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서 발견된 뼈 무더기 미스터리

김미래 기자 2024. 9.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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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뼈 출토 전경. 과학동아 제공

지난 7월 17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재개발 건설 현장. 재개발 부지를 발굴 조사하던 현장 관계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연일 계속되는 비로 질퍽대던 땅에서 큰 머리뼈가 발견된 것이다.

비까지 내려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출된 가운데 공사 현장 여기저기에선 거대한 뼈 무더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부들의 목덜미 털을 쭈뼛 서게 만든 뼈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발단 : 한성 복판에서 무더기로 매장된 소뼈 발견 

"머리뼈가 두 개 정도 발견이 되니까, 아 ~ 이거 뭔가 이상하다 싶었죠."  

현장을 목격한 관계자는 즉각 국가유산청에 연락을 취했다. 발굴 현장인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은 조선 왕조의 수도인 서울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선 2022년 12월부터 지표면에 대한 시굴 조사가 진행됐다. 과거 조선 왕실이 거주했던 서울 사대문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 안쪽은 문화유적이 발굴될 가능성이 높아 개발 전에 발굴 작업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2024년 7월 발굴 작업 중 온전한 형태의 동물 머리뼈가 2개 가량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현장에 직접 가보니 소의 머리뼈가 아주 잘 보관돼 있었어요. 한눈에 소라는 걸 알 수 있었죠." 

김헌석 국가유산청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도착과 동시에 발굴에 투입됐다. 이렇게 동물의 뼈가 발견되면 가장 먼저 현장에서 1차 동정 작업을 시작한다.

발굴과 동시에 육안으로 종을 구별하는 것이다. 뼈의 크기나 모양을 확인해 대략적인 동물의 종류를 파악한다. 어떻게 뼈 모양만 보고 알 수 있느냐고 묻자 김 학예연구사는 "조금의 경험치가 필요하다"며 웃었다. 

다음으로 뼈가 어떤 형태로 흩어져 있는지를 통해 묻힐 때의 상황을 유추한다. 만약 머리뼈와 다리뼈 등 구조상 겹쳐있기 힘든 뼈가 겹쳐있다면 뼈만 따로 버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동물의 신체 구조대로 발견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죽은 후 모습 그대로 묻혔을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추가로 묻혀있는 땅의 깊이를 확인한다. 깊이를 통해 층서를 추정하면 뼈의 매장 시기를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약 이틀에 걸쳐 발굴한 결과 가로 3m에 세로 4m,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1.5m×1.8m 크기의 돗자리 4개를 합친 듯한 면적에서 8마리 이상의 소뼈가 출토됐다. 유물 상자 150개 정도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김 학예연구사는 "땅의 깊이를 봤을 때 소뼈는 약 500년 전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며 "조선시대 한성 복판에서 소뼈가 무더기로 매장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소뼈가 온전히 보존됐을까. 이 소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뼈가 직접 이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경주 월성연구센터 수장고에 보관된 소뼈들.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캐비닛과 그 캐비닛을 가득 채운 각 상자에는 소뼈들이 가득했다. 과학동아 제공

● 의문1:  어떻게 온전하게 보존됐나

7월 30일 오후 2시,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종로에서 발견된 소뼈가 보관돼 있다는 경주 월성연구센터 수장고에 도착했다. 수장고에는 종로에서 발굴된 소뼈가 4일 전 도착해 자리하고 있었다. 수장고 내부는 40도에 다다르는 바깥의 무더위와 정반대 환경이었다. 냉기가 감돌았다. 김 학예연구사는 "현재는 소뼈를 안정화하기 위해 온도가 낮은 곳에 서 보관 중"이라고 설명했다.

냉장 시설이 갖춰진 수장고는 가로 4칸, 세로 4칸으로 나뉜 캐비닛 10개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의 캐비닛에는 사과박스 크기의 상자가 48개까지 들어간다. 박스마다 거뭇한 색을 띠는 뼈, 엷은 노란색을 띠는 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양에 한 번 놀랐고 꽤 잘 보존된 소의 머리뼈에 두 번 놀랐다. 산장 속 벽에 걸려있을 것만 같은 소의 머리뼈는 뿔부터 아래턱 이빨까지 생생했다.

"소뼈가 축축한 흙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김 학예연구사는 설명했다.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는 생물체가 오히려 더 잘 썩지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적당한 습기가 있는 환경은 동물 뼈가 보존되기 좋은 환경"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축축한 흙에서는 미생물의 활동이 억제돼 뼈가 잘 썩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건조한 환경은 뼈가 마모되거나 부서질 위험이 있다.

흙의 산성도도 뼈 보존에 영향을 미친다. 뼈를 이루는 인산염은 중성 또는 약산성 환경에서 변형되지 않는데 축축한 흙이 중성 또는 약산성을 띤다. 김 학예연구사는 실제로 이번에 소뼈가 발견된 장소는 조선시대부터 물길이 지나다니던 곳이고 주변에 청계천도 있어 흙이 충분한 습기를 지녀 뼈가 잘 보존됐을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실제 발굴된 뼈에도 젖은 흙이 묻어있었다"고 회상했다.

한편 습기는 유골 보존에는 축복이지만 연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축축한 곳에 보존됐던 뼈는 부서지기 쉬워 연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학예연구사는 "소뼈를 약 3개월 정도 시원한 이곳 수장고에 보관하며 건조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뼈를 연구하면 종로 소뼈 사건의 두 번째 의문인 소의 정체를 본격적으로 밝힐 수 있다.

2024년 7월 17일,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에서 발견된 소뼈 중 머리뼈. 아래턱에 꽂혀 있는 이빨까지 생생하다. 과학동아 제공

● 의문 3 : 어떤 소가 묻혀 있었나

"동물 뼈를 연구하는 방식은 유해 감식 방식과 거의 유사합니다. 사람도 동물이니까요." 

