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가 제철

서울문화사 2024. 9. 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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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에도 성수기가 있을까. 계절과 섹스를 굳이 연관 지어야 하나 싶지만, 그게 섹스 칼럼의 역할이다. 저마다의 ‘섹스 제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무래도 건조한 것보단 미끌거리는 게 섹스에 도움이 되니까요.” 여름방학을 맞이해 농촌 봉사활동을 마치고 온 류다운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스물다섯 대학생이다. 류다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땐 봉사활동을 마치고 이제 막 집에 들어왔다고 했다. “저 지금 탈진 직전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이따가 전화하면 안 될까요?” 나는 질문만 들어보라고 했다. 생각한 후에 전화를 다시 줘도 된다고 회유하면서 하고 싶은 계절에 대해 물었다. 류다운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 “저는 그런 걸 딱히 생각해본 적 없어서 조금 흥미롭긴 하네요.” 류다운은 내가 아는 여자 중 가장 단순하다. 방금 전까지 탈진 직전이라 통화 못 하겠다고 했으면서, 흥미로운 질문을 듣고 전화를 끊지 않았다. “저는 적당한 땀 냄새를 좋아해요. 인간적이잖아요” 얼마나 적당해야 하나요? “시큼하지만 않으면 돼요. 그러니까 안 씻어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청결한 몸에서 나는 땀 냄새요.”

류다운은 나와 일로 만난 사이다. 그녀는 굵은 컬이 들어간 파마머리와 노메이크업에 가까운 얼굴로 출근했다. ‘짜치는 것’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그만큼 ‘인간적’ ‘자연스러운’ ‘귀여운’ 등의 키워드에 사족을 못 썼다. 그 취향 중 하나가 땀 냄새였다. “당연히 섹스하기 전에 씻는 남자를 만나겠죠. 섹스하기 전에 안 씻는 남자는 만나본 적 없어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땀 냄새가 좋은 거예요? 아님 땀이 좋은 거예요? “땀 냄새도 좋고 땀도 좋아요. 근데 저는 그런 분위기가 좋아요. 미끄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땀을 흘리면 둘 다 열심히 한 느낌도 들고, 더 열정적으로 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느낌이 좋아요. 열심히 했다는 흔적. 여름엔 그런 게 있어서 좋아요.”근데 땀은 겨울에도 날 수 있잖아요. 류다운이 답했다. “겨울에는 금방 마르잖아요. 저는 미끌거리고 약간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요. 미끌거리는 게 섹스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계절에도 효용성을 따지는 류다운은 잠깐 경제학도 같았다. “저는 옷을 다 벗은 순간부터 섹스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겨울처럼 벗을 게 많은 계절은 섹스에 방해만 되죠.”

그럼 어떤 계절에 섹스를 많이 하십니까? “실제로도 여름에 더 많이 해요. 덥다는 이유로 남자는 자신의 집으로 저를 초대하고, 저도 가죠. 남자의 옷도 가볍고 제 옷도 가볍죠. 보이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남자의 살과 제 살은 어떤 방해물 없이 맞닿아 있고. 그러다가 섹스하죠. 옷이 많은 건 좀 부담스러워요. 벗겨야 할 게 많은 건 저한테 과제 같아요. 호텔이든 모텔이든 집이든 그렇게 많이 벗겨야 하는 건 사랑해야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서 올여름은 어떠십니까? “하하, 뭘 그런 걸 물으세요!”

“하고 싶은 계절은 좀 그렇고, 하기 쉬운 계절은 있지.” 매번 색다른 대답을 주는 스물넷 디자이너 박희연은 이번에도 주제에 대해 반문했다. 하고 싶은 계절이 없어? “나는 욕구가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아서, 하고 싶은 계절도, 하기 싫은 계절도 없어.” 하기 쉬운 계절? “여름이지. 여름은 덥잖아.” 박희연은 이 말을 하면서 웃었다. “남자들은 나를 집으로 부를 명분이 생기고, 나는 그 명분을 선택하기만 하면 돼. 남자는 어차피 계속 하고 싶어 하니까” 박희연은 남자 앞에서 쉴 새 없이 웃는다. 칭찬도 마다 않는다. 그래서 박희연의 주변엔 남자가 항상 있었다. 일로 만난 남자, 일로 만나고 싶어 하는 남자, 일로 만났지만 사적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남자, 그냥 자고 싶어 하는 남자.

박희연의 인스타그램에 ‘남사친’처럼 보이는 남자들은 다양했다. 박희연은 이야기보따리 같았다. 그럼 남자들이 어떻게 말해? “자기 집에 오라고 말을 먼저 꺼내진 않아. 사귀지도 않는데, 덥다는 이유로 집으로 오라고 하면 너무 뻔하니까. 맘에 드는 남자면 좋긴 하겠지만.” 그럼 어떻게? “‘내일 너무 덥대’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더운데 실내에 있어야겠다’ 같은 말들로 내 뜻을 넌지시 물어봐. 만약에 내가 남자랑 하고 싶으면 ‘그러게 너무 더우니까 내일은 어디 나가지 말아야겠다’라고 답하거나, 맘에 안 들면 대형 카페 같은 곳을 가자고 말해. 복합문화공간 같은.” 앞서 말했듯 박희연은 매번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전화를 받고, 호의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대한다. 그래서 박희연은 아닐 때 더 아닐 수 있다. 호의적이기만 했던 사람이 싫다고 말했을 땐 정말 싫은 거라고 느껴지니까.

