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이 가장 많이 본 영화, ‘퇴마 호러’의 조상님[허진무의 호달달]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
출연 린다 블레어, 막스 폰 쉬도브, 제이슨 밀러
상영시간 122분
제작연도 1973년
영화를 사랑하고, 특히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가 ‘호달달’ 떨며 즐긴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격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사람에 붙은 악령을 쫓아내는 ‘엑소시즘’(퇴마 의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호기심을 쿡쿡 건드린다. 천주교의 장엄구마, 개신교의 축사, 무교의 씻김굿 등이다. 여러 호러 영화가 엑소시즘을 소재로 삼았고 걸작도 많이 나왔다. 이런 ‘퇴마 호러’의 ‘조상님’ 격인 효시라면 오직 단 하나의 영화를 가리켜야 한다. 50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매체 콜라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다섯 번 봤다”며 “인생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라고 말했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1973)다.
랭커스터 메린 신부(막스 폰 쉬도브)는 이라크에서 유적을 발굴하다 악마 조각을 발견하고 불안해한다. 한편 유명 배우 크리스 맥닐(엘런 버스틴)과 딸 리건(린다 블레어)은 미국 조지타운의 고급 저택에 산다. 리건은 착한 소녀였지만 어느 날부터 폭행과 욕설을 일삼하고 자해까지 저지른다. 외모와 목소리까지 기괴하게 변한다. 수많은 의사가 치료를 시도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초자연적인 현상까지 벌어지자 정신과 의사 출신 데미안 카라스 신부(제이슨 밀러)가 나선다. 메린 신부까지 힘을 합쳐 리건을 지배하는 악마를 몰아내려 한다.
<엑소시스트> 초반부에 메린 신부와 악마 석상이 서로 마주선 장면은 선악의 구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악마를 통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지만 영화가 절반 이상이 지날 때까지 엑소시즘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 대신 카라스 신부가 어머니의 쓸쓸한 임종을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이 수차례 강조된다. 악마에 대해선 불가해한 존재로 묘사할 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후반부에 메린 신부와 카라스 신부가 계단에 앉아 악마의 목적에 대해 나누는 대화 장면이 중요해 보인다. “왜 하필 이 아이죠?”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하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방송국에서 수백편의 TV쇼와 다큐멘터리를 만든 경험이 있었다. 당시 호러 영화는 과장된 표현으로 뒤덮인 작품이 많았는데 프리드킨은 <엑소시스트>를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연출했다. 허를 찌르는 호러 기법도 다채롭게 구사했다. 눈앞에 종종 스치듯 지나가는 새하얀 악마의 얼굴 컷은 일순간 화면을 얼어붙게 만든다. 실로 관객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호러 영화였다. 개봉 당시 극장에선 공포에 짓눌려 기절하는 관객이 속출했다.
솔직히 현재 관객의 눈으로 보면 기절할 정도로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여전히 굉장한 충격을 준다. 리건이 십자가로 자신의 음부를 마구 내리치며 “넌 이제 내 거야, 예수하고 잘해 봐! 잘해 보라고!”라고 외치는 ‘십자가 자해’ 장면, 리건이 몸을 뒤집은 채로 계단을 네 발로 기어 내려오는 ‘스파이더 워크’ 장면은 특히 유명하다. 배우 린다 블레어가 악마 씌인 리건을 연기할 당시 12~13살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신들린 광기를 보여준다. 엑소시즘 장면을 연습한 첫날 린다 블레어의 맹렬한 욕설에 막스 폰 시도우가 당황해 자기 대사를 잊어버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걸작을 만들겠다는 욕심에 배우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악마의 목소리는 배우 메르세데스 맥캠브리지가 맡았다. 프리드킨 감독은 맥캠브리지의 사지를 의자에 결박해 악마가 분노에 떨며 몸부림치는 목소리를 얻었다. 카라스 신부가 전화벨 소리에 놀라는 장면에선 느닷없이 총을 쏴 제이슨 밀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잡았다. 리건이 카라스 신부에게 내뿜은 끈적한 초록색 액체는 완두콩 수프다. 원래 가슴을 맞출 계획이었지만 튜브 장치가 오작동해 그만 얼굴을 정통으로 맞히고 말았다. 카라스 신부의 불쾌한 표정은 ‘진짜’다.
<엑소시스트>의 원작자이자 각본가인 윌리엄 피터 블래티는 프리드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블래티가 중요하게 여긴 장면을 프리드킨이 삭제하는 등 충돌이 많았다. 블래티는 직접 <엑소시스트 3>(1990)의 제작·감독·각본을 맡았지만 추리물에 가까운 데다 억지로 엑소시즘 장면을 끼워넣은 느낌이 강해 기묘한 작품이 됐다. 이밖에도 후속작이 줄줄이 나왔지만 <엑소시스트>의 명성을 이을 만한 작품은 없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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