김 학예연구사는 소뼈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들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안정화 과정과 동정 작업을 거친 소뼈는 다양한 분석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뼈를 분석할 때에는 주로 'DNA 분석'과 '안정 동위 원소 분석'을 한다.

DNA 분석은 뼈에서 채취한 DNA를 통해 생물체의 모습과 유전적 정보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먼저 뼈에서 채취한 DNA에 전처리를 해서 순수한 DNA만 추출한다. 이렇게 얻은 DNA는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PCR 기법을 사용해 증폭한다.

증폭된 DNA를 서열 분석기로 분석해 유전 정보를 해독한다. 김 학예연구사는 DNA 분석을 통해 해당 소가 어떤 종류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는지, 체구는 어땠는지, 털의 색이 무엇인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뼈가 발견된 세운 4구역 인근은 이전에도 유물이 자주 출토되던 지역이다. 2021년 6월에는 인사 동 발굴조사 구역에서 금속 활자 1600여 점 등이 발견됐다. 사진은 금속활자 ‘갑인자’. 국가유산청 제공

DNA로 밝힐 수 없는 정보는 다른 성분을 분석해 알아낸다. 대표적인 물질이 단백질 '콜라겐'이다. DNA는 태생부터 가진 특징을 담고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소가 살면서 어떤 환경에 노출됐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반면 뼛속의 단백질인 콜라겐은 사는 동안 먹은 음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 그 구조적 안정성 때문에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어떤 동물의 뼈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 이것으로 동물이 노출된 환경을 분석할 수 있다. 

안전 동위 원소 분석은 뼈에서 추출된 콜라겐을 사용해 진행한다. 고고학 생물 연구에서는 모든 유기 생명체에 존재하는 탄소의 동위 원소를 활용한다. 먼저 탄소-14의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소가 죽은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탄소-14는 약 5730년마다 그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가지기 때문에 소뼈의 콜라겐에서 발견된 탄소-14의 양을 파악하면 소가 죽은 연도를 확인할 수 있다.

탄소 동위 원소를 분석하면 소가 생전에 주로 먹던 먹이도 알아낼 수 있다. 김 학예연구사는 "소뼈의 탄소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탄소-12가 더 많으면 밀, 쌀, 보리 등을 주식으로, 탄소-13이 더 많으면 옥수수, 기장 등을 주식으로 삼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경로에 따라 탄소-12와 탄소-13이 합성되는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밀, 쌀, 보리, 콩 등은 주로 탄소-12 비율이 높아지는 광합성 경로를 따라 탄소-13보다 탄소-12의 비율이 높다. 반면 옥수수, 사탕수수, 기장 등은 탄소-13 비율이 높아지는 광합성 경로를 따라 탄소-13의 비율이 탄소-12보다 높다. 

동위 원소를 이용한 분석 방법은 전쟁 장소에서 발견된 유해를 분석하는 데도 사용된다. 치아가 형성될 당시 마신 물에 따라서 산소-18과 중수소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비율을 분석하면 어떤 대륙 혹은 지역에서 거주하던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 

"소의 뼈만 가지고서도 정말 많은 정보를 밝혀낼 수 있습니다. 동정 분석을 마치는대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면 조선시대 소의 모습이 더욱 자세히 밝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종 연구 결과가 나오려면 약 1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김 학예연구사는 말했다. 

● 의문 3 : 왜 도성 한복판에 묻혔나

하지만 과학적 연구만으로는 가장 큰 의문을 풀기에 부족하다. 왜, 누구에 의해 소뼈 무더기가 한성 사대문 한복판에 묻혔냐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세운4구역은 500년 전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제사가 이뤄졌던 종묘 인근이다.

때문에 예전부터 땅을 팔 때마다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3년 전인 2021년 6월에는 가까운 인사동 발굴조사구역에서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세종 시대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와 물시계 부품 등이 발견된 바 있다.

 
소들이 묻힌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현장에서 소뼈를 수거했던 김 학예연구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18년 연구하면서 처음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뼈가 묻힌 약 10개의 구덩이가 한 곳에 밀집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뼈가 발견된 장소가 과거 백정들이 살던 백정마을의 마전교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선시대 백정은 주로 도축을 하며 살았고 마전교는 소나 말을 도축하고 사고 팔던 도매시장을 뜻한다. 구체적인 과정은 아직 알기 어렵지만 소가 거래되던 장소였단 것이 소의 유해가 발견된 이유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더 여러 곳에서 많은 소뼈가 발견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김 학예연구사는 "소뼈가 묻혀 있었다 하더라도 500년 가까이 보존될 수 있는 것은 주변 환경 덕이 크다" 며 "매장된 많은 뼈 중 다른 뼈들은 삭아 없어지고 축축한 흙에 매장된 뼈들만 남아 발굴됐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제사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그는 "소뼈에 열이 가해진 흔적이나 도살의 흔적이 없어 그 가능성은 작다"고 답했다. 전염병으로 인한 집단 폐사 가능성에 대해선 "조선시대 소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소에게 큰 전염병이 돌았다면 고문서 기록에 분명히 남아있을 텐데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그 기록을 찾지 못했다"며 "고문헌을 찾아 보며 대조해 보는 작업도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소들은 서울 한복판에 묻혔을까. 그 이유는 고고학적 분석과 함께 사료로 남아있는 역사적 기록을 동시에 대조하면서 찾아가야 한다.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소뼈는 비밀이 풀리길 바라며 경주의 서늘한 수장고 안에 잠들어 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9월호, 서울 한복판에서 발견된 뼈 무더기의 정체는?

[김미래 기자 futurekim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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