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조력자' 낙인 찍힌 '수호천사' [텔레그램의 두 얼굴①]
대화 자동 삭제 기능·서버 기록 X 등 뛰어난 보안성이 양날의 검
표현의 자유·사생활 보호 vs 마약 밀매·아동 성착취물 범죄 성행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
#1. 반도체 기업에 다니는 50대 임원 A씨는 최근 기업으로부터 텔레그램 앱을 다운로드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기업 임직원들과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할 일이 많은데 대화 유출이 우려되는 만큼 채팅 기록 자동 삭제 기능이 있는 텔레그램을 사용해 유출 우려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2. 인천 지역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B군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친구, 지인 합성 능욕 판매'라는 게시물을 올린 뒤 텔레그램으로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 성착취물을 장당 2000~3000원에 판매했다. A군의 게시물을 본 이용자들은 자신의 친구 사진을 보내 음란물을 받았다. 누가 봐도 중대한 범죄. 하지만 이들은 경찰에 걸릴 거라는 데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채팅 기록이 자동으로 삭제되고 경찰이 대화 당사자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대한민국 사회의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다. 딥페이크 성범죄물 영상의 유통 창구로 지목되면서다. 텔레그램의 은닉성 때문이다. 수사 당국의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가해자들이 악용했다.
사실 은닉성은 텔레그램이 단기간에 9억50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배경이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 보장하겠다는 것이 서비스 철학이다. 비밀 대화 기능을 제공하고 서버에 기록을 남기지도 않는다. 서버 저장 기록 등 각국 정부의 데이터 협조 요청에 곧잘 외면한다. 검열 정책에 반대하거나 사생활을 중시하는 이용자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팬층이 두텁다. 2014년 국산 메신저 사찰 논란 당시 카카오톡의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일주일 만에 무려 150만명이 가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치인과 기업임원, 언론인 등도 긴밀한 대화가 필요할 때 텔레그램을 많이 쓴다. 2022년 권선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휴대전화 화면 노출 사건으로 대통령조차 텔레그램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양날의 검일까. 텔레그램의 은닉성은 범죄자들에게 매력이다.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와 마약 밀매·성범죄물 유통창구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범죄 방조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됐고 수사당국의 정보 제공 요구에 불응한 혐의 등으로 예비기소 됐다. 딥페이크 성범죄물 사태로 한창 시끄러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정부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새다.
"누구도 내 대화 엿볼 수 없다"…'보안 최강' 텔레그램
"누구도 내 악행 엿볼 수 없다"…범죄 소굴로 몰락한 텔레그램
2013년 8월 출시된 텔레그램은 비밀 대화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소통 창구, 사이버 검열에 자유로운 메신저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텔레그램은 특정 시간이 지난 후 그동안 기록된 모든 메시지를 삭제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특정 시간은 이용자가 24시간, 1주일, 1달 등으로 설정할 수 있다.
텔레그램은 종단 간 암호화 기술 기반 비밀 대화 서비스를 운영한다.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은 송신자 기기(스마트폰 등)에서 메시지가 즉시 암호화되고 서버를 거쳐 수신자 기기에 도착하면 이때 복호화되는 기술이다. 메시지 송신과 수신까지 이어지는 경로(서버)를 수색해도 해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은 카카오톡 '비밀 채팅', 라인 '레터 실링'에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 네이버와 달리 텔레그램은 해외 기업이라 국내 수사당국의 서버 압수수색에도 자유롭다.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이 처음 주목받은 건 사이버 검열에 자유롭다는 점이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온라인 여론 통제 우려가 제기되자 일부 국민이 비밀 대화 창구로 텔레그램을 선택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9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한 뒤 검찰이 온라인 허위사실 유포자를 처벌하는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설치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에서 나타나는 여론을 통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일부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으로 메신저를 갈아타기 시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텔레그램은 2014년 10월7일 트위터(현 엑스)를 통해 "지난주부터 15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텔레그램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현재도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텔레그램 앱 월 사용자 수는 347만1421명으로 전달 대비 9.8% 늘었다. 딥페이크 성범죄 확산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도 텔레그램의 은닉성이 부각되면서 이용자가 더 몰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밀보장'이라는 이점은 텔레그램이 범죄자들의 피난처라는 오명을 받게 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마약 밀매, 성 착취물 유포 등 범죄자들의 은밀한 소통 혹은 거래 창구로 악용됐다.
텔레그램에서 범죄행위가 발각되더라도 가해자와 조력자들을 제대로 특정할 수 없어 수사망에도 피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ISIS(이슬람국가)가 테러리스트를 모집할 때도 텔레그램을 이용했다. 지난 2021년 1월 미국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를 일으킨 극우 세력도 텔레그램으로 주로 소통했다.
국내에서도 텔레그램 서버를 압수수색할 수 없기 때문에 익명 범죄, 가짜뉴스 창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2019년 'N번방' 또는 '박사방'으로 알려진 성 착취물 제작·유포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조주빈 등이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했다.
경찰은 텔레그램 본사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대표 이메일 계정으로 수사 협조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텔레그램 측이 경찰 메일 7건을 모두 회신하지 않아 한동안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이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수사를 위해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공문을 보냈으나 7일 현재까지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램과 연락이 닿은 정부기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일하며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방심위 외 기관들은 텔레그램 측에 보낸 연락에 회신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레미 본(Remi Vaughn) 텔레그램 대변인은 뉴시스에 "기본적으로 신고 이메일 주소는 삭제 요청 결과에 대한 피드백(회신)을 제공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했다"며 텔레그램이 범죄와 연관된 콘텐츠 삭제에 비협조적이라는 우려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lpac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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