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더 내고 덜 받기'로 끝난 국민연금 개혁 아닌 개혁 [추적+]
尹 국민연금 신뢰 회복에 방점
사실상 보험료율 인상이 핵심
심각한 세대간 갈등까지 조장
안정성 해치는 자동조정장치
미래 세대에 리스크만 떠넘겨
국회 통과 가능할지조차 의문
"장기간 지속 가능한 개혁으로 국민연금의 신뢰를 회복하겠다." 지난 8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보건복지부가 연금개혁안을 내놨다. 이 개혁안에는 국민이 국민연금 제도를 신뢰할 만한 내용이 담겼을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지난 4일 보건복지부가 2024년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심의ㆍ확정해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성을 밝힌 지 딱 1주일 만이다. 윤 대통령이 밝힌 방향성에 내용을 조금 더 구체화해서 내놓은 셈이다.
정부는 이번 연금개혁 추진계획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과 이를 토대로 지난 1~4월 21대 국회 산하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실시한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을 모두 고려한 것임을 밝혔다.
그럼 정부의 이번 연금개혁 추진계획에 어떤 내용들이 담겼을까. 내용은 크게 열가지인데 그중 일곱개가 국민연금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나머지 세개는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관련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한다. 다만 세대별로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차등화한다. 50대는 당장 연 1%포인트씩 4년간 보험료율을 올리고, 20대는 0.25%포인트씩 16년간 보험료율을 올려 맞추는 식이다. 2028년까지 40%로 낮출 예정이었던 명목소득대체율은 42%(올해 기준)에서 더 낮추지 않는다.
기존에 4.5%로 추정된 장기(2023~2093년) 기금운용수익률은 1%포인트 이상 끌어올리기로 했다. 인구수나 기대수명, 경제 상황 등과 연동해 연금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장치를 도입하기 위한 논의도 시작한다.
제도 유지에 매몰된 개혁안
국민연금 제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의 연금 지급 의무를 법률에 명문화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크레딧(출산ㆍ군복무) 지원 강화를 통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확대함으로써 실질소득도 높인다. 여기까지가 국민연금 개혁 내용이다.
나머지는 기초연금 수급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가 깎이는 현실을 개선하는 내용(기초연금), 전 사업장의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의무화해 퇴직연금을 실질적 노후소득보장 기제로 정립하는 내용(퇴직연금),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개인연금 가입을 활성화하는 내용(개인연금)을 담고 있다.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보면 꽤 의미있는 개선책들이 눈에 띈다. 기초연금을 받으면 생계급여가 삭감되는 현행 제도의 맹점 탓에 기초연금액이 오를수록 형편이 넉넉지 못한 노인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를 손보겠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이 23.7%에 불과한 상황에서 전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장치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개혁안 내용을 두고선 뒷말이 많다. 첫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2%로 맞추는 게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재정안정화 방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국민연금 공론화 과정에서 나온 재정안정안이 '보험료율 12% 인상, 소득대체율 40% 유지'였고, 소득보장안이 '보험료율 13% 인상, 소득대체율 50% 인상'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틀린 지적이 아니다.
게다가 국민의 선택은 재정안정안이 아닌 소득보장안이었다. 국민의 의견도 무시한 셈이다.[※참고: 그렇다고 소득보장안이 옳다는 건 아니다. 더스쿠프는 이미 지난 4월 '1번과 2번 중 선택? 국민연금 개혁이 인기투표인가(통권 595호)' 기사를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둘째, 세대별로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차등화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도 있다. "전대미문의 세대 간 갈라치기"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청년과 미래세대 부담을 완화해 제도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지만, 사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적용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위험성도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소 가입기간 10년(120개월)을 채우지 못한 50대 중장년층 가입자가 올해 6월말 기준 207만8798명이다. 50대 전체의 30.8%에 달한다. 정부 계획대로 연금개혁이 진행된다면 이 가운데 저소득층에 속하는 이들은 보험료를 체납할 가능성이 높아져 결국 사각지대로 내몰릴 수 있다.
셋째, 연금액 자동조정장치 도입 논의를 두고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인구수와 경제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연금액을 조정한다면 앞서 말한 소득대체율은 의미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특히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연금액 자동조정장치를 운영 중"이라면서 도입의 타당성을 역설했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을 뺐다. 다름 아닌 이들 국가의 연금시스템은 대부분 적립금을 두지 않는 부과식이고, 이를 위해 노동정책이나 기업정책까지 연금제도를 고려해 운영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연금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기 위해 기업이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하거나 기업의 보험료 부담률을 높이는 거다. 또한 이들 국가는 연금재정에 국고보조금(세금)도 투입한다. 국고보조금 투입 없는 자동조정장치 운영은 국민연금 제도의 안정성을 해친다. 자동조정장치에 따라 보험료율과 연금액이 들쑥날쑥하는 연금제도를 신뢰할 이들은 없다.
신뢰할 만한 구조개혁이 우선
넷째, 기금운용수익률 제고도 늘 논란거리다. 수익률이 높으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수익률을 높이려면 위험도가 높은 곳에 투자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방침에 국민 상당수가 동의하면 몰라도 과연 그런 국민이 몇이나 되겠냐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혼란만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언급한 지적들을 해소할 수 없어서다. 정부가 연금개혁의 의미를 재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초 국민연금 제도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은 명확하다. 국민연금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서다. 왜일까.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소득대체율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정부는 연금재정이 고갈된다면서 보험료율을 더 올려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보험료율을 올린다고 연금재정 고갈을 막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그저 늦출 수만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원래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연금재정 안정화만 남았다. 언제까지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연금재정 고갈 후 어떻게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이들도 없다. 기금운용수익률을 해치지 않으면서 적립금을 회수할 방법도 명확하게 제시한 바 없다.
정부가 바뀌면 제도는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저출생과 인구 고령화로 인해 우려는 더 커진다. 급여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서 빨리 연금에 가입하고, 장기근속으로 오랫동안 많은 보험료를 내며, 오래 살면 혜택은 커진다. 아무래도 부자들이 더 이득을 보는 구조다. 그러면 결론은 하나다. '과연 국민연금 보험에 가입하는 게 나에게 이득일까?'
이런 문제들을 놔둔 채 보험료율을 올린다고, 세대별로 차등 적용한다고, 혹은 국가의 의무를 법률에 명문화한다고 없던 신뢰가 생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언제까지, 얼마의 국고를, 어떤 방식으로 마련해서 연금재정에 투입해 기금고갈 우려를 없애겠다' 혹은 '낸 보험료를 운용해서 얻은 수익 만큼만 연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식의 계획이 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윤석열 정부는 연금 개혁안을 내놨고, 그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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