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65〉

나민애 문학평론가 2024. 9. 6. 23: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만약 이 시인이 화가라면, 이 시가 그림이라면, 나는 이 그림을 꼭 갖고 싶다.

돈을 모으고 낯선 화랑에 가서 '이 그림을 살게요'라고 말하고 싶다.

시인이 말하듯 그려 놓은 밤 산책을 나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서로의 이마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어두운 길을 밝게 걸을 그 사람이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 볼까

그는 이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얇게 포 뜬 빛이
이마에 한 점 붙어 있다


이파리를

서로의 이마에 번갈아 붙여 가며
나와 그는 나무 아래를 걸어간다



―조해주(1993∼ )


만약 이 시인이 화가라면, 이 시가 그림이라면, 나는 이 그림을 꼭 갖고 싶다. 돈을 모으고 낯선 화랑에 가서 ‘이 그림을 살게요’라고 말하고 싶다. 방에 걸어 두고 내 마음에 걸어 둔 듯 바라보고 싶다. 시인이 말하듯 그려 놓은 밤 산책을 나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나란히 걷는 그 시간이 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무 좋지 않은가. ‘얇게 포 뜬 빛이 이마에 한 점 붙어 있다’는 표현이라니. 시인의 예전 시집, 그러니까 첫 시집을 읽었을 때도 마음의 정물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에도 음미할 표현이 가득이다. 이런 시를 발견하면 가슴이 뛴다. ‘이게 그 말이지? 이 장면이 그런 장면 아니야? 그걸 이렇게 적은 단어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시를 읽으면서 혼자 생각해 보고 그려 보면서 마음에 깊이 박아두게 된다.

나에게도 서로의 이마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어두운 길을 밝게 걸을 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조금 아팠는데, 우리 다시 저렇게 걸었으면 좋겠다. 늙는 내내 저렇게 걸으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