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발목 잡힌 K-영화, 돌파구를 찾아라
CULTURE & 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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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산업의 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오가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영화관이 문을 닫았고, 집에서 편히 즐길 수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이 크게 늘어나면서 영화산업은 꽤 깊은 침체를 겪어야 했다. 이후 영화관의 문은 다시 열렸지만 관객들은 예전처럼 영화관을 찾지 않고 있다. 2~3년 동안 사람들의 시청 습관도 바뀌었고, 묵혀뒀다 내건 영화들이 관객의 취향을 비껴간 측면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영화를 선보인다 하더라도 영화관이 과거의 왕좌를 되찾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서 ‘영화관 관람’에 대한 선호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연극과 오페라가 예전에는 가장 대중적인 관람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애호가들의 영역으로 줄어든 것과도 같다.
관객 감소가 가장 큰 문제지만 현재 영화산업에는 이것 말고도 수익성의 발목을 잡는 여러 문제가 있다. 인터넷티브이(IPTV)에서 OTT로의 변화, 영화관 할인요금에 대한 부율 조정 등이다. 단기적으로 관객 수 회복이 쉽지 않다면 주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산업을 다시 구조화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영화 서비스를 즐기는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면서 발생된 터라 심각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OTT 영화 늘었는데도 수익 줄어든 이유
IPTV에서 OTT로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9년 전쯤으로 한번 돌아가본다. 2015년 11월 티브이엔(tvN) 채널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쌍문동에 사는 다섯 가족 이야기를 담은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고 있었다. 즐겨 보는 드라마라면 ‘본방 사수’를 위해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는 것이 자연스러운 때였다. 저녁 약속이라도 생겨 본방송을 챙겨 보지 못했다면 IPTV의 다시보기에서 결제를 하고 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채널별로 있는 한 달 다시보기 결제를 하기도 했고, 한 시리즈 전체를 결제해놓고 보고 싶을 때 몰아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주말 밤이라면 지난여름 인기가 높았던 영화 <암살>을 보기 위해 IPTV에 결제 비밀번호를 써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편당 결제, 시리즈 결제를 몸에 익혀가던 무렵 넷플릭스라는 OTT가 다가왔다. 처음에는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지 않아 쉽게 구독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볼만한 콘텐츠가 하나둘 늘어나자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튀기기 시작했다. IPTV에서 드라마 한 시리즈, 영화 한 편만 결제해도 1만원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한 달에 영화 하나, 시리즈 하나만 챙겨 봐도 이득인 것 같았다. 결제정보를 한 번만 등록하면 볼 때마다 건건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수고가 없다는 점도 편리하게 느껴졌다.
머릿속 계산이 선 사람들은 슬금슬금 OTT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나도 그즈음인 2019년 초 김은희 작가의 <킹덤> 시리즈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즉, OTT가 유료 가입자를 잘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IPTV를 통해 잘 습득된 결제 습관 덕분이었다. 콘텐츠를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을 IPTV를 통해 익혔고, 그 과정이 번거롭다고 느꼈기 때문에 쉽게 OTT 구독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셈이다. 만약 건별로 결제하는 수고가 몸에 익지 않았고, 돈을 내지 않고도 손쉽게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어둠의 경로가 있었다면 OTT가 이토록 성황을 누리기는 어려웠을 터다. 누누티브이와 같은 공짜 콘텐츠의 유혹은 아직도 사람들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이 산업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칠 줄은 몰랐다. 영화산업 매출에서 IPTV의 주문형비디오(VOD) 등과 같은 극장 외 수익 비중은 2019년까지 20%대 미만이었다. 그러다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영화관 매출이 크게 감소하면서 극장 외 수익 비중이 40%대까지 늘었다. 극장 외 수익의 절대액은 2019년보다 소폭 줄어들었지만 영화관 매출이 워낙 줄어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정상화로 돌아간 2022년 기준으로도 이 비중은 26.6%, 금액은 2019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특히 극장 외 수익에는 IPTV의 VOD 수익과 OTT 수익이 함께 포함돼 있어 통계를 보면서도 문제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VOD 수익은 줄었지만 OTT 수익은 늘었으니 별문제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느끼는 체감은 달랐다. VOD를 통한 수익은 건별 결제액을 정산하는 형태지만 OTT 판매는 한번 판매하면 끝이다. 단건 판매액의 수준에 따라 건별 결제가 나을 수도, 단건 판매가 나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단건 판매액이 결제 정산액보다 낮다는 게 영화계의 주장이다. 게다가 OTT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영화 판매액이 점점 낮아지는 게 문제였다. 코로나19 이후 OTT들도 수익성을 추구하면서 콘텐츠 구매가격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 영화사가 얻는 극장 외 수익은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게다가 OTT를 구독하는 소비자는 조금만 기다리면 놓쳤던 개봉 영화를 볼 수 있어 영화 관람을 더 늦췄다. IPTV에서 건별로 결제하던 때보다 이 차이는 더 커졌다. 이미 지불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 OTT 구독료를 충분히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라 영화관에 또 돈을 내는 것을 이전보다 더 아까워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편리함과 효율에 끌려 OTT로 건너갔고, 영화산업은 극장 수익도, 극장 외 부가수익도 크게 줄어들었다.
