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설 거부·문재인 겨냥…윤석열 ‘돌파정치’의 노림수는
與 “文 수사, 법 앞에서 평등”…김건희 수사와 비교돼 역풍 일 가능성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마이 웨이' 행보에 나서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한 건 처음이다. 사실상 국회에서 연설하길 거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민심을 거역하면 불행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윤 대통령 탄핵 가능성을 거론했다.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모씨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을 수사하며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의 집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전방위 수사에 돌입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문 전 대통령이 '뇌물 수수 등 피의자'로 적시됐다. 그러면서 정부는 '윤석열표'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은 "의료 대란은 없다"며 의·정 갈등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뜻을 재차 천명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일련의 행보는 '승부수'다. 192석에 달하는 거야(巨野)에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이익단체와 여론의 반대도 돌파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사실상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결집을 꾀하며 최근 수세에 몰리고 있는 국면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에서도 탈출하려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마이 웨이' 선언 尹…예산안·연금 개혁 협조는?
특히 여러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비리로 처벌받은 상황에서 직전 대통령마저 피의자로 수사를 받게 됐다는 점은 여러 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으로 여론은 여전히 대통령을 '검사 윤석열'로 인식하는 측면이 크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민심은 현재의 수사에 윤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의 '돌파정치'가 부메랑이 돼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지금은 국회의 시간이다.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과 저출생과 연금 개혁 등 예산과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야당이 압도적 다수인 국회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도, 윤 대통령은 '마이 웨이'를 택했다. 특히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로 야권은 더욱 똘똘 뭉쳐 정부·여당을 견제할 가능성이 커졌다. 야당은 이미 "국면전환용 정치보복"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렇게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실제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9월1일 기자회견을 열고 분노를 표출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정치보복의 칼을 분명하게 꺼내들었다"고 했다. 또 "지난 2년의 끝없는 칼춤은 결국 전임 대통령을 모욕 주고 괴롭히고 결국 수사선상에 올리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된 작전이었다"면서 "저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전주지방검찰청은 그간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전 민정수석(현 조국혁신당 대표) 등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진을 소환해 조사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벌여왔다.
반면 여권에선 '법 앞에 그 어떤 성역도 있을 수 없다'며 수사가 더욱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법률과 규정에 입각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정당한 수사'라고 표현하면서 "민주당은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비리가 불거져 나오는데 수사를 못 하도록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 초기 전직 대통령 2명과 숱한 보수진영 인사들이 구속당할 때 민주당은 '적폐 청산'이라며 열광하지 않았나"라며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정치보복이라는 야권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여야는 이미 쌓고 쌓은 갈등의 더미에 또 하나의 치명적인 반목의 요인을 얹게 됐다.
양측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야권은 검찰이 지금 시점에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본격화한 데는 정치적 배경과 배후가 있다고 본다. 야권이 지목한 정치적 배경과 배후는 바로 윤 대통령이다. 지지율 추락 등 여러 곤경에 직면한 윤 대통령이 국면전환용 카드로 전 정부에 대한 수사를 꺼내들었다는 해석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9월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회담 모두발언에서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볼 수 있는 과도한 조치가 많아지는 것 같다"며 "이것이 결코 (현 정부의) 실정이나 정치의 실패를 덮지는 못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현 정부의 실정을 덮기 위해 전 정권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야권이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사정은 이렇다. 야권에 200석 가까이 내주며 참패한 지난 4월 총선 이후로도 좀처럼 지지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주간 정례조사 기준으론 총선 이후 넉 달 넘게 30% 초중반에 갇혔고, 9월2일 공개된 조사 결과(8월 마지막 주 조사)에선 29.3%로 나타나며 2022년 8월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20%대로 떨어졌다. 여러 요인이 거론되지만, 최근 들어 가장 결정적인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의·정 갈등 문제가 꼽힌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을 강행하면서 벌어진 전공의 이탈 사태가 복원되지 못하고 반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최근 의료 붕괴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野 "尹, 지지율 위기와 실정 감추려 文 겨눠"
정치적으로도 만만치 않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참패한 뒤 한동훈 대표가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선되면서 임기 절반이 채 되기 전에 여당 권력의 일부를 미래권력에게 내준 셈이 됐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견제했으나 당심은 과반이 넘는 지지로 한 대표를 선출했다. 윤 대통령의 최대 견제 세력인 이재명 대표도 9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연임에 성공했다. 한 대표와 이 대표는 최근 대표회담으로 만나 의료 대란 우려에 대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내는 등 정국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다. 반면 윤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지지율은 도리어 20%대로 하락했다. 정치적으로 윤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일단 여론의 시선은 끌었다. 보수 결집으로 이어질 조짐도 보인다. 그러나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정치보복'이라는 야당의 프레임이 더 잘 먹혀들 수 있다는 관측도 상당하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의 분석이다. "법을 어겼다면 수사받고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사안이 이미 오래되기도 했고 좀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줘서 반감이 생길 수 있어 보인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어떤 일을 벌일 때 국민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진행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정권 내내 법치가 강조되는데 정치적인 감각 없이 행해지는 법치는 오히려 사회를 삭막하게 하고 서로 적대감만 더 키운다. 야당의 주장이 국민에게 먹혀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도 결집하지만, 진보진영은 더 크게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에 있었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은 야권 분열을 노린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친문(親문재인)계의 잠룡으로 평가되는 김 전 지사를 복귀시켜 친명(親이재명)과 친문을 비롯한 비명계 사이를 갈라놓는 전략이라는 관측이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전직 대통령의 비리는 당연히 검찰이 늘 관찰해야 할 대상"이라면서도 "민주당이 결집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만약 정략적인 의도가 있는 수사라면 자충수다.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봤다.
與 일각 "전 정권 수사는 힘 있을 때 해야"
문 전 대통령 수사와 함께 김건희 여사 수사가 거론되는 것도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으로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 민주당에서는 형평성을 고리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김 여사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건희 여사 앞에서는 휴대전화까지 반납하며 황제 출장조사를 한 검찰이 야당 인사들과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법 앞의 평등'을 주장한다"며 "이런다고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이나 명품백 수수 의혹 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오히려 윤석열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한 전직 다선 의원은 "의료 대란 등 안 그래도 정권에 부담스러운 사안이 많은 현 상황에서 전임 대통령을 향한 수사가 오히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 키울 수 있다"며 "전임 정권에 대한 수사나 감사는 정권에 어느 정도 힘이 있을 때 해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검찰이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진보진영 잠룡들이 이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장면도 주목된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제2의 논두렁 시계 수준의 작업을 (검찰이) 새로 시작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문 전 대통령님, 검찰 소환에 응하시면 안 된다. 윤 정권의 의도가 너무 뻔하다. 전직 대통령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 주겠다는 잔인한 공작"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울 때의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과 함께 대통령님을 지키겠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금 어떤 입장일까.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은 이 상황을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문 전 대통령이 언젠가 직접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는 9월3일 SNS에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닌데 (문 전 대통령은 현재) 엄연히 자연인 신분이신데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며 "이제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9월2일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서 지금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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