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밤바다에서 집어등 켜니…가족 먹일 갈치가 줄줄이 [ESC]

한겨레 2024. 9. 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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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해? 갈치 낚시
통영에서 배타고 2시간 나가
쉽게 많이 잡히는 갈치 낚시
맛있다며 만족도 높은 가족들
지난 2일 경남 통영 삼덕항을 떠난 낚싯배가 2시간가량 이동해 통영시 욕지면 국도 인근 바다에 도착했다. 집어등을 밝히면 하룻밤 갈치낚시가 시작된다. 박무영 제공

박무영이라는 내 친구가 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고, 사회 초년생시절도 비슷했다. 미래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투명했고, 결혼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서웠고, 아이가 태어나자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벅찬 우리들이 과연 저 귀여운 갓난쟁이들을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미심쩍어 하며 같이 어른으로 자라온 오래된 친구다. 그러나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온 그와 나에겐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첫째와 둘째를 3년 터울로 낳아서 나름의 육아 적응기를 거쳤던데 반해, 박무영은 한번에 세 쌍둥이의 아빠가 되었다.

귀어한 세 쌍둥이 아빠인 친구 따라

세 쌍둥이의 아빠라니. 나로서는 상상이 잘 안되는 인생의 루트로 친구가 들어섰고, 우리는 한동안 육아라는 핑계로 잘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해 추석인가 친구 몇 명이 고향에서 함께 만났는데 그가 이런 선언을 했다. “생각을 해봤는데, 얘들이 한번에 대학가고, 비슷하게 결혼을 할텐데, 도무지 회사 생활로 애들 키울 자신이 없다.” 그러더니 뜻밖에 귀어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귀어?” “응. 나 바닷가 가서 살려고.” 친구들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이러다 말겠지 하며 웃어 넘겼는데 그는 진짜로 도시를 떠나 통영으로 이주했다.

어느날 전화했더니 횟집에 취직해서 생선 회 뜨는걸 배우고 있다고 했고, 또 한참 후에 전화가 오더니 가게를 열거니까 간판을 디자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래 다 좋은데, 가게 이름은 뭘로 하려고?” “응. ‘떠드림’(The Dream). 회를 뜨지만 웅대한 꿈을 안고 있다는 뜻이지.” 낚시꾼이 잡아온 고기를 회 떠주는 가게를 하겠다는 것인데, 회 뜨는 것과 꿈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아마, 말은 안했지만 힘들었을 거다. 무영이가 귀어한 통영은 우리가 함께 낚시를 위해 들르던 곳이긴 했지만, 친척도 친구도 없는 그 곳의 삶이 매일 그가 도마 위에서 만나는 칼날 위의 삶처럼 위태했으리라. 나는 자주 그에게 전화를 했다. “무영아 요새 고기가 뭐가 잘 나오니? 바다 날씨는 어떻노? 그래 며칠 있다 한번 찾아갈게.” 사실 찾아가겠다는 약속은 전화 할 때마다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찾아가본 기억은 손에 꼽힐 만큼 많지 않다.

그러다 역대로 더웠던 이번 여름 8월 초 휴가 시즌이었는데, 이리저리 따져봤더니 진짜로 하루 낚시할 시간이 되었다. “무영아 무슨 낚시 할꼬?” “음, 갈치 낚시 하자.” 친구의 설명은 이랬다. 너무 더워서 갯바위 갔다간 타죽을지 모르니, 선선한 바람 쐬며 갈치 밤낚시를 하자고. 마침 갈치 금어기가 풀리는 때니까 바다위에서 바람이나 쐬다 오자고. 그렇게 나, 무영이, 또다른 친구 준성이, 무영이 동생 명주, 이렇게 네 사람은 낚시꾼만 18명이 탈 수 있는 ‘삼덕 레저호’라는 커다란 배를 타고 갈치를 잡으러 갔다. 갈치 낚시를 하는 배들은 먼 바다로 나가는 배들이어서 그런지 가는 동안 에어컨이 달린 선실에서 시원하게 누워서 잘 수 있었고, 배에는 도시락부터 라면 끓이는 기계, 커피 머신까지 편의시설이 잘 준비 되어 있었다.

