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25학번 만들어줄게”… 자녀 위해 수능 본다는 학부모들, 왜?

박선민 기자 2024. 9. 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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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자녀의 과학탐구 표준점수를 높이기 위해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접수했다는 학부모들의 ‘인증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수능 원서 접수가 시작된 지난달 22일부터 입시 관련 카페에는 과학탐구 영역에 원서를 접수했다는 학부모들의 인증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수능 접수 마지막 날이던 지난 6일 한 학부모 A씨는 “95학번 엄마가 아들 25학번 만들어 보려고 한강에 물 한바가지 붓는 중”이라며 “지구과학 45점 받고 2등급이라고 괴로워하는 아이 보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망설이시는 분들 얼른 다녀오시라”고 했다.

A씨는 글 하단에 필수과목인 한국사와 과학탐구 영역 중 생명과학Ⅰ과 지구과학Ⅰ만 선택한 접수증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다른 학부모들의 응원과 함께, 자신도 과학탐구 수능 원서를 접수했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한강에 물 한바가지 같이 붓자” “저도 생1, 지1 신청했다” 등이다.

지난달 30일 다른 학부모 B씨는 한국사와 화학Ⅰ, 생명과학Ⅰ만 선택한 수능 접수증 사진을 올린 뒤 “같이 수능 보기로 한 엄마들이 당뇨 있다고 배신해서 혼자 씩씩하게 다녀왔다”며 “우리 아이들 화1, 생1 표준점수는 엄마가 지켜줄 거야”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영·수까지 보긴 힘들 것 같아 4교시만 접수했다. 1~3교시 집중 기도할 수 있는 시간 확보한 것도 벌써 든든하다. 망설이고 계신 학부모님들 함께 하자”고 했다.

한 학부모가 수험생 자녀의 과학탐구 표준점수를 높이기 위해 과학탐구 영역에 응시했다며 인증 사진을 올렸다. /네이버 카페

이처럼 학부모들이 수능 과학탐구 영역 응시에 나선 이유는 응시 인원이 적은 탐구과목의 경우 저득점자가 늘게 되면 성적 향상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응시생이 받은 원점수가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표준점수 특성상 평균이 낮아지면 그만큼 고득점자의 표준점수가 높아진다.

특히 이번 수능에서는 이과생들의 ‘과학탐구 이탈 현상’이 예상되는 만큼, 과학탐구를 응시하는 학부모들이 더욱 점수를 깔아주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난 5월 학력평가에서 고3 과탐 응시생 비율은 44.1%로, 통합 수능이 도입된 2021년 이후 최저였다. 수능 1등급은 응시생의 4%, 2등급은 11%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중하위권 수험생들이 과학탐구에서 사회탐구로 전환하면 그만큼 1~2등급 인원은 줄어든다. 의대를 목표로 하는 이과 최상위권 수험생 역시 수능 최저등급 확보가 어려워져 불리해질 수 있는 것이다. 과학탐구 이탈 현상 배경에는 자연계 학과를 지원해도 사회과목 선택을 허용해 주는 대학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과학 학원을 운영 중이라는 한 강사는 지난달 28일 학부모들과 같이 과학탐구를 응시 선택한 접수증 사진을 올리고 “’사탐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이과생들이 과탐 대신 사탐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다 보니 예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거 같아 불안한 마음”이라며 “선택과목에 대한 균형을 맞추는 데 아주 작은 보탬이 되고자 물리, 화학을 선택해 응시하려 한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는 ‘깔아주기’의 효과가 미비할 것으로 봤다. SBS가 통계학과 교수와 함께 실제 수능 표준점수 산출 방법대로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응시자가 1000명인 과목에 학부모 200명이 응시해 전원 0점을 깔아줘도 상위권인 1·2등급 표준 점수가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1점 낮아지는 걸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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