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시다, 12번째 정상회담…과거사 구체 언급 또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퇴임을 앞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6일 1시간40분간 정상회담을 열어, 내년이 국교 정상화 60주년임에 의미를 부여하며 양국 관계를 더 발전시키자는 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이전 한-일 정상회담과 유사하게, 구체적인 과거사 관련 언급은 없었다. 야당은 “굴욕 외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머리발언에서 “한-일 관계에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 있다”면서도 “더 밝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지속될 수 있도록 양측 모두가 전향적인 자세로 함께 노력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한-일, 한·미·일 간 협력을 계속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저와 기시다 총리가 쌓아온 양국 협력의 긍정적 모멘텀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기시다 총리와 함께 일궈온 성과들은 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회담에 이어진 만찬에선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역사적 책무”라며 “앞으로도 한일관계의 앞날에 예측하기 힘든 난관이 찾아올 수도 있으나 흔들리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표현이 빠진 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도광산 문제 등 과거사와 얽힌 현안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저는 1998년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하여 역사 인식 관련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히 말씀드렸다”며 “저 자신은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것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불리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엔 일본의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담겨 있는데, 기시다 총리는 직접적인 과거사 언급 없이 이 선언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으로 갈음한 것이다. 또한 지난해 5월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총리로서 사과가 아니라 ‘개인의 슬픔’을 표현했다. 이날 만찬에선 “한국 속담에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며 “한일관계에 세찬 비가 온 적도 있지만 윤 대통령과 비에 젖은 길로 함께 발을 내딛으며 다져온 여정이 한일관계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앞으로도 설령 의견 차가 있어도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함께 지혜를 내 길을 개척하자”고 ‘미래’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정상회담은 이번이 12번째다. 기시다 총리가 이달 27일 열리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 선언을 해 퇴임을 한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이라 애초 회담에서 큰 성과는 나오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야당은 “이번 정상회담은 기시다 총리에 대한 퇴임 선물”이라고 날을 세웠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기시다 총리는 두루뭉술한 입장 표명으로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뭉갰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굴욕적 외교를 확약받았다. 윤석열 정부가 수많은 걸 내주고 얻은 건 일본의 칭찬과 기시다 총리와의 브로맨스뿐”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사도광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합의 등이 ‘퍼주기’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외교안보특별위원장은 논평을 내어 “이것이 윤 대통령과 여당이 주장해 온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냐”며 “(이번 회담은) 역사 왜곡 주범과 공범의 만남”이라고 혹평했다.
이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사도광산 등재는 치열한 협의와 합의를 통해 이미 7월에 일단락이 되었기 때문에 정상 간에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그 대신, 일본 정부가 1945년 폭발로 침몰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한 것을 두고 “희생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인 절차가 재개될 가능성이 열렸다”고 높게 평가했다.
한편,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의 도발과 북-러 밀착에 대응한 양국과 한·미·일의 공조·협력 강화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이번 회담을 계기로 제3국에서 위기 발생 시 양국이 자국민 철수 지원·협력을 협의하는 재외국민 보호협력 각서를 체결하고, 한-일 간 사전입국심사 제도를 추진하기로 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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