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고급연필 뒤에만 붙어있던 은색 테두리…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그거사전 - 34] 연필과 꼭지 지우개 사이 이음쇠 ‘그거’
연필의 매력은 펜과 달리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는 점이다. 연필이 없으면 지우개는 고무 덩어리일 뿐이고, 지우개 없는 연필은 볼펜보다 불편한 필기구에 불과하다. 이처럼 연필과 지우개는 불가분의 관계이건만 막상 지우개를 찾을 수 없어서 낭패인 경우가 많다. 지우개 달린 연필은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면 뗄 수 없게 만들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발명을 한 사람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살던 하이먼 리프먼(Hymen Lipman, 1817~1893)이다. 1858년 ‘지우개 달린 연필’ 특허를 받은 그는 1862년 조셉 레컨도르퍼에게 10만 달러에 특허권을 팔았다.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대선 선거자금이 10만 달러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레컨도르퍼는 지우개 달린 연필의 가치를 알아보고 통 큰 투자를 단행했던 셈이다. 하지만 에버하드 파버사(社)가 지우개 달린 연필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소송전이 시작됐는데, 1875년 미국 대법원은 “이미 존재하는 물건들을 단순히 붙여놨을 뿐”이라며 특허무효 판결을 내렸다. 레컨도르퍼 아뿔싸.
일단 하이먼은 가난한 화가 지망생 청년이었던 적이 없다. 1817년에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그가 지우개 달린 연필 특허를 낸 것이 1858년(미국 특허 US19783A), 마흔두 살 때의 일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화가를 꿈꾸는 ‘영원한 청년’ 하이먼 - 같은 비유였을까. 그는 미국 최초의 봉투회사를 세운 건실한 사업가이자 발명가였다. 그의 배우자는 내로라하는 필라델피아 약학대학 설립자의 딸이었다.
곳곳이 허점투성이인 이야기가 어떻게 널리 퍼졌는지 모를 일이다. 일본 쪽 웹사이트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확인된 것을 미루어 볼 때 일본의 엉터리 자료들이 한국에 번역돼 소개되는 과정에서 퍼진 게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 청년의 인생 역전 성공담이 사람들의 입맛에 더 맞기 때문이리라. 사람들은 극적인 이야기를 사랑한다. 건실하고 부유한 사업가의 탄탄대로 인생에 작은 성공 한 방울 보태는 이야기보다 언더도그의 ‘역주행 분투기’가 더 매력적인 법이다. 하지만 남의 인생을 멋대로 각색하는 것은 곤란하다.
- 다음 편 예고 : 무슬림 여성 얼굴 가리는 ‘그거’
지난 연재물(축제 때 흩뿌리는 색종이 조각…근데 그거 뭐지? 바로가기1·바로가기2)에서 언급한 컨페티의 발명가가 밀라노 사업가 엔리코 만질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래된 이야기와 그럴듯한 추측이 뒤섞인지라, 어느 쪽이 사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추가로 확인된 바를 뒤늦게나마 적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여기에 옮긴다.
현대적인 의미의 색종이 가루, 컨페티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명은 19세기 밀라노의 사업가였던 엔리코 만질리(Enrico Mangili, 1840~1895), 다른 한명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 기술자이자 발명가였던 에토레 펜덜(Ettore Fenderl, 1862~1966)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하자.
우선 엔리코 만질리다. 비단 생산지로 유명했던 밀라노에서 방직 회사를 경영했던 그는 누에 사육을 위해 구멍을 낸 종이 시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작은 종잇조각, 그러니까 쓰레기를 밀라노 카니발 퍼레이드에서 ‘던질 물건’으로 팔기 시작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도 한 수 접어야 할 사업 수완이다.
색종이 가루, 컨페티의 발명 이후로 150년이 흘렀다. 밀라노판 봉이 김선달이든, 14살 소년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든 각각의 극적인 이야기는 부풀려졌고, 그만큼 진실은 희석됐다. 이러다가 ‘컨페티 발명가’를 주장하는 제3의 인물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사탕보다 저렴했고, 딱딱한 물건보다 안전했으며, 축제 분위기 띄우기에도 적합한 이 색종이 가루는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전파됐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컨페티를 뿌릴 때 이탈리아에 감사한 마음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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