통영 삼덕항을 출발해 2시간을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데, 에어컨 바람에 선실이 너무 추워서 배 밖으로 나갔더니 무영이는 도시에서 온 우리가 낚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얼음과 미끼를 준비하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녁놀이 빨갛게 물드는 걸 보며, 요즘 사는게 어떠냐며 물었는데, 무영이는 “뭐, 예전엔 니하고 내하고 낚시 실력이 비슷했지만, 이제는 비교가 안 되지 뭐”라며 ‘도시 촌놈’인 준성이와 나를 도발하며 웃었다.

일반 낚시와 다른 가장으로서의 취미

손님이 잡은 5지가 넘는 큰 갈치를 보자, 매일 갈치를 손질하는 친구 박무영이 놀라고 있는 모습. 박무영 제공

갈치 낚시는 기법이 간단하고, 필요하면 배에서 낚싯대까지 빌릴 수 있는 비교적 쉬운 낚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갈치 낚시의 좋은 점은 맛있는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점이다. 혹시 제주나 목포, 여수, 통영 등 남쪽 바닷가에서 한밤중에 먼 바다를 보면 바다 위에 점점이 불을 밝히는 배들을 볼 수 있는데, 깜깜한 먼 바다에서 점점이 불을 밝히는 이 집어등은 효과가 대단해서 아주 적게 잡히는 날이어도 개인 당 10마리 이상은 잡을 수 있고, 갈치가 아주 풍어기였던 작년의 경우, 무영이의 가게에 갈치를 손질하러 왔던 손님 중에 가장 많이 잡은 손님은 150마리의 갈치를 잡아왔다고 했다. 잔잔한 바다 위에 집어등을 밝히자 입질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먹갈치와 은갈치는 사실 완전히 같은 종류다. 그물에 잡힌 갈치들은 고기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비늘이 상해 검게 변해 먹갈치라고 부르고, 낚시로 잡는 갈치들이 물위로 올라오면 한자루 잘벼린 칼처럼 은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고기여서 ‘칼치’ 혹은 은갈치라고 부른다. “야. 무영아. 갈치가 진짜 네가 쓰는 회칼같네”라고 내가 말했을 때 무영이는 “임마. 헛소리 말고 빨리 잡아라. 좀 있다 물 바뀌면 고기 안 문다”며 제법 바닷사람처럼 말했다. 오후 3시에 항을 출발하여 오후 6시쯤 시작된 낚시는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이어졌는데, 우리 네 사람이 한 사람당 20~30마리씩은 잡은 듯 했다. 갈치는 너비로 크기를 재는데 어른 손가락 3개 너비의 3지부터 손가락 4개만한 4지까지. “야. 이걸 시장에서 사먹으면 도대체 얼마냐?”며 ‘도시 촌놈’들은 제법 만족했는데, 무영이는 “10월은 돼야 고기가 되겠구마”라며 마음에 안 드는 어투였다. 무영이는 갈치 낚시는 8월에 금어기가 풀리면서 시작되고, 10월이 되면 고기의 마릿수도 크기도 가장 좋고, 겨울로 가면 고기는 크지만 마릿수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운 갈치낚시가 끝나고 손질된 갈치는 주로 다음날 갈치구이로 저녁 밥상에 올라가곤 한다. 박무영 제공

집에 돌아와 잡은 고등어와 갈치는 굽고, 삼치는 회를 떴는데 가족들은 시장에서 파는 것과는 맛이 딴판이라며 좋아했다. 새벽에 집을 나가 밤 늦게 들어오는 보통의 낚시가 다분히 개인적인 취미인데 반해, 갈치 낚시는 특별히 가장으로서의 취미라고 말할 수 있다. 하루 밤을 꼬박 새는 낚시라 피곤하고, 손맛이 대단히 특별하지는 않지만, 한마리 한마리 잡을 때마다 이걸 먹을 아내와 아이들이 자꾸 생각나니 가장으로서의 취미인 셈이다. 이번 추석 달 밝은 밤, 나는 다시 온 가족에게 낚시로 잡은 갈치 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갈치를 잡으러 갈 것이다. 웬만하면 잡힐테니까 걱정은 별로 되지 않지만, 자주 무영이에게 전화하며 조황은 어떤지 고기가 좀 커졌는지 물어보고 있다. 세상의 많은 도시 아빠들이여, 이번 추석에 돌아가는 고향이 바닷가에서 가까우면 하룻밤 갈치 낚시를 해보는 건 어떨지. 물론 많이 잡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 가족 먹을 만큼은 충분히 내어주는 바다가 우리에겐 있다. 작년 추석에도 거기 있었고, 내년 추석에도 거기 있을 것이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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