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조수원 BOOK북적]

조수원 기자 2024. 9.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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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철 교수, 셰익스피어 전집 10권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최 교수는 1993년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하는 데 매진하여,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인 ''햄릿', '리어 왕', '오셀로', '맥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을 번역 출간했다. 2024.09.0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원 기자 = "셰익스피어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은 내면의 변화가 달라요. 특히 소리를 내서 읽어보면 인생을, 자기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16세기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완전체로 돌아왔다.

연세대 영문과 명예교수 최종철(75)은 최근 셰익스피어 전집을 번역해 10권으로 완간했다. 1993년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부터 시작해 30년 세월 동안 매달린 결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지금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햄릿'을 비롯해 원작이 연극과 뮤지컬로 다채롭게 소화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5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셰익스피어 작품이 가진 생명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휴머니즘, 인본주의의 전통을 고스란히 살렸기 때문이죠."

해답은 당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에서 있었다.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는 왕이 통치하는 엄격한 계급사회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시기가 오면서 극작품에서 인본주의를 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품에서 구현한 인간 심리상태는 지금까지 살아있고 감정에 진실에 접근한 사람이 셰익스피어"라며 "현대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최 교수는 1993년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하는 데 매진하여,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인 ''햄릿', '리어 왕', '오셀로', '맥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을 번역 출간했다. 2024.09.03. pak7130@newsis.com

"줄무늬 석양빛이 서쪽 하늘 물들이며/길 늦은 나그네는 여관에 닿으려고/잦은 박차 가하고 우리의 표적도/가까이 오는구나."(「맥베스」 3막 3장 5~8행)
셰익스피어 극작품은 여러 번역가에 의해 국내에 소개됐다. 그들이 택한 방식은 주로 산문 번역이었다. 최 교수는 번역이 대사 전달에만 치중됐다고 느껴 다른 형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운문' 번역을 선택했다. 원작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방식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운문 번역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깊이와 감동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약강 오보격 무운시'라고 불리는 형식을 사용했다. 이 형식은 영어에서 강세를 받지 않는 음절 다음 바로 강세를 받는 음절이 따라올 때 '약강 일보'라고 하며 시 한 줄에 다섯 번 나타나면 '약강 오보'라고 부른다. 무운은 연이은 두 시행 말미에 같은 음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대사에 자연스러운 리듬을 부여했다.

최 교수는 "이 형식이 셰익스피어가 드라마와 시 등에서 대사를 전달하는 수단에 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최종철 교수는 시행착오 끝에 '약강 오보격 무운시' 형식을 우리나라 전달 방식에 맞춰 적용했다. 그는 한국말의 아름다움과 리듬을 더하기 위해 삼사조 운율을 기준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햄릿' 속 대사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에 삼사조 운율을 적용해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로 번역했다.

현시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운문 번역이 등장한 이유는 대한민국이 처했던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었다.

최종철 교수는 "1923년 정도에 처음 부분 번역 나오기 시작했고 1910년 한일합병 이후 당대 지식인들이 일본어를 교육받아 서구 문명이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다"며 "일본이 소화한 것을 읽고 흉내 냈지만 하필 일본어가 (운문 번역을) 소화할 수 없는 언어였기에 산문 번역이 이뤄졌다"고 했다.

그는 "일본어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한글로 읽어도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과 사상이 그대로 리듬감 있게 전달된다"며 "100년간 지속된 일본의 영향에서 독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최 교수는 1993년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하는 데 매진하여,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인 ''햄릿', '리어 왕', '오셀로', '맥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을 번역 출간했다. 2024.09.03. pak7130@newsis.com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고된 작업이 주는 기쁨이 고통보다 더 커서 그 힘으로 지난 30년을 버텼죠"

앞서 펴낸 전집 5권을 끝으로 번역을 그만둘 뻔하기도 했다. 완간까지 번역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좋아서 하는 일이 주는 기쁨에서 비롯됐다.

최 교수는 "시를 번역했는데 뜻이 잘 전달되고 나중에 읽어봐도 잘 전달되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수많은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으로 '맥베스'를, 가장 재밌었던 작품으로는 '햄릿'을 각각 골랐다.

그에게 맥베스는 가장 시적인 인물이었다. 짧은 작품 속에 상징과 압축도 많아서 독자를 위해 어느 정도 풀어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문제는 시행이 길어지고 압축이 느슨해지면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기에 밀도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최 교수는 "맹물을 마시다가 소주 마시고,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맹물로 내려오고 이런 밀도의 차이가 났기 때문에 제일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햄릿에 대해선 "복수에서 멀어졌다 가까웠다 계속했다"며 "이런 유형은 서구 최초이고 여러 면에서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면서 진실에 가까운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복수가 단박에 이뤄지면 안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여러 어려움이 있다"며 "시간이 지나 감정이 무뎌지는 것처럼 온갖 일이 일어나는데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마음을 가장 깊이, 넓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과 심리 상태,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관계를 다루는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그것이 결국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에, 게다가 잘 짜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의 흥미를 일으킬 수밖에 없고,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좇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12~13쪽)

☞공감언론 뉴시스 tide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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