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만 봐도 통하는 정·김 콤비, 보치아 신화 함께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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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인간승리 돕는 수호천사
혼자 하면 힘들지만 둘이서 같이 하면 힘이 솟는다. 2024 파리 패럴림픽에 출전한 장애인 선수들이 아내와 어머니, 친구의 도움을 받아 최고의 경기력을 뽐냈다.
장애인 스포츠 최고의 축제인 패럴림픽(Paralympic)은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레지아(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을 합친 말이다. 처음으로 열린 장애인 경기대회에 척수마비 선수들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란히’란 뜻의 접두어 ‘파라(para)’로 사용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고,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는 뜻을 담았다.
패럴림픽에서는 실제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나서는 경기들이 있다.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 신화를 일군 보치아가 대표적이다. 보치아는 뇌병변 장애인들을 위해 고안됐다. 규칙은 컬링과 비슷하다. 흰색 표적구를 던진 뒤 두 선수가 청색구와 적색구를 번갈아 던져 가깝게 위치하는 공의 개수만큼 득점한다.
BC3 등급은 코치가 경기 보조선수로 규정되어 있어 선수로 인정된다. 그래서 경기 파트너에게도 메달을 수여한다. 정호원과 함께 시상대에 오른 김승겸 코치는 “늘 종합대회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꿈꿨다. 개인전 금메달로 처음 시상대에 섰는데, 마냥 기쁘고, 눈물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김승겸 코치가 속초시장애인체육회에서 일하던 시절 만나 14년간 호흡을 맞추고 있다. 정호원은 직접 손으로 공을 굴리기 힘들기 때문에 홈통에 올린 공을 입에 문 스틱으로 밀어 굴린다. 홈통을 잡고 공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김 코치가 맡는다. 어떤 작전을 쓸 지도 함께 상의한다.
뇌병변 장애인 정호원은 비장애인처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김승겸 코치와는 오랜 시간 지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 코치는 “오랜 세월을 같이 하다 보니까 호원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 때가 많다. 눈빛만 봐도 알고, 입모양으로도 유추한다”고 했다. 경기장 밖에서도 둘은 좋은 친구다.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다.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해 양팔 없이 파리 센강을 헤엄친 김황태의 곁엔 아내 김진희씨가 있다. 트라이애슬론은 수영-사이클-크로스컨트리 순서로 경기를 치른다. 장비를 교체하고 환복하는 시간(트랜지션)까지 기록에 포함된다. 이때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이가 핸들러다. 김황태는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한 이래 쭉 아내에게 핸들러를 맡겼다.
첫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사격 서훈태(39·코오롱)는 특전사 복무 중 낙상 사고로 척수 장애를 얻었다. 장애가 심하기 때문에 실탄을 장전하는 로더가 필요하다. 서훈태의 로더는 어머니 임정애씨다. 메달을 따낸 뒤 임씨는 아들을 끌어안고 기뻐했다.
시각장애 육상 선수 중 가장 등급이 높은 T11(전맹) 선수들은 가이드 러너와 함께 달린다. 가이드 러너는 비장애인 경기 보조원으로 밝은색 조끼(셔츠)를 입고 손목에 끈(테더)를 달고, 옆에서 함께 달린다. 5000m 이상 경기에는 가이드 러너가 2명 필요하다. 가이드 러너는 선수보다 한 발 이상 앞설 수 없고, 결승선은 선수가 먼저 통과해야 한다.
파리=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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