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발전 역사적 책무” “의견차 있어도 대화하자”

허진 2024. 9. 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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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고별 방한, 용산서 한·일 정상회담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12번째이자 현직으론 마지막 만남을 6일 했다. 두 정상은 이날 3시간40분을 함께했다. 1시간40분은 정상회담이었고 2시간은 만찬이었다. 둘의 관계를 보다 엿볼 수 있는 건 청와대 본관에서 있었던 부부동반 만찬 쪽이었다.

윤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지난해 3월 일본 방문 이후 1년 반 동안 오직 국익을 위하는 마음과 기시다 총리와의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굳건히 나아갈 수 있었다”며 “지금 양국 국민은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으며 미래를 향한 한·일 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은 결코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다”며 “앞으로도 한·일 관계의 앞날에 예측하기 힘든 난관이 찾아올 수도 있으나 흔들리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역사적 책무”며 “기시다 총리가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변함없이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했다.

뒤이어 발언에 나선 기시다 총리가 한국말로 “대통령님, 여사님,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멋진 만찬에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답사를 시작했고 좌중에선 큰 박수가 나왔다. 이날 오후 입국해 1박 2일의 방한 일정을 시작한 기시다 총리는 이번이 재임 중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방한이다. 이달 말 자민당의 새 총재가 뽑히면 총재와 총리직에서 함께 물러난다. 고별의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한국 속담도 인용했다. 그는 “한국속담에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며 “한·일은 이웃이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대를 강화해 왔다”고 했다. 그런 뒤 “한·일 관계에 세찬 비가 온 적도 있지만, 윤 대통령과 비에 젖은 길로 함께 발을 내디디며 다져온 여정이 한·일 관계의 새로운 시작이었다”고 회상했다. 기시다 총리는 또 “앞으로도 설령 의견 차가 있어도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함께 지혜를 내 길을 개척하자”며 “경요세계(瓊瑤世界)라는 말처럼 현대에도 한·일 양국이 서로를 비춤으로써 지역과 세계에서 함께 빛을 발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경요세계는 두 개의 옥구슬이 서로 비춘다는 뜻으로 조선통신사 박안기가 일본 시즈오카현 세이켄지(淸見寺)에 남긴 편액(글씨를 써 건물에 걸어놓은 액자)에 적혀 있다. 조선과 일본이 서로 신뢰하고 교류하면서 좋은 관계가 되자는 의미다.

앞서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뤄진 100분간의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윤 대통령은 “우리 두 사람의 견고한 신뢰를 기반으로 지난 한 해 반 동안 한·일 관계는 크게 개선됐다”며 “(기시다) 총리와 함께 일궈온 성과들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경제와 안보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정부 간 협의체들이 모두 복원되었다”며 “앞으로 한·일 간, 한·미·일 간 협력을 계속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저와 기시다 총리가 쌓아온 양국 협력의 긍정적 모멘텀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다음 총리가 누가 되든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전했다. 또 “여전히 양국 간에 어려운 현안이 존재하나 양국 관계의 발전과 병행하여 전향적인 자세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며 “과거 양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서 한류와 일본 문화가 양국에서 (인기가) 유동적이던 것에 비하면 최근 일본 내 제4차 한류 붐은 윤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도 거듭 확인했다. 기시다 총리는 “기시다 정부는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즉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고 있다”며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선) 저 자신은 당시 가혹한 환경 아래 많은 분들이 대단히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양국 국민의 안전을 강화하고 편의를 증진시키는 진전도 있었다.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를 체결해 제3국에서 유사시에 자국민을 긴급 대피시킬 때 상대국 교민도 함께 피난시키는 데 적극 협력기로 했다. 양국 국민이 상대국을 방문할 때 자국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미리 하는 ‘사전 입국심사’ 제도 도입도 적극 논의키로 했다. 김태효 차장은 “일본 법무성이 먼저 실무 검토에 착수했다고 알려와서 우리도 이제 일본과의 협의에 응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 앞서 전날 일본 측은 한국 정부에 1945년 8월 24일 일제 강제징용자를 태우고 한국으로 돌아오다 의문의 폭발 사고로 침몰한 우키시마(浮島)호의 승선 명부가 담긴 19건의 자료를 전달했다. 김 차장은 “지난 수개월 간 일본 정부와 교섭을 진행해 온 결과”라며 “2007년 일본이 강제동원 군인·군속 관련 자료를 우리에게 제공한 이래 17년 만에 강제동원 희생자 문서를 제공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회담에 대해 “수많은 것을 내주고 얻은 건 일본의 칭찬과 기시다 총리와의 ‘브로맨스’ 뿐”(노종면 원내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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