통신사 통한 할인 금액은 누구의 것?
영화관 요금 할인으로 인한 극장과 배급사·영화사 간 부율 조정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영화표를 팔게 되면 그 금액에서 영화발전기금 3%와 부가세 10%를 뗀 뒤 극장과 배급사가 대략 절반씩 나눈다. 배급사가 거둔 이 절반 금액에서 배급수수료, 마케팅비, 제작비 등 비용을 정산하고 남는 게 수익이다. 최근 영화 관람객은 줄었지만 영화관 요금이 50% 가까이 올랐으니 수익은 덜 줄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할인’이 복병이었다.
영화관 요금이 오르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지자 통신사 등에서 제공하는 영화표 할인을 이용하는 비중도 늘었다. 보통 통신사의 영화표 할인 서비스는 4천원에서 5500원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특정 영화관에서 1만4천원짜리 표를 구입하면서 통신사에서 5500원을 할인받는다면 소비자가 내는 실제 금액은 8500원이다. 그런데 이 영화관에서 발급하는 영수증에는 가격이 8500원이 아니라 7천원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영화계 주장이다. 영수증 가격이 소비자가 지불한 금액보다 낮은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이 영화관이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등록하는 티켓 판매 가격은 영수증에 기재된 금액이라는 점이다. 배급사, 영화사들은 이 금액이 부가가치세·영화발전기금 산정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영화관 쪽에서는 통신사에서 보전받은 금액은 공정하게 배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부적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수익을 배분받는 배급사·영화사는 영화관 쪽의 불투명한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실제 어느 금액을 기준으로 정산했는지 다른 영화관들도 정확한 실태 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유다. 영화표 가격은 크게 올랐는데 할인 가격으로 정산했다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수익 배분, 장기적으로 봐야 해결 실마리
두 문제 모두 소비자는 큰 문제점을 느끼기 어려워 이슈화가 쉽지 않다. OTT는 소비자에게 IPTV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더 낮은 가격, 더 편리한 방식으로 제공했다. 영화표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할인을 통해서든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나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통사업자들 이익 중심으로만 재편되면서 콘텐츠 제작사들의 수익은 더 줄어드는 쪽으로 구조화된 측면이 있다. 그 결과는 제작사들의 약화이고, 더 좋은 콘텐츠가 생산되지 못할 가능성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있다. OTT의 경우 현재와 같은 단건 판매 형태가 아니라 시청 횟수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형태나 절충 방식이 도입된다면 제작사들의 불만은 줄어들 수 있다. 오히려 수익이 더 떨어지는 영화가 생겨날 수 있지만 정보가 투명히 공개되면 불만을 제기하기 어렵다. 영화표 할인도 영화관이 배급사, 제작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할인 부분에 대한 수익 배분 원칙을 정하면 될 일이다. 단기적 시각으로는 수익을 일부 내주는 것처럼 느껴져도, 제작사가 사라지면 유통사도 돈을 벌어들일 방법은 없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만 만든 것이 아니라 OTT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들이 영화 현장에서 경험을 쌓지 못했다면 현재 OTT에서 사랑받는 많은 시리즈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계는 단순히 영화산업만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콘텐츠 전반의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사라지면 영화도, 다른 콘텐츠의 수급도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부족한 떡이라도 서로 나눠 먹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거 벤처캐피털이 영화 제작사에 투자 수익의 40%를 떼어 주는 파격적인 원칙을 정착시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zkim@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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