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뿌리는 추워서 한반도에 온 북방의 '기후 난민'..."단일민족은 환상"

권영은 2024. 9. 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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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박정재 '한국인의 기원'
오늘의 인류를 이룬 호모사피엔스 '이달투'를 에티오피아에서 발굴한 두개골을 바탕으로 복원한 모습이다.

'추위를 피해 북방에서 한반도로 남하한 기후 난민이 한국인의 뿌리다.'

20여 년간 한반도 고기후를 연구한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제기한 '한국인 형성의 기후 변화 가설'을 거칠게 압축하면 이렇다. "주기적인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인구 집단, 이른바 한민족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마지막 빙기에서 가장 추웠던 최성기인 2만5,000년 전과 현재 인류가 사는 지질시대인 홀로세에 속한 8,200년 전, 그리고 3,200년 전 한랭화 때 각각 대거 이주한 수렵채집민과 농경민이 '한반도인'을 형성했다는것.

박 교수의 책 '한국인의 기원'은 '한국인은 어디서, 어떻게, 왜 한반도로 왔는가'를 추적한다. 전공인 생물지리학, 고기후학에다 최신 고유전체 분석 결과, 고고학 자료 등을 한데 모아 통섭적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했다. 새로운 자료와 과학적 분석법으로 좀 더 규명돼야 할 지점이 존재하지만 "인간 집단의 이합집산에는 기후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확신이다.


아프리카 사피엔스는 어떻게 한국인이 됐나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현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4만 년 전 동아시아에 도착했다. 책에 따르면 이들 중 만주 아무르강 유역에 집단을 이뤄 살던 수렵채집민들이 2만5,000년 전 한파를 피해 한반도로 오기 시작했다. 훗날 홀로세에 접어들면 한반도 남쪽까지 진출하는 이들은 "한반도 선사사회의 밑바탕 역할"을 했다. 추위가 점차 가시고 홀로세 직전의 만빙기가 닥치자 이들은 다시 아무르강을 찾아 떠났다. 산지가 대부분인 한반도를 떠나 북쪽의 초지로 향한 것이다. 이들은 8,200년 전 다시 기온이 크게 떨어지자 재차 한반도로 향했다. 이때 한반도에 처음으로 토기 문화가 전파됐다.

온난습윤했던 홀로세 후반기인 3,200년 전 또다시 한랭기가 찾아오면서 한반도로 새로운 집단이 흘러 들어왔다. 중국 랴오허강 동쪽 일대 랴오둥에서 이주한 농경민 무리다. 농경 기반 집단은 기후변화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랴오허 유역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대규모 사회가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황허강 유역보다는 소규모 집단들이 점점이 분포하는 한반도가 좀 더 만만해 보였을지 모른다. 한반도의 매력은 남쪽에 위치한 동시에 인구 밀도가 낮다는 점이었다". 한반도에 자리 잡은 이들은 논에 물을 대어 벼농사(수도작)를 지었다. 먹을 것이 늘고 농사가 대형화되면서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박 교수는 "이들이 바로 한반도 최초의 벼 농경 집단인 송국리 문화의 주인공"으로 추정했다. 대략 2,800년 전 한반도의 벼 농경 사회는 전성기를 맞는다.

생물지리학, 고기후학, 고고학 등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한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바다출판사 제공

이는 박 교수가 기후 복원에 필요한 빙하·석순·나이테·퇴적물·산호 등 다양한 프록시 자료를 모아 비교 검증한 결과다. 최근 속속 전해진 고유전체 분석 결과도 가설에 힘을 실었다.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동아시아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작업은 최근 2, 3년 새 이뤄졌다. 고인골에서 채취한 DNA 자료 역시 대부분 6, 7년 내 축적된 것이다.


기후학·고유전학·고고학 통해 쫓은 한국인 형성사

기원 후 다시 기온이 떨어진 '중세 저온기'엔 한반도 남부로의 이주가 이어졌다. 고조선 세력, 황허 집단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위만조선의 유민, 선비족, 고구려에 밀린 부여 유민들이다. 정리하면 "한반도인은 양쯔강·랴오허강·황허강·아무르강 등 4개 유역에서 기원한 사람들이 이동하고 섞인 결과 형성됐다. 특히 랴오허강 유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기여를 많이 했다". 그러므로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은 환상이다.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계속 이주한 이들 중 일부는 일본까지 건너가 야요이 문화를 열었다.

한국인의 기원·박정재 지음·바다출판사 발행·504쪽·2만4,800원

4세기 이후 대규모 이주는 주로 전쟁 패잔병이나 난민 위주로 이뤄졌다. 책은 고구려 장수왕이 427년 국내성(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통구성)에서 평양으로 천도를 감행한 이유도 기후변화로 추정한다. 1850년 전부터의 기후변화 정보를 담은 제주 동수악오름의 퇴적물 등을 분석한 결과, 기원 후 1년 이후 계속 떨어지던 기온이 420년쯤 최저 수준에 도달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라는 것. 박 교수는 "인구가 늘면서 작물 농경 비중도 느는 가운데 온난한 평양이 미래 고구려의 수도로 더 나은 선택이라고 봤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번엔 온난화… 현대 한국인의 미래는

한랭화 탓에 집단이동을 해야 했던 조상들과 달리 현대 한국인은 온난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인류가 초간빙기 시대를 맞게 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책은 "한국인이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인류 전체의 종말 또한 그리 머지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극심한 기후변화는 늘 기후 난민을 야기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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