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한·일, 어려운 문제들 남아…양측 전향적 노력하길”
기시다 총리, 과거사 문제 관련 기존 입장 재확인
대통령실 “일본, 과거보단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사전입국심사 제도 논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6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양국은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를 체결하고 출입국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일 관계에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있다”며 “더 밝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지속할 수 있도록 양측 모두가 전향적인 자세로 함께 노력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함께 힘을 모은다면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한·일 관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여전히 양국 간에 어려운 현안이 존재하나 양국 관계의 발전과 병행해 전향적 자세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면서 “양국의 미래와 평화, 번영을 위해 지도자는 인내하며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관심을 모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기시다 총리는 과거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밝혔던 입장을 재확인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당시) 저는 1998년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 관련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또 지난해 5월 서울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이곳 서울에서 저 자신이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것에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라고도 말씀드렸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대신 일본 정부가 1945년 폭침으로 침몰한 우키시마호의 승선자 명부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국 정부가 실무 차원에서 수 개월 간 논의한 사항”이라며 “최근 한·일 관계가 개선되는 기류 속에서 일본이 과거보다는 적극적이고 성의를 갖고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전달받은 수 백 페이지의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면서 “결국 희생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인 절차가 재개될 가능성이 열리고, 역사적으로도 이 사건의 경위, 정확한 희생자를 찾아내는 데 도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를 체결했다. 김태효 1차장은 “작년 4월 수단 쿠데타 발생 시, 작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발생 시 한·일 양국이 재외국민 긴급 철수를 위해 협력한 사례를 기초로 우리 측이 먼저 한·일 간 공조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총 8개 항으로 이뤄진 각서에는 △제3국에서 위기 발생 시 양국이 자국민 철수를 위한 지원과 협력을 위해 협의할 것 △평시에도 위기관리 절차, 연습, 훈련에 관한 정보와 모범 사례 공유 등이 담겼다.
한·일이 상대방 국민의 자국 출입국 절차를 간소화하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사전입국심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실무 검토에 착수했다고 먼저 알려왔다”면서 “한국인이 일본에 많이 가는데 긴 줄을 서는 등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출국 전에 입국 심사를 병행하는 사전 입국 심사 제도를 일본 정부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일본과의 협의에 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면서 “상대방 국가에 심사관을 파견해 생체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출국 전에 간편하게 입국 절차를 마치는 방안을 논의해볼 것”이라고 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배우자인 기시다 유코 여사와 함께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실무 방문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오후 3시35분부터 약 45분간 소인수 회담을, 이후 약 55분간 확대 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 부부는 이날 만찬도 함께 했다. 두 부부는 청와대 본관에서 2시간 가량 만찬을 함께 했다고 정혜전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지난 해 3월 일본 방문 이후 1년 반 동안 오직 국익을 위하는 마음과 기시다 총리와의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굳건히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은 결코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다”며 “앞으로도 한·일 관계의 앞날에 예측하기 힘든 난관이 찾아올 수도 있으나 흔들리면 안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역사적 책무”라면서 “기시다 총리께서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변함없이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에 세찬 비가 온 적도 있지만 윤 대통령과 비에 젖은 길로 함께 발을 내딛으며 다져온 여정이 한·일 관계의 새로운 시작이었다”며 “앞으로도 설령 의견 차가 있어도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함께 지혜를 내 길을 개척하자”고 화답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말로 “오늘 멋진 만찬에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답사를 시작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12번째이자 마지막 정상회담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 7월1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지 약 두 달 만이며 기시다 총리의 임기 중 세 번째 방한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달 말 총리 임기가 종료된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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