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자기를 잃은 소년들의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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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류는 자신을 재발견하는 과정
충동으로 항해 나서면 길잃기 쉬워
우리 미래세대가 처한 상황과 유사
기약없이 망망대해 떠돌면 안돼
」
이 소설은 근대 서구인의 합리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반영한다. 합리적인 정치와 과학적 지식을 통한 자연의 정복이 소설에 담겨 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나온 골딩(William Golding)의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은 전혀 다른 방향을 지적하고 있다. 한 무리의 아동들이 불시착으로 무인도에 표착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는 앞의 소설과는 정반대이다. 섬은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이들의 생존에는 큰 도전이 없는 곳이다. 이들도 초기에는 어떤 질서 같은 것을 모색해 보지만 순식간에 무위로 돌아가고 결국엔 군사적 규율과 무력을 갖춘 교회 합창단 출신의 소집단이 지배하게 된다. 이들은 사냥을 해서 일행에게 고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며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소년들에게는 폭력의 위협을 가한다. 결국은 소년들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합리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랄프라는 소년은 오히려 지배 집단이 살해하려는 표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소년들은 섬에 불을 지른다. 그것이 결국 자신들 생존의 유일한 자원인 섬의 숲을 태워버리는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두 차례 세계 대전과 파시즘을 겪은 서구인들이, 특히 한국 전쟁 이후 또 하나의 대전과 핵무기의 위협에 직면하여 재무장을 하여야 하는 시기에 나왔다. 합리적 인간에 대한 신념이 폭력과 상징의 세계에 대한 비관적 전망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올 여름 국내에서도 표류 소설이 나왔다. 이현 작 『라이프 재킷』에서 일단의 소년 소녀는 우연하게 모여 충동적으로 차압으로 묶여 있던 요트를 타고 일정한 목적지도 없는 항해에 나선다. 무모할 뿐 아니라 불법임을 알면서도 배를 움직여 떠난다. 처음엔 “딱, 한시간만” 이란 생각도 했지만 그들 스스로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 거기에는 으레 대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배는 통제 불능이 되고 사고로 다친 동료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바다로 사라진다. 배는 표류하고 있는데 구조 신호에는 응답이 없다. 이들은 무인도에 기적적으로 표착하지만 구조의 약속은 없다. 이들을 지탱하여 주는 것은 파산한 부모님이 남겨 놓은 음식들 뿐, 그나마 바닥이 난다. 지도자 격인 소년은 마지막 수단으로 요트 살롱의 가스를 열고 불붙은 책을 던져 넣고 바다로 뛰어 든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표류는 위기 속에서 자기를 재발견하는 과정인데, 충동으로 항해를 나선 소년 소녀들에겐 방향도 길도 없었고 자기를 발견해 낼 수도 없었다. 내게는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미래 세대들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그린 것으로 읽혔다. 망망대해를 떠돌며 앞날을 기약할 수 없던 그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나라와 도시와 가정에 관하여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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