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야, 네 이름은 브루노"…제 방식대로 고독한 이들의 특별한 삶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9. 7. 09:03
[취향저격]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고독 - 제21회 EBS국제다큐영화제 (글 :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올해로 21회를 맞이한 EBS국제다큐영화제는 장편 극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담은 여러 주제의 다큐 영화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고독감, 혹은 자발적으로 택한 고독에 대한 다큐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에게 고독은 평생 채워진 적이 없는 마음속 빈 호수와도 같다. 그래서 고독은 극영화에서도 다양한 연출을 통해 끊임없이 표현되는 주제다.
극영화의 서사는 대개 기승전결 식으로 전개되고 극적 긴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갈등 요소가 들어간다. 극영화는 창작성의 범위가 넓은 만큼 다소 과장된 극적 전개도 용납된다. 철저한 고독이라는 주제로 가장 인상 깊었던 극영화로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의 <한나>가 떠오른다. 샬롯 램플링이 연기한 한나는 처음부터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오로지 혼자다. 그래서 카메라는 그녀 내부의 갈등 묘사에 초점을 맞춘다.
다큐가 보여주는 고독감은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큐는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연출되기 때문이다. 고화질로 자연의 절경과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상사에서 잠시 벗어나 힐링을 주는 다큐는 많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촬영된 자연다큐 영화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은 없다. 인간은 그냥 관찰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자연과 인간의 고독이 함께 얽혀 조화를 이룬 영화들을 이번 다큐영화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산불 전망대 위에서>는 캐나다에서 일하는 산불 감시원들의 삶을 보여준다. 1년에 최대 6개월을 일하며 산불의 40퍼센트를 조기 발견하는 산불 감시원들은 산 위에 있는 15미터, 30미터 높이의 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연기가 나는 곳이 있는지 망원경으로 주시한다. 주변은 온통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료하고 외로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힘이 느껴진다. 그들이 지닌 힘이 이 다큐의 주제인 셈이다.
고독감을 대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방식이 없다면 견딜 수 없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고독 대처법은 그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은 파리에게 브루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교류한다. 대부분은 독신인데 가정생활과 병행하기 힘든 직업이라 이해가 간다. 그들은 원래 혼자 지내는 것을 즐기고 다른 이들의 간섭을 싫어한다는 특성이 있지만, 고독에 대한 자신만의 확실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구름, 새, 벌레 등 자연의 모든 것을 친구로 삼을 수 있으며,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다.
인간은 타인과 소통을 통해, 그리고 타인들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는다. 그러면서 고독감에서 벗어나지만 잠시일 뿐이다. 고독감은 수시로 침투한다. 산불 감시원의 삶을 담은 이 다큐는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적 교류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고독의 의미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군중 속의 고독이 더 힘들다고 말하지만, 산불 감시원처럼 말 그대로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타인에게 단 한마디의 따듯한 위로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들의 생존 방식은 인간의 절대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자제력을 유지하고 자신이 스스로 자기 편이 되라고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혼자만 있으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반추하게 되고 후회, 원망 같은 감정들도 밀려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편에 서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또한 무료함이 주는 장점에 대해서도 말한다. 심심해야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말은 마치 뒤통수를 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복잡한 삶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그대로 둬도 괜찮은 삶의 구멍들을 억지로 메우려고 애쓰면서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 6개월의 시간을 보낸 후, 사회로 복귀하면서 그들은 오히려 답답함을 느낀다.
또 다른 다큐 <늑대와 함께>에서 보여주는 고독은 자연 친화적이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듯이 보인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오두막에서 두 사람이 함께 지내지만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도 속삭이듯이 하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 있는 목적은 늑대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늑대는 멀리서도 인기척을 감지한다. 그래서 어딘가에 분명히 있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숨죽이며 종일 늑대를 기다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의 고독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은 서서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간다. 한밤중에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그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이라고 표현한다. 늑대는 이중성의 의미를 지닌 동물이다. 인간은 늑대를 악과 위험의 상징으로 혐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용맹하고 영험한 존재로 추앙했다. 서식지 파괴와 박멸로 멸종위기에 처한 늑대는 이제 더 신비로운 존재가 됐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그토록 기다리던 늑대 가족무리가 나타났을 때 느꼈을 그들의 희열이 영상 속에서 그대로 전달된다. 펑펑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탐스러운 털을 휘날리며 늠름하게 걷는 늑대들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관찰자는 늑대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늑대들은 자신에게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관객에게는 더 친근한 느낌으로 바뀐다. 어느 순간 대장 늑대가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할 때, 숨이 멎는 기분이 된다. 그는 어딘가에 숨어 자신을 관찰하는 인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큐를 보면서 늑대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올해로 21회를 맞이한 EBS국제다큐영화제는 장편 극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담은 여러 주제의 다큐 영화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고독감, 혹은 자발적으로 택한 고독에 대한 다큐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에게 고독은 평생 채워진 적이 없는 마음속 빈 호수와도 같다. 그래서 고독은 극영화에서도 다양한 연출을 통해 끊임없이 표현되는 주제다.
