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폭염에 못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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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성장 주로 화석에너지에 의존
온실가스 감축 목표 현실성 있어야
기후변화 위기 외면하면 절대 안돼
정부도 전기요금 인상 검토해야
」
기후변화가 앞으로 더 위세를 떨치리라 예상하고 걱정하면서도 개인적 안위를 앞세우는 데 크게 거리낌이 없는 것은 무력감이 죄책감을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국가 중 2%도 되지 않는다. 중국(30.6%), 미국(13.5%)이 합쳐서 반 가까이 차지한다 (2020년 기준). 국내 온실가스 전체로 봤을 때 전력 생산 등의 에너지 산업에서 발생하는 배출량 비중이 35.6%인데 (2021년 기준), 전력의 경우 가정용 점유율은 6.5%에 불과하다. 우리 네 식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기후변화 방향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전 세계적 협조와 국가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결정이 지난주에 있었다.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가 있는데, 이 조항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 2030년까지만 목표치를 정하고 이후 감축목표가 없어 탄소중립의 실효성을 보장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국가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환경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국가적 추진력이 중요하다고 동의하는 것과 별개로, 현실성 있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 계획을 마련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탄소중립기본법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 감축한다는 목표치를 제시한다. 이제 6년도 남지 않은 기간에 이를 달성하려면 철강을 위시한 1차금속 산업, 시멘트를 비롯한 비금속 산업, 정유 및 석유화학과 플라스틱 등의 관련 산업 대부분이 사실상 붕괴된다. 에너지 산업도 대대적 개편이 필요한데, 불가피하게 올라갈 에너지 비용을 감당할 국민적 합의가 형성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비중이 높은데, 수출과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을 화석에너지 사용에 상당히 의존한다. 그걸 잘 해 와서 지금처럼 버스와 지하철에서 에어컨을 빵빵 켤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선진국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이미 감소 또는 정체 상태인 것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유럽이 기후위기 대응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은, 잃을 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자국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의 속셈이 얄밉더라도 기후위기는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필자가 청소년 시절 주입된 핵전쟁 공포와 비교하면 기후위기는 훨씬 더 일상에서 체감되고 확실히 진행 중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핵전쟁과 달리 일거에 발생하는 대재앙이 아니어서 충분히 대응해 낼 수 있다는 낙관도 생긴다. 게다가 핵전쟁 공포를 떨쳐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 지구인이 함께 겪는 일이라 겪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에어컨이 고쳐지고 나니 곧 서울의 열대야가 최장기록을 세우고 물러갔다. 선선한 가을을 보내는 동안 더위의 기억도 옅어질 것이다. 몇 년에 한 번씩 봄에 실외기 점검은 받겠지만 말이다. 이 가을에는 여름에 못 한 일들을 해야 한다. 정부로서는 전기 요금 인상 같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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