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차단이 해결책?"…범죄 예방 시스템이 우선 [텔레그램의 두 얼굴③]
학계 전문가 "다크웹 등 유통 경로 여전한…제2, 제3의 텔레그램 나올 것"
AI 윤리·성인지 감수성 교육과 처벌 강화 우선돼야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서울 구로구에 사는 박모(30)씨는 최근 여자친구로부터 성범죄자 오해를 받았다. 박씨 스마트폰에 텔레그램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텔레그램을 통해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 음란물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박씨는 여자친구에게 "딥페이크물 만들려고 가입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증권사에 다니는 박씨는 업무 관련 정보 공유 용도로 이용하고 있다며 접속해 있는 채팅방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카카오톡 등 다른 메신저도 있는데 텔레그램을 왜 쓰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의심을 그치지 않았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물 확산 이유 중 하나로 텔레그램이 지목되면서 텔레그램 사용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카카오톡, 라인 등 다른 메신저 앱이 있는데 굳이 텔레그램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이다. "숨길 게 있냐"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2020년 신천지 대구교회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건, 같은 해 n번방 사건 때도 나타났다. 당시 신천지 교도들이 비밀 대화를 위해 텔레그램을 쓴다는 소식, n번방 사건 발생 장소가 텔레그램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각 사건이 있을 때마다 텔레그램 앱을 설치한 사람을 신천지 신도 또는 성범죄자로 호도하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만큼 텔레그램 국내 서비스 운영을 막자는 뜻이다.
"텔레그램, 범죄 확산 방지 협조 안 하면 퇴출해야"
"텔레그램 막아도 다크웹 있다…AI 윤리·성인지 감수성 교육 우선해야"
딥페이크 성범죄물 확산에 텔레그램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일부 설득력이 있다. 경찰 수사에 비협조적이라 피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이에 따른 피의자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n번방 사건 당시 경찰은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이메일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으나 한 번도 답을 받지 못했다. 경찰은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물 유포 사건 수사를 위해 텔레그램에 협조 요청 메일을 보냈으나 아직 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국내 정부·공공기관 중 텔레그램에 회신받은 곳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일하다. 방심위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최근 동아시아 지역 관계자 공식 이메일 계정을 통해 방심위가 긴급 삭제 요청한 성범죄 영상물을 모두 삭제했다는 서한을 방심위에 보냈다.
텔레그램 측은 이에 대해 원래 신고 접수 후 회신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생긴 오해라고 말했다. 레미 본은 본지에 "기본적으로 신고 이메일 주소는 삭제 요청 결과에 대한 피드백(회신)을 제공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이 범죄와 연관된 콘텐츠 삭제에 비협조적이라는 우려는 오해라는 뜻이다.
하지만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물 등 불법 콘텐츠 확산 방지에 노력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에 국회에서는 텔레그램의 비협조가 지속될 경우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시켜야 한다는 강경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현안 질의에서 "수사 협조를 안 하면 서비스할 수 없도록 하는 본질적 대처가 필요하다. 그게 아니면 협조를 구걸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최진웅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입법조사관도 지난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연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긴급 토론회에서 호주 '온라인안전법'을 사례로 들며 플랫폼 접속 차단에 대한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조사관은 "유튜브, 소셜미디어 플랫폼 뿐만 아니라 메신저 앱까지 포함해 규제한다. 불법 정보 삭제 조치하지 않을 때 정부가 시정명령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한다. 벌금 부과 후에도 지속적 위반 시 접속 차단 조치한다"며 "(우리도) 접속 차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두는 방안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을 차단한다고 해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완전히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크웹 등 불법 합성물을 유통할 여러 창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다크웹이 있다. 다크웹은 네이버, 다음, 구글 등과 같은 일반 포털에서 검색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으로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곳이다. 텔레그램보다 접근하기 까다롭고 데이터 휘발성도 강하기 때문에 피해 파악이나 범죄자 추적에 어려움이 크다.
이런 다크웹 이용자도 최근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다크웹 접속 프로그램 중 하나인 '토르' 일평균 국내 이용자 수는 4만375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일평균 이용자 수(1만8801명)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텔레그램 접속 차단 시 표현의 자유 침해, 과잉금지 원칙 등 헌법 원칙 위배 우려도 제기된다. 또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텔레그램이 아닌 국내 사업자에게만 압박이 더 가해지는 역차별 우려도 나온다.
이에 플랫폼에 자율 규제 책임을 두게 하되 적극적인 수사, 처벌 강화와 함께 인공지능(AI) 윤리,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소은 국립부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딥페이크 악용 이미지를 삭제하거나 업로더 활동 금지, 관련 커뮤니티 폐쇄, 관련 검색어 금지 등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규제가 필요하다"면서도 플랫폼 책무를 부과하는 입법에 대해서는 산업계에 미치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딥페이크를 통한 음란 영상물 제작은 성범죄라는 인식 확립이 중요하다"며 "음란물 제작과 배포가 학교폭력이고 성범죄라는 사실을 명확히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한 관계자도 "텔레그램을 잡더라도 어디선가 제2, 제3 텔레그램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며 "학교에서부터 AI 윤리 교육이 철저히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lpac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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