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의 구글 “유튜버 정보 못준다”…피해자 뉴진스 美 가서 소송
인기 아이돌 그룹 뉴진스와 르세라핌, 아이브 멤버들은 유튜브에서 연애·인성 등과 관련한 가짜 뉴스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수차례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고 경찰이 나섰으나, 매번 성과 없이 수사가 중단됐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코리아가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일체의 자료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구글 본사에 요청하면 “국제 사법 공조를 이용하라”는 답만 돌아왔다. 이들이 달려간 곳이 미국 법원이다. 미 법원에 유튜버의 신원 공개 요청을 하고야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유튜브 피해자가 미국 소송을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감내한 것이다.
해외 거대 플랫폼은 한국에서 국내 사법·행정 시스템을 무시하며 법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텔레그램은 지난 11년 동안 200여 차례 경찰의 수사 자료 요청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구글·메타·넷플릭스 등은 한국 법인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대표를 앉히고 있다. 이들은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도 “모른다. 본사에 물어보겠다”는 답변을 되풀이한다. 대신 플랫폼 규제법이 추진되면 미 정부와 경제단체를 앞세워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멤버인 장원영은 2021년 연예인 관련 루머를 주로 방송하는 유튜브 채널 ‘탈덕수용소’의 타깃이 됐다. ‘남자 연예인과 바람을 피운다’, ‘초대받지 않은 패션쇼에 난입했다’, ‘중국 국적이다’, ‘타인의 인사를 무시하고 인성이 나쁘다’는 동영상이 계속 올라왔다. 이런 영상들은 누적 조회 수 1억6000만을 넘겼다. 모두 거짓이었다. 아이브의 소속사는 변호사를 선임해 유튜브 채널 운영자를 고발하기로 했다. 고발 대상을 특정하기 위해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코리아 측에 유튜버 신상 정보를 요청했다. 하지만 구글코리아 측은 “유튜브 서버가 한국에 있지 않아 정보 제공을 할 수가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 구글 본사에 연락을 취하자 한국 수사기관이 국제 공조를 요청하거나, 미국 법원의 명령이 있어야 공개할 수 있다는 회신이 왔다. 결국 지난 5월 구글 본사를 관할하는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직접 유튜버의 신원 공개 요청을 했다. 그제야 구글은 미국 법원을 통해 유튜버 신원을 공개했다. 탈덕수용소 채널 운영자는 30대 여성 박모씨로 특정됐다. 박씨는 민사소송에서 1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고, 명예훼손과 모욕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일 첫 재판을 받았다. 이 소송을 대리한 정경석 변호사는 “구글코리아가 본사에 자료를 요청하고 협조했으면,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고 피해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장원영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는 유튜버 ‘중학교7학년’이 유포한 각종 거짓 루머에 시달렸다. 아이돌 그룹 르세라핌도 한 유튜브 채널에서 곡과 안무를 표절했다는 근거 없는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뉴진스와 르세라핌도 구글코리아에서 유튜버 신상 정보를 받지 못해 미국 법원에 신원 공개를 요청한 상태다.
플랫폼들의 행태는 국내 사법 시스템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은 범죄 혐의와 관련이 있으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협조를 한다. 한 변호사는 “외국 플랫폼들은 한국에서 버티면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며 “강한 제재로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한 없는 한국 법인 대표들
한국 규제 당국이 플랫폼 기업들의 한국 법인에 책임을 묻는 게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 이들이 제대로 된 대리인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 임원들이 ‘XX코리아 대표’ 직함을 달고 외부 활동을 하지만, 정작 이들은 마케팅·영업 같은 한정적인 업무를 주로 맡는다. 이 때문에 해외 플랫폼 기업의 한국 지사장들은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서 “모른다” “권한이 없다” “본사에서 하는 일”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2022년 국회가 망 사용료 논란, 한국 매출 규모 등을 묻기 위해 김경훈 구글코리아 사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의원들의 질문에 “확인해 보겠다” “잘 알지 못한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결국 김 사장은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실제 구글코리아의 법인 등기상 대표는 ‘낸시 메이블 워커’ 변호사다. 그는 미국 현지에 거주하는 구글 본사 법무팀 소속 직원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지난해 ‘메타커뮤니케이션 에이전트’를 국내 대리인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정작 국회에 제출한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자동 응답만 나올 뿐 담당자와 통화는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계속되는 역차별 논란
해외 플랫폼은 국내 규정을 우회하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2020년 유튜브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유튜브 뮤직을 국내에 출시했다.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되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유료 구독하면, 음원 듣기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부 가이드 라인 ‘음악 저작물 사용료 징수 규정’에 따르면, 플랫폼은 수익의 65%를 창작자에게 분배해야 한다. 하지만 유튜브 뮤직은 유튜브와 합쳐진 ‘결합 서비스’로 분류돼 음원 징수 규정이 아닌 별도 규정을 따른다. 이에 따라 창작자에게 65%보다 더 낮은 수익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멜론 등 국내 음원 업계는 “역차별” “끼워 팔기”라며 반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듬해 현장 조사를 시작해, 지난 7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심사 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하지만 유튜브 뮤직은 이미 지난해 말 멜론을 따돌리고 이용자 수 기준으로 업계 1위에 올랐다. 국내 음원 업계 관계자는 “제재와 과징금 수위가 확정되더라도 이미 대세가 유튜브 뮤직으로 기울어버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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