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케스 유작 읽지 않겠다”는 아르헨 사회파 작가
6일, 서울국제작가축제서 개막 강연
“아르헨티나는 현재 극우파가 집권 중인데, 지금까지 이룬 컨센서스(사회적 합의)에 반하는 정권이다. 과거 독재 군부 활동을 우호적으로 본다. 군사정권을 극복하고자 지금까지 이룬 성취를 후퇴시키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다시 돌아가는 걸 허용할 수 없다. 그걸 규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고, 지금 쓰고 있는 작품에 반영 중이다.”
보르헤스, 코르타사르 다음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국외에 작품이 많이 번역 소개된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64)가 첫 방한해 던진 일성이다. 각종 문학상을 받은 피녜이로는 자국에서의 조건부 임신중지법 통과와 여성작가 권리 증진 등에 기여해온 작가다. 이 두 가지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후보에 오른 2022년 작가에 대한 부커상 쪽의 소개이기도 하다.
중남미의 대표적 사회파 작가로서 ‘13회 서울국제작가축제’(11일까지)에 초청된 피녜이로는 6일 개막 강연 전 오후 4시에 열린 기자간담회(서울 종로 JCC아트센터)에서 “독재정권을 경험하게 되면 누구든 흔적이 남게 된다”며 자신이 사회문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 독재정권 아래 “이상주의자였던 아버지에 대해 학교 친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불법 체포, 실종, 죽음이 잦았던 때다. “어떤 사회 문제를 한 번에, 한 권의 책이 바꾸는 건 어렵다. 다만 여러 작품이 같은 주제를 반영한다면, 대중들이 관심 갖게 된다. 혁명이 아닌 점진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건 우리이고, 우리의 환기를 위한 도구로 문학이 있다.”
‘엘레나는 알고 있다’ ‘신을 죽인 여자들’ 등 국내 소개된 작가의 최근 대표작도 이런 소명을 분명히 한다. 자국의 보수 가톨릭 및 정치사회 등을 비판하면서도, 미스터리 장르 문법으로 대중을 놓지 않는다.
196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태어난 피녜이로는 대학에 ‘사회학과’가 부재한 1970년대 경제학을 전공하고 회계사로 일하다 작가로 변모했다.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 여러 장르를 섭렵하며 2005년 소설 ‘목요일의 과부들’ 이후, ‘엘레나는 알고 있다’(독일 리베라투르상 수상), ‘신을 죽인 여자들’(원제 ‘대성당’) 등으로 라틴 문학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녜이로는 선대 여성작가 마니엘 푸이그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학창시절 피녜이로를 사로잡은 작가다.
다만 최근 작가의 유언과 달리 유가족 결정으로 출간된 ‘8월에 만나요’에 대해선 “작가가 출판을 원치 않은 작품을 굳이 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선 “굉장히 복합한 문제”라면서도 “다만 (미발간한) 첫 작품을 자식들이 출판하면 굉장히 화가 날 것”이라며 “자식들에게 내가 죽거든 절대 출판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서랍 속 보관되어 있다는 이 작품은 2003년 첫 소설 출간 전, 브라질 한 출판사의 공모전에 응모한 첫 완성 소설이다. 응모 조건이 알고 보니 ‘에로틱 소설’이라 당황했지만 최종후보에 올랐다.
라틴문학은 국내 독자들에게도 대개 남성작가로 대표된다. 피녜이로는 말했다. “그간 중남미 문학이란 작은 시장을 차지한 대부분 작가는 남성이었다. 하지만 여성 작가들의 새로운 문학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엔니케스, 슈웨블린 같은 작가들과, 장르는 달라도 서로 배우는 게 많고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데 남성 작가들이 질투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는 유럽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어렵다. 권력 구조로 봤을 때 늘 변방에서 작가활동을 해왔던 여성 작가들이 지금의 위상을 차지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는 걸 우린 잘 안다.”
이날 개막강연은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와 피녜이로가 함께 맡았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로 만난 바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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