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규·김재형 압권…24시간 막장 치정극 '토스카'[이예슬의 쇼믈리에]
전쟁의 참상 그려…우크라이나 오버랩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이것이 바로 토스카의 키스다!"
경찰서장 스카르피아의 가슴에는 토스카가 휘두른 칼이 깊숙이 박혀 있다. 온 로마를 두려움에 떨게 한 스카르피아를 살해한 당사자는 프리마돈나 토스카.
적을 해치운 토스카는 어서 애인 카바라도시의 사형 집행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그녀의 가슴에는 스카르피아가 죽기 전 써준 통행증이 있다. 스카르피아는 사형 집행이 '가짜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죽은 체를 했다가 사람들의 관심이 잦아들면 몰래 빠져나갈 셈이다.
그런데 맙소사. 카바라도시가 죽는 연기를 배우같이 훌륭하게 해낸 줄 알았더니 '진짜' 총을 맞고 죽었다. 악인 스카르피아에게 속은 가여운 토스카는 "오, 스카르피아! 주님의 심판대에서 만나자"며 높은 곳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다.
이로써 24시간 만에 비극으로 얼룩진 삼각관계의 주인공들이 모두 사망한다. 푸치니의 3대 오페라 (토스카·라 보엠·나비부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하다는 평가를 받는 '토스카'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평소 오페라를 즐기지 않는 관객이라도, 클래식에 관심이 없더라도 충분히 극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이다. 지난 5일 공연에서는 '살아있는 토스카'라는 별칭이 붙은 루마니아 출신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토스카를 연기했다. 카바라도시는 테너 김재형, 스카르피아는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이 맡았다.
게오르규 무대 인생의 주요 순간에 항상 푸치니가 있었다. 1992년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에서 '라 보엠'의 미미 역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했고, 1993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미미를 연기했다. 2001년에는 영화판 '토스카'에 출연해 '토스카=게오르규'라는 도식을 만들어 냈다. 그는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토스카 자체가 오페라 가수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어 특별하게 여기는 작품"이라고 했다.
1965년생인 게오르규는 전성기에 비해 힘은 떨어진 듯 했으나 노련함으로 무대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특히 질투와 애교가 많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여인의 캐릭터를 마치 자신의 모습인 양 표현해 냈다. 카바라도시가 그린 막달라 마리아의 푸른 눈이 다른 여인을 닮았다고 질투하며 기어코 눈을 검게 바꿔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연기는 압권이었다.
게오르규와 핑퐁 게임을 하듯 노래와 연기를 주고받는 사무엘 윤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1막의 말미에서 토스카의 질투에 불을 질러놓고 "가라 토스카! 네 마음속에 스카르피아가 파고들었다!"고 외치는 장면은 흡사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들은 8년 전인 2016년 영국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토스카'에 함께 출연한 바 있다. 둘의 환상적인 호흡은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관객들은 김재형의 노래에도 열광했다. 카바라도시가 죽음을 앞둔 처절한 심정을 표현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에서 박수가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토스카는 나폴레옹의 '마렝고 전투'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지만 극을 보면 현 시대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200년도 더 전에 일어난 전쟁이지만 동시대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전쟁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공연에는 아이가 홀로 죽어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지점이다. 표현진 연출은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먼지를 뒤집어 쓴 아이가 폭격 소리에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며 "전쟁으로 황폐해진 환경에서 생존자로 남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이 이야기를 풀어도 관객들이 이해해 주시겠다고 생각해서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는 더블 캐스팅이다. 7일에는 임세경(토스카)·김영우(카바라도시)·양준모(스카르피아)가, 8일에는 안젤라 게오르규·김재형·사무엘 윤이 무대에 오른다.
★공연 페어링 : 스페인산 와인
스카르피아는 파르네제 궁전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토스카에게 핏빛의 스페인산 와인을 권한다. 이탈리아에도 와이너리는 지천에 널려 있을텐데 하필이면? 로마에서의 스카르피아가 누렸을 권세를 감안할 때 '물 건너 온 고급 술'의 느낌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스페인 와인은 국제시장에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고 있지만 점차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템프라니요 품종을 주력으로 하는 '리오하', '리베라 델 두에로' 등이 유명 산지로 꼽히는데 최근에는 '프리오랏'이 프리미엄 산지로 각광 받고 있다.
프리오랏에서는 올드바인(수령이 오래된)에서 자라난 가르나차와 까리녜나 포도로 고급 와인을 만든다. 무덥고 건조한 기후가 포도의 당도를 높이지만 저녁에는 기온이 떨어져 산도도 좋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면 와인에 복합적인 맛이 생긴다.
와인의 풍미를 높이는 데에는 토양도 한 몫 한다. 리코레야라고 불리는 붉은 점판암은 포도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쉽지 않다. 나무가 물과 영양분을 어렵게 빨아들일수록 더 좋은 와인이 된다. 포도나무는 대체로 언덕에 심어져 있어 기계를 쓰기 어렵다. 사람 손이 많이 가니 자연히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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