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은 형기 단축이 아니다…잔여기간, 사회서 집행하는 것

2024. 9. 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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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변호사의 ‘죄와 벌’] 가석방, 영화와 현실 어떻게 다른가
영화 ‘쇼생크 탈출’의 레드(모건 프리먼 분). 가석방 심사에서 번번이 부적합 판정을 받다가 수감 40년만에 가석방이 승인된다. [중앙포토]
영화 속에도 가석방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영화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 청년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 분)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강도가 석연치 않게 일찍 가석방되는 것을 보고는 법제도가 충분한 처벌을 하지 못하므로 손수 권총으로 그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그 강도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것을 두려워한 다른 마피아가 먼저 그를 죽여버린다. 부패한 고담 시티에서 가석방 제도가 남용되는 사례를 보여주는 영화 에피소드다.

50년 만에 가석방 브룩스, 사회 적응 실패
영화 ‘쇼생크 탈출’의 첫 장면은 20년간 수감된 레드(모건 프리먼 분)가 가석방 심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레드는 가석방 위원들 앞에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 사회에 위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신에게 맹세합니다”라면서 간절히 가석방을 희망하지만 결과는 기각이다. 그로부터 10년 뒤, 레드는 또다시 가석방 심사를 받고 10년 전과 똑같은 말을 하지만 결과는 또 기각. 또다시 10년이 더 지난 뒤 이제 수감생활 40년 차인 레드는 가석방 심사에서 교화되었느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냉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교화? 헛소리야! 그것은 정치인들이 꾸며낸 말이야. 죄를 뉘우쳤냐고?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소. 옛날의 젊은 나를 만나서 지금의 현실을 말해주며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러나 그 젊은 녀석은 오래전 사라지고, 이 늙은 놈만 남았어. 어서 부적격 도장이나 찍고 내 시간을 그만 뺏어.” 그런데 이번에는 가석방이 승인된다.

레드가 가석방을 간절히 원할 때는 번번이 기각되다가 가석방을 체념했을 때 비로소 승인되는 것이 단지 극적 재미를 고조시키기 위한 설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수감생활과 나이 때문에 교도소를 나갈 의지조차 없어졌다면 범죄를 저지를 의지도 꺾였을 것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석방이 된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은 살인으로 50년간 수형생활을 한 브룩스(제임스 위트모어 분)이다. 교도소에서 수형자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일을 했던 그는 모범적 수형생활로 인해 자신이 가석방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 오히려 극도로 불안해하면서 교도소에 더 남아 있기 위해 일부러 동료 수용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난동을 피운다. 마지못해 가석방된 뒤에는 마트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친구도, 가족도 없이 정부가 지정해준 숙소에서 외롭게 지낸다. 소변을 보러 갈 때도 마트의 동료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할 정도로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교도소에서는 책을 빌려주는 일을 하면서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지만, 출소 이후에는 별 의미 없는 일을 하면서 곁에 대화를 나눌 사람조차 없던 브룩스는 얼마 못 가서 숙소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가석방 이후 자살하지 않고 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레드와 대조되는 인물이다. 브룩스는 장기간 수감된 수형자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감자들이 출소 이후 사회에 적응하는 데에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석방 제도는 영국에서 유래되었다. 영국은 당초 미국 버지니아주 메릴랜드로 중범죄자를 유배보내다가 1776년 미국이 독립하자 유배지를 호주의 노퍽 섬으로 옮겼다. 이들은 출소의 희망이 없다 보니 교도관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노역도 게을리했으며 폭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았다. 유배를 오는 중범죄자가 많아짐에 따라 과밀수용 문제도 불거졌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790년 아서 필립이라는 주지사가 품행이 좋은 수형자를 중심으로 조건부 사면을 해주기 시작해서 좋은 효과를 보았는데 이것이 가석방 제도의 효시가 된다.

