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에서 한반도로…기후 난민의 이주
박정재 지음
바다출판사
한국인은 인종적으로 몽골인과 유사하다고 배웠거나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인은 몽골인과 유전적으로 꽤 차이가 나고 오히려 중국 북동부 사람들과 가깝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기원』에서 “동아시아 북방의 기후 난민들이 추위와 가뭄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한반도에 흘러들어와 모여 살게 됐는데 이들이 한반도인, 즉 한국인이다”라고 썼다.
박 교수는 생물지리학, 고기후학, 고생태학을 연구하는 지리학자로 정통 역사학자는 아니다. 그는 그동안 공개된 고유전체 연구와 고기후 데이터를 고고학, 언어학, 역사학 자료들과 종합해서 ‘한국인은 어디서, 어떻게, 왜 이곳 한반도로 왔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빅히스토리를 깊이 탐구해 왔다. 지은이 박 교수는 특히 사람들의 이주에 큰 영향을 준 기후 변화와의 관계를 면밀히 분석했다. 일반 역사학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8200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큰 추위로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한반도로 남하하기는 했지만 현재의 한국인과 가장 연관성이 많은 쪽은 중국 북동부 랴오허 유역 사람들이다. 500년 장주기 엘니뇨의 도래로 동아시아 전역에 나타난 3200년 전의 추위와 가뭄은 랴오시 지역을 주도하던 샤자뎬 하층문화 집단, 랴오둥 농경민들의 남방 이주를 촉발시켰다. 이들 중국 북방의 기후 난민들은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금강 중하류, 지금의 부여·공주·논산·익산 등지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 논에 물을 대고 벼를 키우는 수도작 기술이 한반도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바로 우리 학계에서 한반도 최초의 벼 농경 집단이라 부르는 송국리형 문화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송국리형 문화 집단은 2800~2300년 전 다시 닥친 기후 변화로 한반도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이들은 더 따뜻한 지역을 찾아 일본 규슈까지 진출해 일본의 야요이 문화를 열었다고 한다. 수도작 농경민 집단이 사라지고 남은 한반도 공간은 이 시기 한랭화를 피해 랴오시와 랴오둥에서 내려온, 원시 한국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점토대(덧띠)토기 문화인들이 들어와 서서히 채워갔다. 여기에다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의 유민들이 더 합쳐져서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4세기 후반부터의 이주는 기후 변화보다는 전쟁과 같은 외부 충격이나 인구 증가에서 비롯된 내부 갈등에서 대부분 시작됐다.
한국인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박 교수의 이 책은 어쩌면 한반도 빅히스토리 논쟁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고인골의 DNA 자료가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나와야 한국인의 기원을 더 정확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을 계기로 한국어의 기원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나오기를 바란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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