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밥상' 명인 고정순 "자연 닮은 제주 향토음식 발굴 지속돼야"

고동명 기자 2024. 9. 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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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향토일]고정순 제주향토문화연구소장
사계절 밥상·쉰다리 등 제주음식 발굴·전파 기여

[편집자주] 지역마다 특색이 담긴 향토음식과 전통 식문화가 있다. 뉴스1 제주본부는 토요일마다 도가 지정한 향토음식점과 향토음식의 명맥을 잇는 명인과 장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향토일(鄕土日)이라는 문패는 토요일마다 향토음식점을 소개한다는 뜻이다.

고정순 제주향토문화연구소장/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2011년 3월. 제주시 용담1동에 위치한 세심재 갤러리(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 그림이나 조각품이 전시돼야 할 갤러리에 보리밥과 구수한 된장 냄새가 퍼졌다.

이 갤러리에서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서예가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먹은 음식을 제주대학교의 고증을 통해 재현한 '추사 유배밥상'이 전시 중이었다.

전시회에는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하면서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근거해 민어 등 제주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먹거리와 추사가 실제 즐겨 먹었던 음식을 바탕으로 만든 밥상이 차려졌다.

이 추사밥상을 성공시킨 인물이 바로 제주도 제2호 제주향토음식 명인 고정순 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 소장이다.

고 소장은 식품영양학과로 학위를 땄지만 정작 젊은 시절에는 요리와는 큰 인연이 없었다. 30~40대 교사와 교수의 길을 걷던 그는 제주문화포럼 향토음식연구회와 슬로푸드운동한국위원회 부회장을 맡으며 점차 제주 음식에 눈을 뜨게 됐다.

음식을 배우려고 전국의 유명한 요리사들을 찾아다니던 그는 사찰음식을 접하고 "바로 이거다"라고 외쳤다.

고 소장은 "사찰음식은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소박하며 복잡한 조리를 거치지 않고 무엇보다 먹을만큼 만들어 음식을 버리지 않는데 제주 음식과 공통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고 소장은 사찰음식을 토대로 고기와 생선을 더해 제주다운, 그러나 현대인의 입맛을 놓치지 않은 향토음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를 명인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음식은 사계절 밥상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제주의 사계절을 맛볼 수 있는 제철재료로 제주인들이 과거 먹었던 음식을 완성해 극찬을 받았다.

고 소장은 "제주 음식을 보면 자연이 느껴진다. 각 계절마다 산, 바다, 밭, 돌 등 자연에서 생산하고 채취한 것들을 먹고 저장과 조리방법 역시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고 했다.

고 소장은 2005년 당시 대한민국 단일요리대회중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국제요리경연대회에 '제주의 사계절 밥상, 사라져버린 제주의 보양식'을 주제로 참가해 금상을 수상했다.

그는 "전국 팔도의 음식이 모두 참가한 행사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12첩 반상 등 화려하고 근사해보이는 요리들이 즐비해 처음에는 내가 내놓은 제주 밥상이 초라하게 느껴졌다"며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정형화된 식상한 음식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제주 밥상을 더 신선하게 바라본 것 같다"고 전했다.

추사 유배밥상(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 SNS)/뉴스1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은 '쉰다리'다. 먹다 남은 쉰 밥을 발효해 만든 음료인 쉰다리는 세계적으로 힐링푸드로 주목받는 요거트의 제주버전이라 할수 있다.

고 소장은 "쉰다리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발효식품으로 보리밥으로 만든 보리 쉰다리는 쉰 밥을 버리지 않고 누룩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절약이 몸에 밴 제주인의 알뜰함과 지혜가 만들어낸 음료"라고 했다.

고 소장은 제주 향토음식이 나아가야할 길도 제시했다.

그는 "향토음식 보호구역을 설정해 그 지역을 직접 방문해야 먹을 수 있는 독특한 그 지역만의 먹거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갈치나 옥돔국 등 기존에 잘 알려진 음식을 새로운 종류로 개발하고 빼데기떡, 양에나물, 해물김치, 마농지 등 묻혀있던 향토음식을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제주 향토음식은 식재료의 변화로 그 고유의 전통성이 많이 바래가고 있고 보존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묻혀있는 우수한 향토음식을 발굴하고 이어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반편생을 향토음식 발전에 매진한 고 소장의 앞으로 계획은 평범한 어머니였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차려주는 어머니로 되돌아고 싶다"며 "자녀들은 어머니가 자랑스럽다고 하지만 일에만 신경쏟다보니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해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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