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응급실 지키는 전문의들 “환자도 의사도 모두 위험”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 여파로 최근 전국 응급실 진료 공백이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응급실 의사가 부족해 일부 병원은 주 1회 야간엔 응급 환자를 받지 않는 ‘진료 축소’에 들어갔고, 지역 환자의 이송이 거부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응급실 의료진은 ‘번아웃(극도의 피로)’을 호소하며 정부를 향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서울 동북권 응급의료 거점인 고대안암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경기 동북권 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한양대구리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직접 찾아가 현장 상황을 보고 의료진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고대안암병원 권역응급센터
지난 3일 오후 3시쯤 서울 성북구 고대안암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복통으로 쓰러진 A(76)씨가 이송돼 왔다. 급성 충수염이 의심되는 환자였다. 김수진(50) 센터장(응급의학과 교수)은 병상 옆에서 이동식 모니터를 보며 1차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인근 요양 병원에서 의식 저하에 빠졌다는 B(82)씨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황급히 설명을 마친 김 센터장이 달려가 B씨 상태를 체크했다.
그는 “지역 특성상 고령의 중증 환자가 많고, 경기도 의정부 등에서도 환자가 온다”며 “호흡곤란, 약물중독 등 하루에 중증 응급 환자 60여 명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날 오후에도 심근경색 환자, 레미콘에 깔린 외상 환자, 뇌출혈 환자 등 중증 환자 15명이 응급실 병상에 누워 있었다.
고대안암병원은 서울의료원과 함께 서울 동북권 중증 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9명뿐이다. 그중 한 명은 수차례 모집 끝에 이달 초 겨우 새로 채용했다.
전문의가 최소 10~12명 이상은 있어야 ‘당직 근무 시 전문의 2명 배치’가 가능한데, 고대안암병원 등 전국 대형 병원 25곳은 전문의가 10명도 안 돼 정부의 집중 모니터링 대상이다.
김수진 센터장은 “한 달에 150건이던 119 이송 문의가 600건으로 급증했지만, 응급실을 지키는 전문의는 평균적으로 1.3명”이라며 “체력·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지 두 달 이상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엔 우울 증상이 생긴 여러 동료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고, 수면 장애 때문에 퇴근해서도 수면제가 아니면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했다.
7개월 전만 해도 전공의 등을 포함해 5~6명이 응급실을 지켰지만, 전공의 8명과 전문의 일부 이탈로 지금은 한두 명뿐이다. 낮 시간대엔 그나마 두 명이 근무한다. 문제는 전문의 한 명이 홀로 12~14시간씩 응급실을 지켜야 하는 야간·새벽이다. CPR(심폐소생술) 환자 한 명만 와도 다른 환자들 상태는 체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차 병원 상당수가 문을 닫는 명절 연휴 때는 환자 수도 1.5~2배로 늘어난다.
김 센터장은 “경력이 많지 않은 젊은 전문의들은 혼자 당직을 서고 응급실 내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응급실에 불이 켜져 있다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환자도 의사도 위험한 상황에서 진료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응급실의 중증 응급 환자 치료 기능이 서서히 마비되고 있다”고 했다.
◇한양대구리병원 지역응급센터
지난 2일 오후 6시 경기 구리시 교문동 한양대구리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 입구에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응급실 진료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안에서는 김창선(46) 응급의학과 교수가 유일한 의사로서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 응급실은 2003년부터 경기 동북부 지역 응급 의료를 책임져 왔고, 2017년 정부 응급 의료 기관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전공의 이탈로 응급실 근무 인력이 부족해지자 현재는 전문의 한 명이 응급 환자를 모두 감당하고 있다. 전공의 이탈 전엔 전문의(교수) 1명과 레지던트 2명, 인턴 1명 등 총 4명이 환자들을 봤다. 의사 한 명당 보는 환자가 8명 남짓이었지만, 지금은 그 2배를 넘어선 것이다.
이날도 김 교수가 홀로 응급실 환자 19명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모두 KTAS(한국형 중증도 분류) 2~3등급의 중증, 중등증(중증과 경증 사이) 환자였다. 그중엔 가슴 통증 환자 3명, 호흡곤란 환자 2명도 포함돼 있었다. 응급 환자가 5~7분 간격으로 밀려 들어왔다. 김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환자가 줄기는커녕 늘기만 한다”고 했다.
오후 9시가 되자 응급실에 중증 응급 환자가 20명을 넘어섰다. 김 교수는 응급실 내원 환자 중 꼭 필요한 응급처치를 우선적으로 했다. 이마가 2cm 찢어져 응급실을 찾은 한 80대 후반 환자도 꿰매진 못하고 관련 검사만 진행했다. 김 교수는 “머리에 출혈, 골절이 없는지 검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전공의들이 있었다면 봉합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손이 없다. 내일 다시 와서 꿰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청진기를 들고 환자들 사이로 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병원으로부터 환자 전원 문의 전화를 받다가도,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들 상태를 살폈다. 곧이어 다른 환자의 뇌 CT(컴퓨터 단층 촬영) 사진을 보면서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PA(진료 보조) 간호사가 김 교수 옆에 붙어서 검사 결과지를 보고 그의 진단서 작성 등을 도왔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김 교수 몫이었다.
김 교수는 “위태롭고 힘들지만 사명감 하나로 환자를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배후 진료과도 인력 부족으로 당직을 제대로 못 서고 있어 최종 치료가 안 되는 것도 문제”라며 “수술하려고 해도 마취과 의사가 3명으로 반 토막 나서 야간에 수술방을 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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