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대책, 어떤 게 달라지나… 배터리 인증제·습식 스프링클러 의무화
배터리 주요 정보 의무 공개 방안 추진
기존 충전기도 스마트 제어 충전기로 교체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 시행을 앞당기고 모든 신축건물 지하주차장에 습식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의 전기차 화재 대책을 발표했다. 전기차 제작부터 운행까지 전 과정에 걸쳐 정부 관리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다만 정부는 지하주차장 3층까지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허용하는 규정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정부는 6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을 확정하고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지난달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등 잇단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와 충전시설에 대한 화재 우려가 커짐에 따라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전기차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정부는 그간 자동차업계 간담회와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지난달 25일 고위당정협의회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분야별 세부 대책을 수립하는 등 대응 방안 마련에 힘써왔다.
이날 발표된 대책 중 전기차 안전성 확보의 핵심은 배터리 관리 강화다. 정부는 당초 내년 2월 국내외 제작사를 대상으로 시행할 예정이었던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를 다음 달로 당겨 시범사업을 하기로 했다. 배터리 제조사와 제작기술 등 주요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에 따라 배터리 용량과 정격전압, 최고 출력 등만 공개하는 현재와 달리 셀 제조사와 형태, 주요 원료 등의 정보까지 의무적으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정기검사 시 배터리 검사항목도 대폭 늘린다. 현재는 배터리 검사항목으로 고전압 절연만 지정돼있지만 앞으로는 셀 전압, 배터리 온도·충전·열화 상태, 누적 충·방전 등도 검사하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교통안전공단 검사소는 물론 민간검사소까지 전기차 배터리 진단기 등 검사 인프라를 조속히 확충하기로 했다. 내년 2월 시행이 예정된 배터리 이력관리제는 차질 없이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실시간으로 전기차 배터리 상태를 감지하고 경고하는 기능인 ‘전기차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Battery Management System)’을 개선하고 운전자의 실사용을 늘려 화재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현대·기아 등 주요 제작사는 BMS 안전기능이 없는 구형 전기차에 BMS를 무상으로 설치해주고 이미 안전기능이 설치돼있는 차량의 경우 무상으로 성능을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또 운전자가 배터리 이상 징후를 적시에 알 수 있도록 주요 제작사는 BMS 연결·알림 서비스 무상제공 기간을 연장하고 홍보 캠페인을 통해 사용자 확대에 나선다. 정부는 올해 안에 BMS의 배터리 위험도 표준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차 소유주가 동의한 경우 위험단계가 되면 자동으로 소방당국에 알리는 시범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전기차 제작사와 충전사업자의 책임도 강화한다. 내년부터 제조물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제작사에 대해서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제외하고 제조물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방안도 추가로 추진키로 했다. 충전사업자의 경우 화재 발생 시 실효적으로 피해를 구제할 수 있도록 무과실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한다. 이와 함께 국내외 주요 제작사가 시행 중인 차량 무상점검을 매년 하도록 권고한다.
충전시설은 물론 지하주차장 등 전기차 화재 사각지대에 대한 안전관리도 강화한다.
정부는 충전량을 제어해 이중 안전장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스마트 제어 충전기’ 보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까지 우선 2만기를 보급하고 내년에는 7만1000기까지 확대한다.
이미 설치된 완속 충전기도 사용 연한과 주변 소방시설 등을 고려해 내년에 2만기를 스마트 제어 충전기로 교체할 예정이다. 이어 2026년에는 3만2000기, 2027년 이후에는 27만9000기를 순차적으로 스마트 제어 충전기로 교체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스마트 제어 기능이 탑재된 급속충전기는 공동주택·상업시설 등 생활거점별로 보급을 늘려 충전기 안전성은 물론 전기차 소유주의 충전 편의도 높이기로 했다. 올해까지 3100기를 보급하고 내년에 추가로 4400기를 보급할 계획이다.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사건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점을 고려해 지하주차장 소방시설도 개선하기로 했다.
앞으로 모든 신축건물의 지하주차장에는 화재 발생 시 감지 및 작동이 빠른 습식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동파 우려가 있는 건물일 경우에 한해 ‘준비 작동식 스프링클러’도 허용된다. 스프링클러가 이미 설치돼있는 구축 건물은 평시 점검을 강화하고 화재감지기 및 스프링클러 헤드 교체를 통해 화재 조기 감지 및 소화 성능을 개선하도록 한다.
신축건물 등에 대한 화재감지기 설치 기준 강화와 의무 설치 대상 확대 방안도 검토한다. 또 공동주택 관리자 등에 대한 교육과 함께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임의로 차단하고 폐쇄하는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보다 엄정하게 처벌하기로 했다.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전기차 주차구역·충전시설 확대(2%) 의무 이행 시기는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잇단 전기차 화재 사고로 우려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아울러 지하주차장 내 화재 발생 시 확산 예방을 위해 내부 벽·천장·기둥 등에 방화성능을 갖춘 소재를 사용하도록 관련 법령 개정도 내년 상반기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로 충전기 지하주차장 설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 것과 관련해서는 지하 3층까지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허용하는 안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 브리핑에서 “지하 3층 내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한다는 입장은 크게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한국전기설비규정을 개정해 전기차 충전기 설치 시 지하주차장 3층 이내에 두도록 제한했다. 해당 규정은 주차 구획이 없는 층은 예외로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지하 4층에도 충전기가 설치될 수 있다. 이 규정과 관련해 지난달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이후 지하 3층은 화재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제한을 강화해 지상 또는 지하 1층 등까지만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하 3층도 소방차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고 지하 3층부터 주차장이 시작되는 건물의 특성도 고려해 현행 규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방 실장은 “모든 건물의 지하 1·2층이 다 주차장인 것도 아니고 지하 3층부터 (주차장이) 있는 경우도 꽤 많다”며 “지하 3층까지는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여러 건물의 특성을 감안할 때 3층 내에 설치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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