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르헨티나 군부독재 경험 공유…문학에 큰 흔적 남겨"
서울국제작가축제 참가 차 첫 내한…"소설·드라마 공부하듯이 보고 왔죠"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기 전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퀸메이커' 같은 드라마도 흥미롭게 봤어요. 지금 쓰고 있는 차기작도 권력과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요."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사회파 소설가이자 스릴러의 대가로 꼽히는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64)의 말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 6~11일 개최하는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차 처음 방한한 그는 6일 서울 JCC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공유한 군사독재 경험을 흥미롭게 생각한다면서 "그런 경험은 문학을 비롯해 사람들의 인식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고 말했다.
피녜이로의 작품은 국내에는 '엘레나는 알고 있다'와 '신을 죽인 여자들' 밖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모국인 아르헨티나는 물론 유럽과 중남미에서는 이름을 널리 알린 스타 작가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엘레나는 알고 있다'는 파킨슨병을 앓는 엄마 엘레나가 딸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다. 사건과 탐정이 명확히 존재하는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외양을 한 이 소설은 모녀 관계, 질병, 자기 결정권 등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뤄 평단과 대중의 고른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독일의 저명한 문학상인 리베라투르상 수상에 이어 2022년엔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함께 영국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가 나오기도 했다.
작가는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는 정보라 작가와 함께 기조 강연자로 나서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한국에 대한 인상이요? 한국에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부럽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한국은 여러 문화콘텐츠의 리더잖아요. 아르헨티나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인기죠. 오기 전에 여러 한국 소설과 드라마를 공부하듯이 보고 왔어요. 한국에 대해 발견할 것들이 무척 기대됩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는 보르헤스와 코르타사르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작품을 전 세계에 번역 출간한 아르헨티나 작가로 꼽힌다.
장르문학, 특히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그지만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정치권력, 종교,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등 묵직한 사회 문제에 관한 관점을 담아내 문학적으로도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일궈왔다.
소설과 희곡, 시나리오를 넘나들며 작품을 써온 그는 인권과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아르헨티나의 낙태법 제정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와 이야기 창작을 좋아한 작가가 대학에 진학할 무렵은 아르헨티나가 군부독재로 신음하던 시기였다.
사회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독재정권 하에서 여의찮아 할 수 없이 경제학을 전공으로 택하고 회계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회의를 느끼던 차에 한 문학 공모전을 알게 됐고 응모를 준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에로틱 소설을 모집하는 공모전이어서 당황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들려줬다.
"헨리 밀러 등 당시 구할 수 있는 문학작품들은 다 구해서 에로틱한 소재를 열심히 연구했죠. 이후 첫 작품은 45세가 되어서야 뒤늦게 발표했습니다."
권력의 작동방식에 관심이 많고 동시대의 정치·사회·윤리적 문제를 예리한 시각으로 포착해온 작가는 차기작으로 정치권력과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파헤친 작품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세를 규합해 특정인들을 공격하는 사람들,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런 증오그룹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다룰 예정입니다."
현재 집필 중인 이 차기작에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의 흔적이 많이 담길 예정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아르헨티나 정권은 지금까지 사회가 이뤄온 컨센서스에 반대되는 정권이에요. 군사독재의 역사를 극복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을 후퇴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큽니다. 저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고, 그런 문제의식을 작품에 투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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