생님이 있어 위급한 상황에서 발 빠른 조치가 가능한데 추석 연휴 동안 응급실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혹시라도 상태가 악화되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농기계 사고 위험에 늘상 처해 있는 농민들의 불안은 더 크다. 지난해 관리기로 땅 갈아엎기(로터리) 작업을 하다 농기계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다는 세종시 주민 장모(75)씨는 “그때도 저녁 무렵에 다쳤는데 다행히 가까운 곳에 세종충남대병원이 있어 바로 이송될 수 있었다”며 “만약 다시 사고를 당한다면 멀리 대전이나 충북 청주 등지로 가야 하고 시간이 30분 넘게 더 걸린다”고 말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전모(56)씨는 “야간에 누구든지 사고를 당하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응급실 불은 꺼져서는 안된다”면서 “특히 심장질환 등 지병이 있는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응급실이 문을 닫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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