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너무 아름다워 훔쳤다” 세기의 절도 혹은 뒤틀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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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감상을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예술작품을 훔친 특이한 도둑이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랑스인 스테판 브라이트비저(1971∼).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200여 회에 걸쳐 예술품 300점 이상을 훔쳤다.
"그때 브라이트비저가 도둑질 기술을 천부적으로 타고났음을 이해했다"고.
브라이트비저의 부모는 어린 시절 그가 저지른 도둑질을 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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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거장 작품들로 집안 꾸며… 어머니, 유년시절 도둑질 방치
성인되자 연인 이용해 판 키워… 심리적 범죄 요인 다각도 분석
◇예술도둑/마이클 핀클 지음·염지선 옮김/304쪽·1만7800원·생각의힘
그가 내다 팔기 위해 훔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는 게 범행 동기였다.
박물관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꼽는 작품은 남겨두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만 골라서 털었다. 그러곤 장물들을 집 다락방에 고이 보관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방 안을 모두 그림으로 채웠다. 그림이 하도 많아 방 전체가 색색의 소용돌이를 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크라나흐, 브뤼헐, 부셰, 와토, 호이옌, 뒤러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작품으로 가득 찬 ‘보물상자’ 안에 사는 삶이었다.
저자는 브라이트비저에게 편지를 보내고 대면 인터뷰를 하는 등 집필에 10년 이상이 걸렸다. 이 중 비좁은 호텔 방에서의 인터뷰 일화가 인상적이다. 저자가 잠시 눈길을 돌린 사이 그가 노트북을 낚아챘는데 저자는 노트북이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브라이트비저가 도둑질 기술을 천부적으로 타고났음을 이해했다”고.
브라이트비저에게 박물관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자세히 보려고 집중하면 등 뒤에서 셀카봉이 쿡쿡 찌르고, 온갖 잡담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일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소파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언제나 손을 뻗으면 작품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단다.
책은 그의 독특한 범죄 행각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브라이트비저의 부모는 어린 시절 그가 저지른 도둑질을 방치했다. 10대 때 발병한 우울·불안증의 여파로 도벽에 빠진 아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성인이 돼선 연인 앤 캐서린이 그가 도둑질을 할 때 망을 봐주며 이를 도왔다. 브라이트비저와 달리 심미안이 없던 그녀는 예술보다는 애인에 대한 애착이 훨씬 컸다. 그녀를 면담한 심리학자들은 “혼자서는 범죄를 저지를 유형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어떻게 범죄에 동조하게 됐는지 그 과정도 흥미롭게 그렸다.
책 말미에 브라이트비저가 21년 만에 벨기에 미술관 ‘루벤스의 집’을 다시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술관 책자에는 독일 조각가 게오르크 페텔의 ‘아담과 이브’를 도난당했다 되찾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훔친 장본인은 예상대로 브라이트비저. 책자 한 페이지에 걸쳐 ‘아담과 이브’의 사진이 실려 있다. ‘조각상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면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늘 하던 대로 경비원과 관람객을 따돌리고 4달러(약 5500원)짜리 안내 책자 한 권을 슬쩍한다. ‘정말 지독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될 것 같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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