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극복 뒤에 가려진 ‘사회 운동가 헬렌 켈러’

윤수정 기자 2024. 9. 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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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기적에 가려진, 사회운동가의 정치 역정

맥스 월리스 지음·장상미 옮김|아르테|592쪽|4만4000원

“헬렌 켈러는 특권층 백인일 뿐.” 2020년 12월, 아프리카계 장애인 권리 운동가 어니타 캐머런이 미국 타임지와 나눈 인터뷰 발언이 미국 정계를 발칵 뒤집었다. 당시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은 즉각 반발했다. “좌파들이 미쳤다. 백인이란 이유로 켈러라는 비범한 인물을 내치다니.”

책은 헬렌 켈러(1880~1968년)를 ‘시각, 청각, 언어의 삼중 장애를 극복한 인간 신화’로만 기억하는 고정관념을 여러번 깬다. 캐나다의 장애인 인권 활동가인 저자가 주목한 켈러의 본모습은 장애인 인권, 반전, 여성 참정권, 인종차별 등에 적극 나섰던 ‘급진적인 운동가’. 켈러는 1950년대 말 숱한 정치적 위협에도 넬슨 만델라가 이끌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꿋꿋이 지지했다. 켈러가 20대 초반 사회당에 입당하고, 소련 볼셰비키 정권과 레닌을 공개 지지한 걸 비판했던 우파 진영조차 그녀를 ‘미국 진보 운동계의 비범한 주역’으로 인정했다.

켈러를 찬양만 하는 책은 아니다. 1915년 미국에서 벌어진 우생학 논쟁 때 잠시 찬성했던 켈러의 논쟁적인 면모도 입체적으로 다룬 평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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