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협에 맡긴 고객 돈, 직원들 명퇴금으로 줄줄이 샜다

정윤성 기자 2024. 9. 7. 0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융 당국, “명퇴금 과도” 권고…조합 10곳 중 6곳 4년째 외면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신협이 명예퇴직금 과도 지급을 막기 위해 금융 당국이 내린 규정 개선 권고를 수년째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이 한 조합의 직원이 같은 조합의 상임임원으로 선임되는 경우 명예퇴직금을 지급하지 말라고 권고했으나, 상당수 지역 조합들이 이를 외면한 것이다. 신협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비판과 당국의 관리·감독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함께 제기된다.

시사저널이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신협 조합 866곳 중 515곳(59.4%)이 상임임원의 명예퇴직금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직원 퇴직급여 및 재해보상규정 개정안'(이하 개정안)을 채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협중앙회가 당국의 권고에 따라 해당 개정안을 각 지역 조합에 전달했지만, 절반 이상의 조합이 4년 넘게 이를 무시해온 것이다.

ⓒ연합뉴스

허술한 '임의규정'으로 돈잔치 우려

개정안 내용이 처음 논의된 시점은 2020년이다. 당시 금감원은 신협중앙회 종합감사에서 상임임원에 대해 명예퇴직금을 지급하는 규정이 부적절하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퇴직 후 같은 조합의 상임임원으로 선임되는 것은 사실상 근로계약 연장과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년 전에 근로계약이 종료된 데 대한 잔여기간 보상을 위해 운영되는 명예퇴직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아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의 개선 권고를 받은 신협중앙회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한 조합의 직원이 같은 조합의 상임임원으로 가는 경우 명예퇴직금을 받을 수 없도록 직원 퇴직 급여 및 재해 보상 표준규정을 개정했다. 표준규정이란 모든 조합에 공통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중앙회가 세부적으로 정하는 규정을 말한다. 금감원의 권고에 따라 중앙회가 전 조합의 규정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이 중앙회 표준규정 중 임의규정으로 분류되면서 이 같은 조치가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 중앙회 표준규정은 크게 의무규정과 임의규정으로 나뉜다. 의무규정은 중앙회 이사회에서 채택한 안건을 지역 조합이 반드시 원안대로 따라야 하는 규정이다. 반면 임의규정의 경우 각 조합 사정에 맞게 보충·변경해 채택 가능한 구조다. 조합 이사회의 승인만 받으면 얼마든지 규정을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지역 조합 이사회가 당국이나 중앙회의 권고에 반하는 내용으로 규정을 수정하거나 채택하지 않아도 무방한 셈이다.

실제 이로 인해 임의로 규정을 손본 뒤 퇴직금이 지급된 사례가 확인된다. 부산의 한 신협 조합에서 전무로 근무했던 A씨는 같은 조합의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3억3000만원의 명예퇴직금을 받았다. 해당 조합은 올해 1월25일 명예퇴직금 지급을 제한하는 중앙회의 표준규정을 채택한 곳이다.

개정안이 원안대로 채택됐다면 퇴직금은 지급될 수 없다. 그러나 지역 조합 이사회가 규정을 입맛대로 수정하면서 A씨에 대한 퇴직금 지급이 가능했다. 해당 조합은 명예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는 규정을 둘 중 하나만 충족해도 가능하도록 수정했다. 또 '조합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경우에는 명예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단서조항도 추가했다.

금감원은 해당 규정이 조합 사정에 따라 수정·채택할 수 있는 임의규정이다 보니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규정을 미채택한 조합 515곳이 향후 규정을 채택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해당 조합들이 규정을 채택하지 않은 기간 동안 명예퇴직금을 얼마나 지급해 왔는지 또한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신협중앙회 관계자는 "현재 중앙회 차원에서 명예퇴직금 지급에 대한 문제 의식을 느끼고 해당 규정과 관련해 전수조사에 들어간 상태"라며 "조사가 끝나는 대로 임의규정을 의무규정으로 변경하는 등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허술한 규정 체계를 악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올해 3월 서울시 한 조합의 상임이사인 B씨가 총 4억원 상당의 명예퇴직금과 조기퇴직금을 지급받기 위해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까지 해당 조합 전무로 근무한 B씨는 상임이사로 선임된 후 개정되지 않은 규정을 근거로 조합에 명예퇴직금 지급을 요구했다. 당시 해당 조합은 중앙회의 개정안을 채택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조합 이사회는 퇴직 이후 퇴직금 지급과 관련한 이사회 의결 절차가 이뤄지지 않는 등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상임이사 B씨가 직원으로 근무했을 당시 이사회 안건과 관련한 실무 책임자였다는 점이다. 중앙회에서 권고하는 규정 개정안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일도 B씨 담당이었다. 이를 두고 실무 책임자로서 개정안을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다가 상임이사 자리에 오르자 개정되지 않은 규정을 근거로 퇴직금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사회 입맛대로 규정 손질

한 조합 관계자는 "중앙회에서 규정을 개정하라고 공문을 보냈는데, 해당 규정은 임의규정인 데다 실무 책임자가 안건을 보고하지 않으면 대부분이 비상임인 이사회 특성상 알기 어렵다"며 "결국 개정안이 4년 넘게 이사회 안건에도 오르지 않았던 건 실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의심할 만한 부분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신장식 의원은 "금감원이 권고를 내린 지 3년이 지나도록 이행률이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은 신협중앙회와 지역 신협의 개선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며 "금융기관에 대한 권고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금감원이 이행점검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