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가지 제철 해산물 안주, 동백·비파 막걸리와 찰떡궁합

2024. 9. 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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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음식, 맛난 우리술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섬 ‘보길도’는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고급 해산물의 상징인 전복 양식의 메카로 현재는 경제적인 부도 함께 거머쥔 풍요로운 섬이다. 하지만 40년 전인 1984년의 보길도는 어업을 하던 고깃배들의 중간 기착지로 원주민들은 육지와 떨어져 근근이 연근해어업으로 살아가던 절해고도의 남쪽 섬에 불과했다.

밥 반찬과 하나도 안 겹치는 술상 차려
제철 생선구이를 중심으로 풀치·건새우·버섯볶음, 파래·가지·해초무침, 매콤장어조림 등 13가지 반찬으로 차린 ‘보옥민박’ 밥상. [사진 이승훈]
보길도 내에서도 동북쪽 방면은 인근 큰 섬인 노화도와 접해 그래도 식당 등 편의시설이 있고 사람들의 내왕이 있는 편이었지만, 서남쪽 방면인 보죽산 인근 보옥마을은 절벽으로 난 길을 따라 바다를 내려다보며 위태롭게 걸어가야 할 만큼 외진 곳이었다. 1992년이 돼서야 지금처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뚫렸다. 이번 취재를 위해 방문한 ‘보옥민박’은 바로 지금의 자리인 보옥마을에서 40년 전 민박집 겸 밥집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보옥민박은 남편 김옥동(75)씨와 아내 강인진(74)씨 부부가 함께 시작한 전형적인 바닷가 민박집이다. 식당이 딸린 본채 옆에 일렬로 별채인 방들을 내어 손님들이 묵어갈 수 있도록 했다. 건물 중앙에는 고산 윤선도가 꾸몄을 자연식 정원이 있다. 주변 공룡알해변에서 동글동글하고 예쁜 돌들을 가져와 장식하고 다양한 남도 식물들을 화분에 담아 정원을 꾸몄다. 부부의 부지런함과 낭만을 함께 보여주는 예쁜 공간이다.

그런데 이 보옥민박이 유명한 건 바닷가 민박집 특유의 공간뿐만이 아니다. 1984년 민박집을 열면서 당시엔 주로 뱃사람들을 대상으로 섬의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제공했던 섬밥상이 지금껏 이어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요즘 모든 물가가 워낙 급속하게 오르다보니 여기 보옥민박의 섬밥상 가격도 나름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이번 취재 때 보니 국을 포함한 13찬 섬밥상이 1인당 1만원이다. 그렇다고 반찬이 간단하냐? 천만의 말씀이다. 보말이 15마리나 들어간 찐한 미역국과 큼지막하고 짭짤한 생선구이 한 마리를 주찬으로 풀치·건새우·매콤멸치·버섯볶음, 파래·가지·해초무침, 매콤장어조림, 생선젓갈, 묵은지, 고추·양파장아찌가 딸려 나온다.

스윽 둘러보니 건새우 외에는 모두 보길도 현지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들이다. 과거엔 오히려 타지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힘들었으리라. 40년 전에는 오로지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시작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무리 섬이라고 해도 맘만 먹으면 육지 식재료나 심지어 수입산 재료도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할 텐데 40년간 지켜온 원칙은 여전히 변치 않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도 아니고 본업이 밥장사도 아니다보니 재료 선택과 조리 방법이 참 지혜롭고 흥미롭다. 보말이나 생선, 해초류 등은 신선한 재료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변동성 있게 사용한다. 풀치·건새우·멸치 등은 볶음, 조림 같은 조리법으로 저장성을 높였다. 13종의 반찬이 모두 지역 제철 재료이되 다양한 조리법으로 제각각 맛을 구현했으니 먹는 이로선 찬탄할 수밖에 없다.

더 놀라웠던 건 저녁 술상이다. 원래 정해진 금액은 없는 터라 후하게 드리겠다며 술상을 다시 청했더니 쏨뱅이 매운탕, 전복양념구이를 포함해 역시 13종의 반찬이 나왔는데 아침 반찬과 김치 한쪽조차 겹치지 않게 음식을 내어줬다. 멸치볶음조차도 아침에 매콤볶음이었으면 저녁엔 간장볶음이다. 그만큼 식재료를 잘 다룰 줄 알고, 또 손님을 배려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보길도의 유일한 양조장인 ‘보길도가’는 2023년 6월 공식 오픈했다. 박영수(44) 대표는 역시나 보길도 출신. 그렇다고 평생 보길도에서 살아온 건 아니다. 젊은 시절 서울로 떠나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아내도 만나 두 아이와 함께 완벽한 도시인의 삶을 영위해왔다.

50% 더 찐한 막걸리, 깔끔하고 뒤끝 없어
보길도 내 유일한 양조장 보길도가에서 만든 순곡주 ‘보길씨 막걸리’. 계절에 따라 동백꽃, 비파열매 등을 넣어 술을 빚기도 한다. [사진 이승훈]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보면서 고향이 그리워졌단다. 결국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1년간의 휴직 기간 동안 고향으로 돌아와 보옥마을과 인접한 선창마을에 카페를 열었다. 이후 회사도 그만두고 2년간의 힘든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부터 완도 쌀과 토종 앉은뱅이밀을 사용한 누룩 그리고 물만 사용한 ‘보길씨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지역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봄이면 지천에 깔린 동백꽃을 모아 이를 덖어서 ‘동백꽃 보길씨 막걸리’를 만들고, 여름이면 섬 여기저기 자생하는 비파나무에서 비파를 모아다 ‘비파 보길씨 막걸리’도 빚는다. 도시에선 보기 힘든, 지역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매력적인 막걸리들이다.

‘보길씨 막걸리’는 기본적으로 쌀과 누룩 그리고 물만 사용하는 순곡주다. 철 따라 동백꽃과 비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제한된 시간에 적은 물량만 판매할 뿐. 양조장을 방문하든 전화로 주문을 시도하든 제철에 맛보려 해도 결국 운이 좋아야 한다.

순곡주는 주인의 성정만큼이나 참 깔끔하고 뒤끝 없다. 찹쌀을 사용해 다소 단맛은 있지만 그리 찐득하진 않다. 그래도 알코올 도수가 9도이기에 일반 막걸리보다 50% 정도는 더 찐하다. 쌀의 매력을 잘 살리면서도 전통 밀누룩을 발효제로, 부재료로 양념처럼 잘 사용했다. 차게 바로 마셔도 좋고 주인이 주로 그러하듯, 얼음을 넣고 레몬 등 시트러스한 과일 한 조각을 넣어 칵테일로 마시는 것도 매력적인 방법이다.

보옥민박의 섬밥상과 함께 마셔보니 역시나 매우 잘 어울렸다. 섬 음식다운 간간한 반찬들이 살짝 알코올 도수가 있으면서도 인공적인 감미료 등 첨가물이 일체 들어가지 않아 심플한 ‘보길씨 막걸리’와 찰떡궁합이다. 술잔에 얼음을 좀 넣거나 차가운 물을 1/3 정도 첨가하면 나름의 또 다른 매력이 있을 듯싶다. 역시나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은 잘 어울릴 수밖에 없다.

이승훈 백곰우리술연구소 대표. 전통주를 마시고 가르치고 알리고 연결해주는 전통주 업계 대표 열혈일꾼. 국내 최대규모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를 운영했고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막걸리학교, 한식진흥원 등의 교육기관에서 전통주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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