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 "미련 버려야 깜찍한 변신이 빛난다"
엔씨소프트 수집형 RPG '호연'이 출시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기자 역시 블레이드 앤 소울의 추억을 가슴 한 켠에 품었던지라, 프리퀄이라는 호연에 많은 기대를 했다.
첫 인상은 '엔씨가 도전하는 서브컬처풍 게임'이었지만, 직접 플레이해보니 서브컬처 게임이라기보단 서브컬처 스킨을 끼운 MMORPG에 가까웠다. 타깃팅 위주 전투 시스템도 그렇고 콘텐츠 자체가 파티 플레이 PvE 위주로 구성됐다.
일주일 가량 플레이해본 결과, 부담 없이 산뜻하게 즐길 수 있는 요즘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나름대로 매력 있는 수집형 RPG다. "버려지는 캐릭터가 없게 하겠다"는 고기환 디렉터의 말처럼, 실제로 등급 무관 다양한 캐릭터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게임이기도 했다.
캐주얼한 느낌의 그래픽, 확연히 줄어든 과금 요소, 수집형 요소의 도입, 필드 액션과 턴제 전투의 결합 등 기존 MMORPG 유저층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저를 포용하려는 시도는 좋았다. 다만 기존 요소들을 버리지 못해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다. 특히 구시대적 시스템이 게임의 좋은 인상을 흐려서 아쉽다.
장르: 수집형 RPG
출시일: 2024년 8월 28일
개발사: 엔씨소프트
플랫폼: PC, 모바일
■ 발랄하고 상큼한 인상, 부족한 연출과 스토리텔링
호연의 첫 인상은 채도가 높아 다소 쨍하다 싶을 정도로 밝고 화사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강조한 카툰 렌더링 캐릭터들도 가볍고 캐주얼한 인상을 주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그래픽 측면에서 수집형 RPG치고는 캐릭터 모델링이 다소 아쉽다. 데포르메 비율을 제외하면 모델링 퀄리티 자체가 낮지 않다. 아동이나 여성은 괜찮지만, 성인 남성의 경우 신체 비율에서 나오는 이질감이 두드러져서 그렇다.
초반 홍비의 강호록에도 등장하며 메인 퀘스트 주요 악역으로 나오는 구호가 대표적이다. 하체 비율이 짧은데 근육질 체형이다보니 머리는 크고, 상체는 굵고, 다리는 짧아 우스꽝스럽다. 성인 남성 캐릭터의 전반적인 모델링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첫 인상과 비슷했다. 호연은 블레이드 앤 소울의 3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프리퀄이다. 멸문지화를 겪은 호연문을 주인공 유설이 다시 재건하는 이야기다.
쾌활하고 긍정적인 유설은 복수보다 호연문의 재건을 우선시하지만, 한편으로는 호연문의 마지막 후계로서의 책임감과 멸문 당시의 악몽에 시달리는 다면적 캐릭터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는 좋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프롤로그에서 호연문의 멸문을 보여주며 한껏 비장한 분위기를 잡아 놓고, 초반부 남소유 등장신을 비롯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는 과장된 연출과 대사로 몰입을 흐트러뜨렸다.
본격적으로 탁천교의 흔적을 쫓으며 경박한 분위기는 개선된다. 그러나 초반에 몰입을 끌어올려야 할 시점에서 흐름을 끊어버리니 게임의 첫 인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 타깃팅 전투지만 컨트롤과 전략도 중요
호연의 전투 시스템은 타깃팅 자동 전투가 기본이다. 리더와 이를 보조하는 팀원 4명, 총 5명의 영웅으로 팀을 구성한다. 실제 플레이하는 것은 리더 1명으로, 팀원 4명은 오의 무공 사용 시 잠깐 나와 도와주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일반 공격은 자동 시전이고, 오의 무공 및 리더 패시브 자동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컨트롤 요소가 없지 않다. 오의 무공 연속 사용으로 활성화해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협력기', 대미지를 약화하고 상태 이상 면역에 강해지는 저스트 회피 '흘리기'가 있다.
