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북쪽 포도를 남쪽에 옮겨 심으면’ 투핸즈 사만다스 가든

유진우 기자 2024. 9.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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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화위지(橘化爲枳).

‘남쪽 귤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 고사성어다. 귤처럼 생긴 탱자는 향기는 좋지만, 먹을 수가 없다.

식물학적으로 귤과 탱자는 모두 운향(芸香·Rutacea)과에 속한다. 하지만 귤은 널리 쓸모가 많은 과일로, 탱자는 버려지는 존재로 운명이 갈렸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도 비슷하다. 품종이 같아도 키우는 지역이 바뀌면 성격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프랑스에서 수천만 원짜리 와인을 만드는 피노누아 품종을 우리나라에서 키우면 폭염과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포도 껍질이 썩어 버리고 만다.

시라(Syrah)라는 포도 품종은 프랑스 남부가 고향이다. 아비뇽 북쪽에 자리한 론강 유역이 대표적인 산지다.

1832년 이 포도 품종은 프랑스에서 호주로 전해졌다. 호주에서는 시라를 시라즈(Shiraz)라고 부른다.

시라와 시라즈는 유전적으로 같은 포도다. 그러나 북반구 프랑스에서 자란 시라 품종 포도로 만든 와인과, 남반구 호주에서 시라즈 포도로 만든 와인은 풍미가 다소 다르다.

와인 업계에서 프랑스 론산(産) 시라 와인은 세련된 와인으로 통한다. 주로 블루베리나 자두 향을 중심으로 꽃과 백후추 향이 조화를 이룬다.

호주산 시라즈는 힘차고 농밀한 와인이 많다. 잘 만든 와인에서는 진한 과일 향과 감초, 다크초콜릿 향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반면 자칫 잘못 다루면 단순하고, 투박한 와인이 돼버린다.

그래픽=손민균

1990년대 호주는 영국 시장에 값싼 벌크와인을 대거 팔았다. 벌크와인이란 병에 담기지 않은 채 팔리는 와인을 말한다. 오래전 우리나라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퍼다 팔던 방식과 비슷하다.

벌크 와인이라고 품질이 항상 나쁘진 않다. 하지만 벌크와인은 원산지 통제 등 품질 좋은 와인을 얻기 위한 까다로운 규제와 거리가 멀어 품질이 고르지 않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포도를 몽땅 섞어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인상들은 호주산 시라즈 와인에 ‘편의점에서 파는 대중적인 와인’이라는 멍에를 씌웠다.

투핸즈는 1999년 건축업자였던 마이클 트웰프리와 나무통 제조사를 운영하던 리차드 민츠가 시작한 와이너리다. 당시 호주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다. 두 사람은 좋은 와인을 만들면, 올림픽 기간 안에 이 와인을 전 세계적으로 알릴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호주 전역에 펼쳐진 여러 포도 산지에 집중했다. 어디서 온 지 알 수 없는 포도를 섞어서 만든 와인은 지역별 특성을 드러내기 어렵다. 투핸즈는 호주 내에서도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진 6개 지역에서 각각 시라즈 품종 포도를 따로 재배한다.

이들은 직접 키운, 혹은 계약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매년 겨울 일일이 맛본다. 보유한 나무통 수는 총 2000여 개에 달한다. 하루에 100여 통씩 맛봐도 20여 일이 걸리는 긴 작업이다. 맛본 와인들은 A+부터 D까지 등급을 매긴다. 투핸즈는 이 가운데 최소 B등급 이상을 받은 와인만 출시한다. C등급 와인부터는 투핸즈라는 이름을 떼고 판매한다.

길지 않은 역사에도 투핸즈는 호주에서도 시라즈를 잘 다루기로 유명한 와이너리 가운데 한 곳으로 자리를 굳혔다. 저명한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투핸즈를 “남반구 최고의 와인 메이커(the finest negociant south of the equator)”라고 평가했다. 권위 있는 와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 역시 매년 선정하는 100대 와인에 투핸즈 와인을 총 13번 꼽았다.

투핸즈 사만다스 가든은 트웰프리 창립자가 아내 이름을 붙여 만든 와인이다. 이 와인은 매년 주요 평론가들로부터 90점을 웃도는 고득점을 받고 있다. 피에르 앙리 모렐 투핸즈 와이너리 공동대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라며 “투핸즈가 시라즈로 만드는 여러 와인 중에서도 유난히 꽃향기가 많이 나고, 우아한 와인”이라고 말했다. 수입사는 신세계L&B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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