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가혹한 심판관…위로 안 믿고 “객관적으로 어때?” 물어요

한겨레 2024. 9. 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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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마음 돌봄’ MZ가 MZ에게
애초에 객관적 시각은 허구
내 실수에 유연한 태도 필요
‘피해 끼치면 안된다’ 벗어나야
게티이미지뱅크

Q. 저는 의욕적이지만 소심한 성격이에요. 얼마 전에 인턴십 프로젝트 과제 발표가 있었어요. 제가 발표자였는데 너무 긴장해서 버벅거렸고, 질문을 듣고 한참 동안 대답을 못했어요. 그 때 팀원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다들 ‘왜 저러지?’하는 표정이었어요. 아마 속으로 저를 원망했을 것 같아요. 모두가 방학 내내 이 프로젝트에 매진했는데 저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니까요. 제 앞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쟤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요.

괴로워서 친구들을 불러 객관적인 입장을 물어봤어요. “너희가 우리 팀원이었다면 어땠을 거 같아?”, “다음 프로젝트는 다들 나랑 안 하려고 하겠지?”, “내가 아이디어 내면서 주도하고 팀원들한테 싫은 소리도 했는데, 잘난 척하더니 제일 구멍이었다고 비웃진 않을까?” 친구들은 기운을 북돋워줬어요. 발표 때 긴장할 수도 있는 거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되고, 제 아이디어들을 보고 배운 점도 많았을 거고, 제가 가장 속상해하고 있을 걸 알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비웃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이 말들이 객관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제 친구들이 착해서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것 같아요. 결국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같은 질문을 올렸어요. 저를 위로해주는 댓글도 있었지만 ‘조모임에서 1인분 못 하는 사람 제일 싫음. 자신 없으면 발표를 맡지 말았어야 함. 팀원들 속으로 엄청 짜증날 듯’ 이란 댓글이 뼈를 때렸어요. 구구절절 저를 저주처럼 따라다녀요.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에요.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객관적으로 볼 때 어떤지, 누가 잘못했는지, 내가 이상하거나 예민한지 주변에 의견을 구해요. 친구들은 보통 제 편에서 말해주지만 사실 진심일거라 믿지는 않아요.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냉정한 평가를 의연하게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인터넷에 올리면 상처가 되는 댓글이 달린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글을 올리고 상처를 받아요. 박나정(가명·25)

A.상담을 하다보면 ‘객관적으로 보기에 어떠냐’는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갈등 상황이나 문제가 생기면 누구든 불안해지고 내가 이상하진 않은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왜곡이나 오류가 있는 건 아닌지 다른 사람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이럴 때 ‘이상하지 않다’,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불안이 해소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와의 갈등이 깊은 분이었는데, 어머니가 공격적이고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해서 그 분이 참 오랫동안 괴로웠겠다 싶었어요. “많이 힘드시겠다”, “화가 나실 만하다”고 말하면 그 분은 너무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하고 객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제가 공감을 표현할수록 오히려 자신의 단점이나 엄마를 화나게 했던 행동, 이상한 구석, 뒤틀린 욕망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으셨지요. 마치 비난을 기대하는 것처럼요. 그래야 상담자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상담을 거듭하며 사실 그 분이 듣고 싶었던 말은 객관적인 시각이 아니라 본인에게 익숙한 가혹한 심판관의 목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마음이 온통 무자비한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 그래서 누군가 공감해주면 ‘저는 이렇게나 나빠서 공감 받을 자격이 안 되니 더 이상 내 편을 들어주지 마세요’라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참고로 여기서 언급한 사례는 특정 사례를 인용한 것이 아니고, 쉬운 이해를 위해 여러 사례들을 종합한 것입니다.

친구들의 위로를 뒤로 한 채 ‘악플 공격’을 받고서야 확인 행동을 멈출 수 있는 나정님 마음에도 혹시 가혹한 심판관이 자리잡고 있진 않은가요? 위에 소개한 분은 ‘남의 위로를 받기엔 저는 너무 나빠요’라고 하셨다면, 나정님은 ‘남의 위로를 받기엔 저는 너무 무능해요’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 같아요.

나정님의 마음을 후벼판 댓글이 일부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친구들이 해준 말에도 진실이 있어요. 누군가는 발표를 못한 나정님이 모든 것을 망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동안 나정님이 보여준 열정을 기억하며 그래도 나정님 덕분에 이만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나정님의 싫은 소리를 들으며 자존심이 상해 복수할 기회만 노렸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나정님이 부족한 부분을 살펴주고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에 고마워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각자가 가진 마음의 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애초에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건 허구가 아닐까 싶어요.

무엇보다 발표를 망쳤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비난을 듣고 자학해야 할 만큼 큰 잘못이지만, 누군가에겐 긴장하면 할 수 있는 실수일 수 있습니다. 후자처럼 자신에게 너그러우면 무책임한 사람일까요? 책임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세계적인 운동선수들이 경기를 망치고도 금세 잊고 새로운 훈련과 경기에 몰입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누구보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들을 향해 ‘무책임하게 자신에게 쉽게 면죄부를 줬다’고 비난하지는 않으니까요. 책임감보다는 실수와 실패에 대해 얼마나 유연한 태도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부모님 말을 안 들으면 도깨비가 잡아간다’는 어른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어요. 차츰 나이가 들면서 도깨비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모두의 마음 속에는 또 다른 도깨비가 자리잡습니다. 그 도깨비 눈 밖에 나면 큰 일 날 것 같은 두려움도 함께요. 나정님의 도깨비는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실패하면 안 된다는 규범인 것 같아요. 너무나 완고한 나머지 그 규범을 흔드는 다른 경험들, 예컨대 ‘실수해도 괜찮다’는 위로는 빈말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벌이 내려져야 마땅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매섭게 방망이질하며 다음부터는 뭔가를 주도하거나 적극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게 삶의 반경을 축소하는 모습도 보이고요. 도깨비가 사라지면 큰일 날 것 같지만 사실 별로 큰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친구들의 위로를 믿으면서 나정님에게 조금 더 관대해져도 좋을 것 같아요.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생활에 고민이 있으신가요? ‘마음 돌봄 MZ가 MZ에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사연 보내실 곳: esc@hani.co.kr

한겨레 기자로 짧은 기간 일했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며 임상 및 상담심리학을 공부했고, 30대 상담자로서 내담자들의 자기 이해와 발견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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