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 어원과 고전 모두 곁들인 해석

장세정 2024. 9. 7.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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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어휘
이승훈 지음
사계절

중국 수사학(修辭學) 전문가인 이승훈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가 현대 사회의 화두 32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글자의 어원과 그에 얽힌 고전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난해 4월 출간한 『한자의 풍경』을 잇는 역작이다. 『한자의 풍경』에서는 원시 한자가 탄생한 순간부터 최초의 한자 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가 편찬된 시점까지 한자 발전사를 소개했다.

이번 책은 ‘인생 어휘’를 관찰·경청·몰입·용기 등 태도의 낱말들, 정체성·친구·집단·소문 등 관계의 낱말들, 보수·중도·실용·보편 등 가치의 낱말들, 공정·공감·법치·정치 등 함께함의 낱말들로 나눴다.

저자는 중국 고전 원문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독특한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고전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살필 뿐 아니라 인류학·신화학적 해석을 곁들이고 21세기 진화심리학·뇌과학 지식까지 동원해 눈길을 끈다.

예컨대 ‘경청(傾聽)’ 대목을 보자. 갑골문 성(聖)자는 큰 귀와 사람을 조합한 글자다. 고대에 성인(聖人)이란 예민한 청각으로 적이나 위험한 동물이 어디에 있는지 감지해 보호해 주는 사람이다. 그들은 만물이 내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었다. 그래서 잘 듣는 이들은 지혜롭고 영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인이 잘 들어주는 존재라면, 상대 쪽으로 몸을 기울여 듣는 모습을 나타내는 경청은 성인의 미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일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SNS로 자기주장만 쏟아내는 정치인은 성인의 반열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자기 말만 하는 국가 지도자는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경청하는지 의문을 떠올리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정치’ 편에서 “정치란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저자가 제시한 32개 어휘 중에서 저마다 가장 가슴을 뛰게 하는 어휘를 찾아 단숨에 읽어보길 권한다. 요즘 혼란한 세상을 보면 경청·정체성·실용·공정이란 어휘에 꽂힐 수도 있겠다. 각각의 어휘 속에서 고전의 지혜를 발견하고 깨달음의 희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최대 미덕 아닐까.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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