극영화의 서사는 대개 기승전결 식으로 전개되고 극적 긴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갈등 요소가 들어간다. 극영화는 창작성의 범위가 넓은 만큼 다소 과장된 극적 전개도 용납된다. 철저한 고독이라는 주제로 가장 인상 깊었던 극영화로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의 <한나>가 떠오른다. 샬롯 램플링이 연기한 한나는 처음부터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오로지 혼자다. 그래서 카메라는 그녀 내부의 갈등 묘사에 초점을 맞춘다.
다큐가 보여주는 고독감은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큐는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연출되기 때문이다. 고화질로 자연의 절경과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상사에서 잠시 벗어나 힐링을 주는 다큐는 많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촬영된 자연다큐 영화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은 없다. 인간은 그냥 관찰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자연과 인간의 고독이 함께 얽혀 조화를 이룬 영화들을 이번 다큐영화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산불 전망대 위에서>는 캐나다에서 일하는 산불 감시원들의 삶을 보여준다. 1년에 최대 6개월을 일하며 산불의 40퍼센트를 조기 발견하는 산불 감시원들은 산 위에 있는 15미터, 30미터 높이의 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연기가 나는 곳이 있는지 망원경으로 주시한다. 주변은 온통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료하고 외로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힘이 느껴진다. 그들이 지닌 힘이 이 다큐의 주제인 셈이다.
고독감을 대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방식이 없다면 견딜 수 없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고독 대처법은 그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은 파리에게 브루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교류한다. 대부분은 독신인데 가정생활과 병행하기 힘든 직업이라 이해가 간다. 그들은 원래 혼자 지내는 것을 즐기고 다른 이들의 간섭을 싫어한다는 특성이 있지만, 고독에 대한 자신만의 확실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구름, 새, 벌레 등 자연의 모든 것을 친구로 삼을 수 있으며,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다.
인간은 타인과 소통을 통해, 그리고 타인들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는다. 그러면서 고독감에서 벗어나지만 잠시일 뿐이다. 고독감은 수시로 침투한다. 산불 감시원의 삶을 담은 이 다큐는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적 교류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고독의 의미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군중 속의 고독이 더 힘들다고 말하지만, 산불 감시원처럼 말 그대로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타인에게 단 한마디의 따듯한 위로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들의 생존 방식은 인간의 절대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자제력을 유지하고 자신이 스스로 자기 편이 되라고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혼자만 있으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반추하게 되고 후회, 원망 같은 감정들도 밀려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편에 서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또한 무료함이 주는 장점에 대해서도 말한다. 심심해야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말은 마치 뒤통수를 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복잡한 삶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그대로 둬도 괜찮은 삶의 구멍들을 억지로 메우려고 애쓰면서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 6개월의 시간을 보낸 후, 사회로 복귀하면서 그들은 오히려 답답함을 느낀다.
또 다른 다큐 <늑대와 함께>에서 보여주는 고독은 자연 친화적이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듯이 보인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오두막에서 두 사람이 함께 지내지만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도 속삭이듯이 하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 있는 목적은 늑대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늑대는 멀리서도 인기척을 감지한다. 그래서 어딘가에 분명히 있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숨죽이며 종일 늑대를 기다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의 고독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은 서서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간다. 한밤중에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그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이라고 표현한다. 늑대는 이중성의 의미를 지닌 동물이다. 인간은 늑대를 악과 위험의 상징으로 혐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용맹하고 영험한 존재로 추앙했다. 서식지 파괴와 박멸로 멸종위기에 처한 늑대는 이제 더 신비로운 존재가 됐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그토록 기다리던 늑대 가족무리가 나타났을 때 느꼈을 그들의 희열이 영상 속에서 그대로 전달된다. 펑펑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탐스러운 털을 휘날리며 늠름하게 걷는 늑대들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관찰자는 늑대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늑대들은 자신에게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관객에게는 더 친근한 느낌으로 바뀐다. 어느 순간 대장 늑대가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할 때, 숨이 멎는 기분이 된다. 그는 어딘가에 숨어 자신을 관찰하는 인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큐를 보면서 늑대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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