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사고 뒤에도 패들 잡은 카누 최용범 "앞만 보고 간다"
(파리=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비장애인 카누 선수였던 최용범(27·도원이엔씨)은 다리를 잃은 뒤에도 패들을 잡았다.
올림픽 출전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 카누 최초로 패럴림픽 무대에 섰고 다음 라운드에도 나선다.
최용범은 6일(한국시간) 프랑스 베르 쉬르 마른의 스타드 노티크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카누(스포츠 등급 KL3) 남자 카약 200m 예선에서 42초42로 4위에 올라 준결승에 진출했다.
최용범은 어린 시절부터 물을 좋아했다.
백마강, 반산저수지가 근처에 있었다.
축구, 씨름 다 해봤지만, 카누를 시작한 것도 물의 길이 좋아서였다.
부여 중 1학년 때부터 패들을 잡으며 카누에 입문했다.
"지는 게 싫어서" 정말 열심히 패들을 저었고 '제2의 조광희'라는 말도 들었다.
조광희는 한국 카누 종목 선수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를 한 선수다.
최용범은 고교를 졸업한 뒤 부여군청에 잠시 속해 있다가 울산광역시청으로 옮겼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지만, 간발의 차이(4위)로 태극 마크를 놓쳤다.
허리 통증으로 성적이 나지 않아 2018년 11월 입대를 했다.
2020년 7월 전역해 돈을 벌면서 카누를 위한 몸을 만들어 가다가 덜컥 교통사고가 났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그의 왼 다리는 이미 잘려져 있었다.
'카누 선수 최용범'은 더 존재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병원에서 혼자 있을 때마다 울었다.
재활 과정에서 은사였던 주종관 부여중 카누부 코치와 대한장애인체육회 맹찬주 매니저가 장애인 카누를 권했다.
처음에는 낯선 모습으로 낯익은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는 게 겁이 났다.
하지만, 그가 살면서 제일 잘했고, 즐겁게 했던 것이 카누였다.
어머니도 물 위에서 아들이 다시 생기를 찾기를 바랐다.
최용범은 용기를 내어 다시 패들을 잡았다.
장애인 카누는 비장애인 카누와 같고도 달랐다. 의족을 한 왼 다리가 더 무거우므로 균형 잡기조차 쉽지 않았다.
최용범은 "처음에는 배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서 물에 빠졌다"라고 했다.
부여중·고교 카누 후배들은 장애인 카누 선수로 변신한 최용범의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기꺼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었다.
처음에는 부여중 선수한테도 졌다. 하지만 오기로 이겨내고, 부여고 에이스 설동우도 기어이 제쳤다.
'장애인 카누 선수 최용범'은 그렇게 완성돼 갔다.
최용범은 5월 헝가리 세게드에서 열린 2024 국제카누연맹 장애인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KL3 200m 결승에서 41초08로 7위 기록으로 한국 장애인 카누 사상 최초로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장애인 카누 입문 10개월 만의 쾌거였다.
파리 패럴림픽에서는 준결승 무대에 올랐다.
최용범은 예선이 끝난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과 만나 "연습할 때는 바람이 뒤에서 불었는데 오늘은 앞바람이어서 막판에 힘이 모자랐다"면서 "100m쯤 왔을 때 옆을 봤는데 해볼 만할 것 같았다. 그게 오히려 더 안 좋았던 것 같다. 준결승, 결승 때는 무조건 앞만 보고 죽어라 달려야겠다"라고 했다.
이어 "기록에는 만족을 못 하는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 준결승에서 실수 없이 원래 하던 대로 해서 결승 올라가는 게 목표다"라고 덧붙였다.
준결승과 결승은 현지시간으로 7일에 오전과 오후에 펼쳐진다.
최용범은 "이전 대회와 달리 패럴림픽에서는 선수들이 모두 빠르다. 준결승 때도 전력을 다하고 좀 누워서 쉬면서 체력을 보충해야겠다"라고 말했다.
7일에는 비가 예보된 상황, 최용범은 "추위에 강해서 괜찮다"라고 했다.
개막식 한국 선수단 기수였던 그는 "개막식 때보다 지금이 덜 떨린다"며 미소 짓기도 했다. 최용범은 폐막식 기수로도 예정돼 있다.
최용범의 귀 뒤에는 오륜기가 새겨져 있다.
불의의 사고로 올림픽 출전 꿈을 접었지만, 패럴림픽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고 있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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