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고급연필 뒤에만 붙어있던 은색 테두리…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9. 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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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34] 연필과 꼭지 지우개 사이 이음쇠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사진 출처=Kim Gorga, unsplash]
명사. 1. 페룰【예문】한 수험생이 긴장한 얼굴로 연필의 페룰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페룰(ferrule)이다. 연필과 꼭지에 달린 지우개를 연결해주는 이음쇠 부분이다. 사실 페룰은 연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물을 조이거나 연결하거나 고정하거나 끝단에 끼우는 용도로 쓰이는 끼움고리·이음관을 통칭한다. 지팡이나 우산, 깃대의 끝에 끼우는 쇠를 뜻하는 ‘물미’도 페룰이라고 한다. 골프채에서 헤드와 샤프트 연결부를 덮는 플라스틱도 페룰이다. 붓에서 자루와 붓털을 연결하는 금속관도 페룰. 이 책에서도 설명한 신발 끈 끝을 감싼 애글릿도 페룰의 일종이다. 이쯤 되면 기승전페룰, 만물페룰설이다.

연필의 매력은 펜과 달리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는 점이다. 연필이 없으면 지우개는 고무 덩어리일 뿐이고, 지우개 없는 연필은 볼펜보다 불편한 필기구에 불과하다. 이처럼 연필과 지우개는 불가분의 관계이건만 막상 지우개를 찾을 수 없어서 낭패인 경우가 많다. 지우개 달린 연필은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면 뗄 수 없게 만들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발명을 한 사람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살던 하이먼 리프먼(Hymen Lipman, 1817~1893)이다. 1858년 ‘지우개 달린 연필’ 특허를 받은 그는 1862년 조셉 레컨도르퍼에게 10만 달러에 특허권을 팔았다.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대선 선거자금이 10만 달러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레컨도르퍼는 지우개 달린 연필의 가치를 알아보고 통 큰 투자를 단행했던 셈이다. 하지만 에버하드 파버사(社)가 지우개 달린 연필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소송전이 시작됐는데, 1875년 미국 대법원은 “이미 존재하는 물건들을 단순히 붙여놨을 뿐”이라며 특허무효 판결을 내렸다. 레컨도르퍼 아뿔싸.

하이먼 리프먼. [사진 출처=공공 저작물]
하이먼에 대한 이야기는 평범한 발상이 대단한 발명으로 이어진 성공담으로 포장돼 전승되고 있다. 기사나 서적 등을 통해 국내에 알려진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던 청년 하이먼은 건망증 덕분에 자주 잃어버리던 지우개 때문에 고민이 컸다. 그는 모자를 쓴 자기 모습을 보고 양철 조각을 이용해 연필 끝에 지우개를 단단히 고정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를 본 지인이 특허 출원을 권유했고 이후 하이먼은 리버칩 연필 회사에 특허를 판 돈으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이다.

일단 하이먼은 가난한 화가 지망생 청년이었던 적이 없다. 1817년에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그가 지우개 달린 연필 특허를 낸 것이 1858년(미국 특허 US19783A), 마흔두 살 때의 일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화가를 꿈꾸는 ‘영원한 청년’ 하이먼 - 같은 비유였을까. 그는 미국 최초의 봉투회사를 세운 건실한 사업가이자 발명가였다. 그의 배우자는 내로라하는 필라델피아 약학대학 설립자의 딸이었다.

하이먼 립맨의 1858년 지우개 달린 연필 특허 US19783A. 페룰이 없는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출처=구글 특허]
양철조각, 지금의 페룰로 연필에 지우개를 부착했다는 것도 거짓이다. 특허출원 문서 원본을 보면 하이먼이 발명한 연필은 연필 뒷부분 일부를 흑연심 대신 지우개 심으로 대체한 형태다. 즉, 지우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겉을 둘러싼 나무 부분을 깎아야만 했다. 리버칩이란 연필회사도 사실무근.

곳곳이 허점투성이인 이야기가 어떻게 널리 퍼졌는지 모를 일이다. 일본 쪽 웹사이트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확인된 것을 미루어 볼 때 일본의 엉터리 자료들이 한국에 번역돼 소개되는 과정에서 퍼진 게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 청년의 인생 역전 성공담이 사람들의 입맛에 더 맞기 때문이리라. 사람들은 극적인 이야기를 사랑한다. 건실하고 부유한 사업가의 탄탄대로 인생에 작은 성공 한 방울 보태는 이야기보다 언더도그의 ‘역주행 분투기’가 더 매력적인 법이다. 하지만 남의 인생을 멋대로 각색하는 것은 곤란하다.

  • 다음 편 예고 : 무슬림 여성 얼굴 가리는 ‘그거’

[사진 출처=픽사베이]
지난 연재물 A/S : 파티가루 ‘그거’ 컨페티의 발명가는 다른 사람이다?

지난 연재물(축제 때 흩뿌리는 색종이 조각…근데 그거 뭐지? 바로가기1·바로가기2)에서 언급한 컨페티의 발명가가 밀라노 사업가 엔리코 만질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래된 이야기와 그럴듯한 추측이 뒤섞인지라, 어느 쪽이 사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추가로 확인된 바를 뒤늦게나마 적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여기에 옮긴다.

현대적인 의미의 색종이 가루, 컨페티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명은 19세기 밀라노의 사업가였던 엔리코 만질리(Enrico Mangili, 1840~1895), 다른 한명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 기술자이자 발명가였던 에토레 펜덜(Ettore Fenderl, 1862~1966)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하자.

우선 엔리코 만질리다. 비단 생산지로 유명했던 밀라노에서 방직 회사를 경영했던 그는 누에 사육을 위해 구멍을 낸 종이 시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작은 종잇조각, 그러니까 쓰레기를 밀라노 카니발 퍼레이드에서 ‘던질 물건’으로 팔기 시작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도 한 수 접어야 할 사업 수완이다.

102세의 에토레 펜덜. 정정하시다. [사진 출처=공공저작물]
에토레 펜덜은 다양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공학자이자 발명가였다. 어떤 웹사이트에서는 그를 핵물리학자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내용이 아니다. 토목·화학·건축 등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두고 있던 그가 방사선을 활용한 광학 장비 개발에도 참여한 적은 있었던 것 같지만, 핵물리학과의 연관성은 찾기 힘들다. 여하튼 그가 14살이었던 1876년, 카니발 퍼레이드에서 값비싼 장미 꽃잎 대신 색종이를 오려 조각들을 창문 밖으로 던졌고, 이것이 컨페티의 시초라는 것이 펜덜파의 주장이다.

색종이 가루, 컨페티의 발명 이후로 150년이 흘렀다. 밀라노판 봉이 김선달이든, 14살 소년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든 각각의 극적인 이야기는 부풀려졌고, 그만큼 진실은 희석됐다. 이러다가 ‘컨페티 발명가’를 주장하는 제3의 인물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사탕보다 저렴했고, 딱딱한 물건보다 안전했으며, 축제 분위기 띄우기에도 적합한 이 색종이 가루는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전파됐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컨페티를 뿌릴 때 이탈리아에 감사한 마음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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