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유니콘을 빚어내고 유니콘이 된 창업자들
이슈 메이커 머스크·저커버그…
창업자가 또 하나의 상품 되어
'팬덤' 확장하는 美 테크기업
한국도 '혁신기업' 많아졌는데
왜 이런 모습은 볼 수 없나
임현우 디지털라이브부 차장
지난 6월 대만 타이베이의 컴퓨텍스 행사장. 검정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가 맥주잔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최고의 그래픽카드, 누가 만듭니까?” 그를 보려고 몰려든 관람객들이 외쳤다. “엔비디아!”
이 남자,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최고경영자(CEO)인 엔비디아의 공동창업자 젠슨 황이다. 구름떼 인파를 몰고 다니는 젠슨 황의 인기를 외신들은 ‘젠새너티(Jensen+insanity)’라는 신조어로 표현한다. 젠새너티 현상은 엔비디아의 경이로운 실적이 있었기에 가능하겠지만 CEO 개인의 ‘인싸력’도 무시할 수 없다. 사진 찍자, 사인해 달라, 행사에 나와달라 등 얼마나 피곤하겠느냐만 대중 앞에 서는 데 거침이 없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그에게 ‘테크업계의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실제로 시구도 하고 춤도 추는데, 물론 노림수는 있다. 테크 칼럼니스트인 밥 오도넬은 “엔비디아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고 인공지능(AI)의 아이콘으로 포지셔닝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다른 ‘매그니피센트7’ 기업인도 비슷하다. 신제품 발표회, 기술 콘퍼런스, 언론 인터뷰 등에 활발하게 나서고 주주의 민감한 질문에도 직접 답한다. 저커버그가 애플의 신제품을 깎아내리고 “엿 먹으라”고 일갈하는가 하면, 일론 머스크는 저커버그에게 “현피 뜨자”고 치고받기도 한다. 대중을 향한 의도된 팬 서비스로 보일 정도다. 혁신기업 창업자 대다수가 ‘은둔’의 길을 걷는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 더욱 놀랍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유니콘 기업을 배출한 지 10년이 됐다. 유니콘은 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어선 신생 혁신기업을 뜻한다. 이 정도 성과를 이룬 벤처는 ‘상상의 동물’ 유니콘처럼 현실에서 보기 힘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2014년 쿠팡을 시작으로 줄잡아 20개 넘는 유니콘이 나왔다. 배달의민족부터 하이브, 토스, 무신사, 야놀자, 두나무까지. 유니콘 목록에 오른 기업의 면면을 보면 우리 일상을 바꾼 의미 있는 서비스가 많다. 포털, 게임을 넘어 금융, 엔터, 물류, 패션, 여행 등으로 혁신기업의 구색이 다양해지고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다만 창업자의 ‘신비주의’ 전통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를 하는 덕에 유니콘 창업자 중 몇몇은 직접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내 또래 CEO가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사람들이 주류가 되면 한국의 기업인상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 관료들 면전에서 “금융감독원과 얘기하면 되는 게 없다”고 비판하던 핀테크 CEO, “제조기업이 잘되면 칭찬하면서 왜 플랫폼 기업은 앉아서 돈 번다고 하냐”던 배달 앱 CEO. 범상치 않은 혈기가 좋았다.
하지만 덩치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특히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엑시트에 성공하는 순간 대다수는 몸을 사렸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이사회 의장으로 빠지는 건 ‘국룰’처럼 됐다. 민감한 이슈에 말을 아끼고, 전관을 데려와 대관 조직을 키웠다. 천신만고 끝에 유니콘 기업을 일궈낸 이후 상상의 동물 유니콘처럼 대중과는 멀어진 느낌이랄까. 기성 대기업 집단과 총수의 모습을 닮아갔다고 하면 지나칠까.
물론 당사자 입장도 이해는 간다. 국정감사장에서 호통 한번 당해보면 멘털이 무너진다고 한다. 규제당국도 작은 스타트업일 땐 “규제 때문에 힘들다”고 세게 나가도 봐주지만 회사가 좀 커지면 “어, 이것 봐라?”로 바뀐단다. “한 번 나서면 다 나가야 하고, 언론에서도 나쁜 기사가 쏟아진다. 억울함이 들면 나가고 싶어지겠느냐.” 은둔왕의 원조 이재웅 씨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도 좀 더 소통해주면 좋겠다. 증시에서는 혁신기업에 대한 개미들의 불신이 심상치 않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건 창업자의 능력 밖이지만, 조직의 중장기 비전을 성실히 설명해 주주의 마음을 붙잡는 일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이브만 해도 뉴진스 분쟁에 BTS 음주운전까지 터지는 동안 가타부타 말이 없던 의장이 난데없이 미국에서 인터넷 BJ를 만나고 있으니 주주들이 더 화나는 것이다. 더구나 10년 전과 달리 창업 생태계가 위축되고 K유니콘의 명맥이 끊긴 요즘이다. 예비 창업자들은 롤모델이 되는 선배를 만나 강연 한 번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의지가 샘솟는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스타트업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회 환원이다. 환갑 넘은 젠슨 황도 하는데, 그렇게 어렵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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