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핑’의 시대, 삶의 질 ‘수직 상승템’의 유혹[언어의 업데이트]

기자 2024. 9. 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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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콘텐츠에서 추천한 아이템을 쇼핑하는 ‘숏(폼)+(쇼)핑’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사용하기도 전에 업계에서 먼저 ‘트렌드 키워드’라 주장하는 말들이 있는데 ‘숏핑’도 그렇다. ‘숏핑’은 아직 아무도 사용하지 않지만, 이 개념의 흥행은 납득이 간다. ‘쿠팡 청소템 5’ ‘다이소 꿀템 7’이라는 썸네일의 숏폼에 영향받아 장바구니를 채우고, 영상을 캡처하며 꼭 사리라 다짐한 경험이 많다. 숏폼이 쇼핑을 위한 매체가 되자 썸네일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관종력 충만한 단어들이 인기다. 언어에도 ‘관종력’이 있다면, ‘필수템’처럼 ‘템’으로 끝나는 이들은 평균 이상의 관종력으로 쇼핑을 부추긴다.

아이템의 ‘템’을 활용한 ‘○○템’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립되지만 크게 두 계의 파로 나뉘어 발전해왔다. 첫 번째 계보는 신뢰 호소용으로 ‘국민템’ ‘찐템’ ‘필수템’처럼 ‘템’의 필요성을 설득한다. 두 번째는 상황 해결용으로 ‘육아템’ ‘꾸안꾸템’ ‘러닝템’처럼 특정 상황에 도움이 될 것을 약속한다.

사람들은 누가 쓰는지, 얼마나 잘 활용되는지, 그 효능의 정도로 지갑을 열지 판단한다. 신뢰 호소의 언어는 이 부분을 적극 공략하며 모두가 쓰고(국민템), 오래도록 쓰고(사골템), 진짜로 효과가 있음(찐템)으로 답한다. ‘진짜 효과 좋아요’라는 말 대신 ‘찐템’, ‘모두가 써요’ 대신 ‘국민템’이 더 솔깃하게 들린다. ‘국민템’은 범용과 신뢰의 상징이면서 동시대 소비의 클리셰를 보여준다. 쉽게 확산할 수 있는 만큼 아우라는 없다. 반면 ‘찐템’은 대중성보다는 희소성에 방점을 둔다. ‘나만 아는 찐템’처럼 은밀한 비밀을 속삭이듯 말해야 더 매력적이다. 나만 알든, 모두 쓰든 중요한 사실은 이 탁월한 아이템을 기어코 ‘추천’한다는 점이다.

상황 해결을 보장하는 언어는 효능보다 상황에 집중한다. 우리가 외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영역을 알고 싶다면 그 단어에 ‘템’이 붙어있는지 확인해보자. 그 영역은 이른바 ‘템발’이 필요한 영역일 것이다. ‘육아템’ ‘다이어트템’ ‘살림템’처럼 인간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쓰고 싶지만, 배후의 마케팅 전략과 상술을 늘 경계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가장 강력한 템의 언어는 상황 해결과 신뢰성을 동시에 주장하는 단어다. ‘국민 육아템’ ‘꿀피부 찐템’처럼 문제 상황과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동시에 제시하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중 눈에 띌 때마다 저항 없이 눌러보는 마성의 단어는 ‘삶의 질 수직 상승템’이다. 수직 상승은 자본주의가 사랑하는 언어. 내 자본의 가치가 ‘수직 상승’할 수 있다니, 그 자본이 내 삶의 질이라니! 택배용 커터칼, 계란찜기, 빨래 옮김 바구니 등 그 영역도 다양하다. 어떤 건 홀린 듯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어떤 건 캡처만 한 채 폰 속에서 잊힌다.

수많은 삶의 질 수직 상승템 콘텐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보면 다행히 깨닫는다. 내 삶의 질 수직 상승을 위해서는 ‘템’을 추천하는 콘텐츠를 더 이상 보지 않아야 한다. 추천하는 이유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에 기반한다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겠지만, 숏핑을 부추기는 세상의 속내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남이 아닌 내 삶의 질을 수직 상승시켜줄 아름다운 방식을, 템이 아닌 그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정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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