호연을 플레이하며 '쓰론 앤 리버티'가 자연스레 연상됐다. 쓰론 앤 리버티 역시 자동 전투 베이스지만 어느 정도의 컨트롤이 필요하다. 타깃팅 게임이다보니 특유의 말뚝딜은 벗어날 수 없지만, 완전 자동 사냥 게임은 아니라 어느 정도 손으로 조작하는 재미는 챙겼다.
특히 게임을 진행할수록 스킬 시전 중단에 협력기 뿐만 아니라 화기, 한기, 감전 등 특정 원소 효과 부여를 요구한다. 협력기에도 활성화 시간이 있어 적절한 무공 연계로 끊기지 않게 갱신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오의 무공 쿨타임이 기본 12초 이상이라, 적정 타이밍에 원소 효과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쿨타임 관리도 염두에 둬야 한다.
속성별 유불리가 이미 정해져 있지 않고, 몬스터에 특정 약점 속성이 정해져 있는 설정이 독특하다. 몬스터는 대개 2개에서 3개 정도의 약점 속성을 갖고 있는데, 약점 속성으로 공격할 시 받는 피해가 증가하는 약화 상태에 빠진다.
팀 조합은 리더의 강점을 강화하거나 약점을 보완하고, 팀원 간 시너지를 고려해야 한다. 가령 평타로 공격력 버프를 빠르게 누적하는 리더는 공격 속도를 추가로 챙기고, 일종의 강화 스킬인 '연쇄 효과' 발동을 위해 원소 효과 부여 영웅을 포함시키는 식이다.
호연의 영웅은 태생 등급에 따라 스킬 효과나 밸류가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능력치는 동일하다. 게다가 레벨 및 장비 공유 시스템으로 보유하고 있는 모든 영웅을 상황에 따라 바로 기용할 수 있고, 일부 네임드는 특정 영웅을 편성할 시 파훼 난이도가 낮아지는 등 메리트를 준다.
이렇듯 다양한 영웅 사용은 양날의 검이다. 게임의 전략성 측면에서야 좋은 일이겠지만, 게이머 입장에서 예쁘고 잘생긴 영웅을 두고 못생긴 크리처를 울며 겨자먹기로 넣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경험만은 아니다.
■ 필드 액션과 전술 전투, 2배로 즐기는 풍성한 콘텐츠
호연은 주로 PvE 위주로 전투 콘텐츠를 구성했다. 혼자 잡을 수 있는 싱글 네임드도 있지만, 파티 네임드나 보스 던전 등 주요 콘텐츠는 파티 플레이가 필요하다.
파티 구인 구직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듯 랜덤 매칭 기능도 있으나 서버 통합 매칭이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진 않았다. 그나마 론칭 초반엔 어느 정도 잡혔지만, 현재는 파티 모집을 통해서만 콘텐츠 입장이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필드 보스는 주간 보상 획득 가능 횟수가 정해져 있어 보스 통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보상 획득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저렙 필드 보스까지 마구잡이로 잡다 보면 본인 손해다. 기껏해야 영웅 별자리 작을 하는 유저들만 주간 보상 다 받고 추가로 잡는 것을 돕는 정도다.
개인 기여도로 보상이 지급되니 파티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았다. 다만 필드 보스 채널 인원 수를 늘리면서 전투 시 프레임 드랍이 심각하게 발생한다. 흘리기는커녕 보스가 어떤 기술을 쓰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턴제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술 전투는 필드와 능력치를 공유해 별다른 성장 없이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다. 필드 전투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방어형이나 전략형 영웅을 본격적으로 기용하게 되는 곳이다.
메인 퀘스트에서도 주요 보스전을 전술 전투로 진행하고, 심상 수련이 영웅 레벨 업 재화 비약의 주 수급처다. 영웅 성장 재화를 파밍하는 현상 수배와 토벌령도 있다. 단지 구색 맞추기 용이 아니라, '스위칭 RPG'를 내세운만큼 전술 전투를 게임의 주력 콘텐츠로 삼았다.
필드 무공과 전술 무공이 서로 다른 효과를 가지고 있어 필드 전투에서 좋은 영웅이 반드시 전술 전투에서도 활약한다고 할 수 없다. 공격 범위, 연타 여부, 버프 제거나 디버프 부여 등 필드 전투보다 조합의 영향이 중요했다. 한 끗 진영 강화 차이로 승패가 갈리기도 한다.