“섹스는 삽입부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벗기는 순간부터예요.
여름은 벗기는 순간이 재미없어요.
3초면 다 벗잖아요.”

박희연의 단호함은 정말 칼 같다. “근데 여름이 하기 쉬운 계절이라 기대할 구석이 없어. 남자도 살을 보이고, 나도 어느 정도 딱 달라붙는 옷을 즐겨 입고 그러면 몸매가 기대가 안 돼. 왜냐면 이미 눈에 다 보이니까. 짜릿함이 반감되는 것 같아.” 그럼 겨울이 더 좋다는 걸까? “굳이 따지자면 여름보단 겨울에 섹스의 기대가 더 커지긴 하지. 근데 더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야. 봄이나 가을은 사랑을 시작하기 좋고, 여름은 섹스를 시작하기 좋은 것 같아. 겨울은 모르겠다.” 박희연은 저번에 만난 남자와 헤어졌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힘드냐는 내 질문엔 웃음으로만 답했다. “많은 걸 할 수 있게 돼서 좋아.”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데? “다양한 것들이 있지. 여름이라는 계절을 온전히 즐길 수도 있고.” 박희연은 더 하고 싶은 계절이나 덜 하고 싶은 계절이 없었다. 마음은 남자에 의해서만 움직일 뿐 상황은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우리 집안에서 아들을 제일 먼저 낳은 엄마가 아들 키우기 힘들다는 말을 동서에게 했을 때 들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가진 자의 여유인가?”

“어우 전 바삭한 게 좋아요.” 술집을 운영하는 스물 여덟 최혜린은 섹스 얘기에 ‘바삭’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박희연과 류다운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고 싶은 계절이 어디 있어요. 어떤 계절에 특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계절 타는 거예요. 섹스가 진짜 당기는 건 상황이 아니라 그때의 기분 때문이죠.” 최혜린은 사람을 많이 만나본 사람 같았다. 거침없이 말했지만 날카롭지 않았다. 그래서 최혜린에겐 질문을 바꿨다. 선호하는 계절이 있습니까? “저는 바삭한 게 좋아요. 냄새 나는 것도 싫고, 냄새를 가리려고 뿌리는 향수도 싫어요. 그리고 저는 살이 보이는 게 싫어요. 다 보여주는 건 재미가 없어서요. 몸 좋은 남자들이 입는 민소매 티셔츠도 저한텐 매력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겨울을 선호하십니까? “입은 옷이 많고 그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몸이 좋아요. 그 속을 상상할 수도 있고, 겨울옷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는 그것들을 벗기는 순간을 좋아해요.” 옷을 다 벗은 순간부터 섹스라고 말한 류다운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섹스는 삽입부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벗기는 순간부터예요. 여름은 벗기는 순간이 재미없어요. 3초면 다 벗잖아요. 몇 개 없으니까. 근데 겨울은 달라요. 벗길 게 많죠. 그래서 벗기는 데 시간도 걸리고 그 시간에 대화하는 것도 즐겨요. 섹스가 벗고, 벗기는 순간부터인 저한테는 섹스의 총 소요 시간이 늘어나는 거니까 더 만족스럽고요.” 싸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들의 뒤통수를 때릴 만한 답변이었다. 최혜린에겐 옷을 벗기는 순간이 삽입이나 애무 시간에 포함되는 것 같았다. 금방 끝나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삽입과 애무의 시간에 비해 현저히 짧은 벗기는 시간의 희소성에 끌리는 것일 수도 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살치살이 그래서 더 비싸고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다만 섹스는 삽입부터일 수도 있고, 벗기는 순간일 수도 있다. 다만 스타일에 따라 선호하는 계절이 달랐다.

최혜린은 겨울에 대한 말을 더했다. “저는 목도리나 옷이 제 몸을 감싸고 있는 걸 좋아해요. 약간의 압박감이 있어야 편해요. 벗고 다니는 스타일이 제가 추구하는 패션이라면, 압박하는 스타일은 제가 안정감을 느끼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안정감이 있을 때 더 하고 싶어요.” 성적 취향과도 관련이 있습니까? “목도리를 되도록이면 강하게 매요. 리드당하는 걸 좋아하고요.” 최혜린은 인정도 빨랐다. “저는 헐벗지 않으면 내세울 게 없어서 여름이든 겨울이든 항상 여름처럼 입어요. 좀 아쉬워요. 그래도 겨울에 목도리는 꼭 하죠.” 언제부터 겨울을 좋아했습니까? “어렸을 땐 분위기나 특정 시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땐 겨울보단 여름이 조금 더 섹스에 끌렸어요. 근데 여름에 섹스한 남자들은 대개 여름이 끝나기 전에 관계가 끝났죠.” 그래서 겨울이 좋아진 건가요? “섹스하기 어려운 계절에 섹스하면 사랑 같잖아요. 그래서 겨울이 좋은가 봐요.” 한여름의 최혜린은 누구보다 살이 많이 보이는 옷을 입고 대답했다. “안 한 지도 오래됐어요. 한 달이 넘었을 거예요. ‘갓생’ 사는 기분 들어서 좋긴 한데 좀 외로워요. 틴더라도 할까 봐요.”

* 기사에 등장한 모든 인물 이름과 직업은 가상으로 바꿨습니다.

Editor : 주현욱 | 주현욱 : 백윤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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