가석방은 교도소의 열쇠를 수형자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래야 수형자들이 교정 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르고 규범을 지키고 동료 수형자와 다투지 않는 등 건전한 시민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키워지고 이것이 결국 재범 가능성을 낮추게 된다. 반대로 모범적으로 수형생활을 해도 빨리 출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전혀 없으면 수형자들이 자포자기에 빠지면서 반사회적 성향이 더 강해지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무너져서 정상적인 생활력을 잃을 수 있다. 수형자들을 미리 사회로 내보내면 형기 종료 이후에 좀 더 수월하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수형자를 일찍 내보내면 교도소 운영에 들어가는 인건비, 시설비, 식비, 의복비 등 비용을 그만큼 절약할 수 있고 과밀수용의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실적 문제들은 정의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가석방은 징역형 수형자가 재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었을 때 형기가 종료되기 전에 잠정적으로 석방을 허용하는 처분이다. 형기를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잔여 형기를 교도소가 아닌 사회에서 집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형법(제72조)은 “행상이 양호하여 뉘우침이 뚜렷한 때” 무기형은 20년,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난 후 가석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행상(行狀)’은 ‘몸가짐과 품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달 5일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열린 법무부 정부과천청사. 가석방은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적격 여부를 결정한다. [연합뉴스]
가석방된 사람은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가석방자는 주거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장의 감독을 받는다. 경찰서장은 6개월마다 가석방자의 품행, 직업, 생활 정도, 가족관계 등에 관해 조사서를 작성하여 관계기관의 장에게 통보해야 한다. 국내외를 여행하고자 할 때도 경찰서장이나 법무부장관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1997년부터는 원칙적으로 모든 가석방자들이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 2008년부터는 가석방된 경우에도 전자발찌를 부착해서 전자감독을 할 수 있다. 가석방자가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가석방은 취소되고 교도소로 와서 남은 형기를 채워야 한다. 가석방되고 나서 남은 형기 동안 가석방 취소 사유가 발생하지 않으면 형의 집행을 마친 것으로 간주된다. 무기징역형을 받은 사람의 경우에는 가석방 이후 취소 사유 없이 10년이 지나면 형의 집행을 마친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나라의 가석방률은 선진국에 비해서 낮은 편이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일본은 58.3%, 캐나다는 37.4%인 반면, 우리나라는 28.7%였다. 법률상으로는 형기의 3분의 1만 마치면 가석방이 가능하지만 내부 지침상으로는 형기의 60%를 마쳐야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고, 실무상 가석방 심사를 통과하는 사람의 90% 이상은 형기의 80퍼센트 이상을 마친 사람이다. 형기를 불과 한두 달 남기고 가석방되는 경우도 꽤 많다.

2008년부터 전자발찌 부착해 감독
우리나라의 가석방률이 낮은 이유는 가석방을 많이 해주면 국회나 여론이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가뜩이나 법원에서 선고되는 형량도 낮다고 생각하는데 형기마저 다 채우지 않고 교도소 밖으로 내보낸다고 하면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고 비판할 것이다. 교도소에서 충분히 교화되지 않은 사람이 사회로 나와서 우리 이웃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기도 한다. 간혹 가석방 기간 중에 수형자가 살인이나 성폭력과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기라도 하면 언론에 보도되고 그를 가석방해준 사람에게 책임과 비난이 돌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볼 때 법원에서 선고하는 형량은 지금보다 높아져야 하는 반면, 가석방의 경우에는 수형자의 재범 가능성을 좀더 면밀하게 심사해서 현재보다 적극적으로 확대 실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책임이 무거운 정도에 비례해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책임주의와 향후 재범 가능성이라는 두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책임은 해당 범죄 사건 하나만 살피면 되지만, 재범 가능성은 그 범죄자의 평소의 생활태도나 성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판단할 수 있어서 재판 중에 판사가 재범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교도소에서는 장시간 평소의 인격이나 생활습관,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재범 가능성 판단이 용이한 편이다. 따라서 판결로 정해지는 형량은 책임주의의 관점에서 엄정하게 정하되, 대신 가석방은 수형자의 재범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판단해서 그 가능성이 극히 낮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이라도 가석방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가석방이 된다고 해서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경찰서장과 보호관찰소장의 지속적 감독과 보호관찰이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전자발찌 부착이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자발찌가 부착되는 요즘 시대와 그렇지 않던 과거의 가석방 기준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성폭력범, 상습범, 흉악범처럼 국민들이 불안을 크게 느끼는 범죄자들까지 가석방을 용이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재민 변호사·작가.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로 재직했고 외교부, 국방부 등에서 근무했다. 또한 『보헤미안 랩소디』 『독도 인 더 헤이그』 『소설 이사부』 등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냈다. 현재 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의 대표변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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