기자 역시 필드 액션이 메인이고 전술 전투는 곁다리 콘텐츠겠거니 생각했지만, 직접 플레이해보니 예상 외로 기믹 설계에 깊이감이 있었다. 턴제 전투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매력을 느낄 만하다.
이외에도 일일 15분 자동 전투로 재료 파밍이 가능한 공개 던전, 제한 시간 내 적을 쓰러뜨려야 하는 도전 던전, 본격적인 레이드인 보스 던전 등 PvE만 꼽아봐도 풍성한 콘텐츠가 포진해 있다.
일일 숙제인 의뢰, 필드 보스, 싱글·파티 네임드, 공개 던전 등을 제외해도 할 게 참 많다. PvP 콘텐츠까지 뻗어나가면 비무행과 비무대전까지 포함된다. 필드 액션 뿐만 아니라 전술 전투까지 챙기다보니 거의 2배 가까이 콘텐츠 분량이 증가했다.
가볍고 캐주얼한 스킨을 씌웠지만 호연은 어지간한 MMORPG보다 하드한 플레이 타임을 요구한다. 요즘 트렌드인 '가볍게 즐기는 게임'과는 상반된다. 게임을 켜고만 있어도 시간이 잘 가는 것은 장점이지만, 플레이 타임이 부담스러운 유저도 있을 법 하다.
■ 산뜻한 외견에 어울리지 않는 올드한 시스템
게임 자체는 헤비한 편이지만 꽤 재미있게 플레이했다. 다만 호연을 플레이하며 가장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발랄하고 산뜻한 외견에 걸맞지 않은 올드한 시스템이었다.
분명 낮은 천장과 호감도 시스템 등 유저의 과금 부담을 줄이고 보다 넓은 유저층을 포용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애매한 시스템들이 발목을 잡았다. 파편화된 성장, 가방 확장, 영웅 서고나 연쇄 효과 같은 소위 말하는 '컬렉션' 요소, PvP와 영웅 진화 강요 등이 게임의 좋은 인상을 흐린다.
성장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영웅 탭에서 바로 보이는 성장, 그러니까 레벨·무공·장비·돌파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웅 별자리에서 얻는 개별 스탯, 인연으로 얻는 무공 관련 추가 퍼센트 옵션, 장착 시 적용되는 필드·전술 신수패니 이것저것 챙겨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문 별자리와 파티 패시브인 가문 비기, 재화를 투자해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신수경, 컬렉션 개념인 영웅 서고, 기본 능력치 및 특수 스킬을 가진 수호령까지 있다. 왜 이렇게 성장 요소를 사방팔방 흩뿌렸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모습은 가방이나 PvP 콘텐츠에서도 나타난다. 가방 확장 등 기본적인 편의성을 인질로 삼고 과금 요인으로 삼는 게 대체 언제적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필드 PvP를 기껏 없애놓고도 경쟁 PvP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비무대전과 비무행에 공격 속도, 이동 속도나 대미지 감소 등 추가 스탯을 붙였다.
영웅 역시 일종의 조각 시스템인 호감도를 도입하고 인게임에서도 다양한 루트로 수급할 수 있도록 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 여기서 끝나면 참 좋았을텐데, 컬렉션 없이는 연쇄 효과 해금이 불가능하고 0진화 명함만으로는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다.
기존 MMORPG 도식에서 타파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또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다보니 하드 MMORPG 유저와 라이트한 게임을 선호하는 유저 모두를 잡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도 있다.
자동 위주라도 컨트롤이 필요한 전투 매커니즘은 나름대로 유저층에 어필할 만한 매력이 있고, 전술 전투 등 게임 콘텐츠 자체는 공들여 만든 것이 보여서 더 아쉽다. 앞으로 서비스를 이어가며 꾸준히 개선되길 바란다.
1. 필드 액션과 턴제 전투로 넘치는 콘텐츠
2. 자동 진행·사냥과 컨트롤의 조합으로 피로도 감소와 재미를 챙김
3. 보는 맛이 있는 아기자기 귀여운 캐릭터
1. 어중간한 PvP 콘텐츠
2. 얻고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연쇄 효과 컬렉션, 진화 시스템
3. 가방 무게 등 편의성을 인질로 잡은 구시대적 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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