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9월은 ‘잔인한 달’, 10월까지 잠이나 잘까
‘9월 증시 지옥설’ 해부
2000∼2023년 월별 수익률 분석
다우·나스닥·코스피 ‘9월 최악’
10% 이상 급락도 가장 많은 달
9·11 테러 등 우연적 변수 많아
2020년 이후엔 ‘실적 실망’ 부각
노동절 휴일(2일)을 보내고 미국 증시 9월 첫 거래가 이뤄진 3일(현지시각) 인공지능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주가가 9.53%나 폭락하며 시가총액이 2789억달러(약 374조원) 감소하고, 나스닥지수가 3% 넘게 떨어지자 주식시장의 이른바 ‘9월 효과’가 투자자들 사이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9월이 다 지나가면 나를 깨워줘.”
블룸버그 통신은 이 말이 이번 폭락장에 딱 맞는 말로 투자자들 사이에 공감을 얻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역대 미국 증시에서 9월에 주가가 급락한 사례가 많았던 것을 거론한 것이다.
주식시장 역사를 20세기까지 거슬러가보면, 대폭락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달은 9월보다는 10월이다. 1929년 다우지수 구성종목 시가총액의 40%를 날려보낸 월스트리트의 주가 대폭락은 10월24일 검은 목요일부터 29일 검은 화요일까지 나흘 사이에 벌어졌다. 1987년 다우지수가 22.6% 폭락한 검은 월요일은 10월19일이었다.
그 ‘10월’이 아니라, ‘9월’이 주식시장에 비우호적인 달로 눈총을 받게 된 것은 21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24년간 다우지수의 월간 주가 등락률을 살펴보면 9월은 확실히 ‘잔인한 달’이다. 9월에는 평균 1.5% 하락했는데, 열두 달 가운데 성과가 가장 나쁘다. 나스닥지수의 월평균 등락률도 9월이 -2.26%로 연중 가장 나쁜 달이다.
9월 수익률이 가장 나빴던 이유는 하락으로 장을 마감한 달이 많기도 하지만, 다른 달에 견줘 폭락장을 더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24년 동안 월간 주가가 10% 이상 하락한 사례를 보면, 다우지수의 경우 9월에 2차례로 11월, 12월, 2월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나스닥지수의 경우 9월에 5번이나 10% 이상 폭락을 경험했다. 2차례씩 경험한 11월, 2월, 3월, 4월을 압도한다.
9월에 주가를 흔들기 쉬운 무슨 계절적 변수가 있기 때문일까? 나스닥이 10% 이상 떨어진 달, 무엇이 주가를 끌어내렸는지를 보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0년 9월 나스닥은 12.68% 떨어졌다. 세계증시에서 이른바 ‘닷컴(인터넷) 버블’이 터지고 있었다. 나스닥지수는 3월10일 5048.62까지 올랐는데, 4월부터 급락했다. 4월에 15.57% 떨어지고, 5월에도 11.91% 떨어졌다. 8월까지 큰폭으로 반등했으나 9월에 12.68%, 10월에 8.25%, 11월에 22.90% 떨어졌다. 9월은 앞서 4월부터 시작된 닷컴 버블 붕괴의 와중에 있었을 뿐이다.
2001년 9월에도 나스닥은 16.98% 폭락했다. 9월11일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일으킨 ‘9·11 테러’의 여파였다. 2002년 9월에도 10.86% 떨어졌는데, 닷컴 버블 붕괴의 막바지 국면이었다. 2008년 9월 나스닥은 11.64% 하락했다.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됐던 것이다.
알케에다의 테러,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9월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었다. 꼭 9월에 일어나야할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잔인한 달’이라고 못박아버리면, 9월은 항변할 지도 모른다. 2000∼2023년까지 24년 동안 9월에 나스닥 지수는 14번 떨어졌으나, 오른 것도 10번이나 된다. 5% 이상 오른 적도 세번이었다. 2010년에는 12.04%나 오르기도 했다.
한국 증시의 코스피지수는 어떨까? 24년간 9월의 월평균 등락률은 -0.93%로 10월(-1.14%) 다음으로 나쁘다. 10% 이상 하락한 횟수는 4차례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10월(3차례)에 폭락한 경우가 많았다. 코스피지수는 미국 나스닥지수와 단짝이다. 24년간 월간 등락의 상관계수가 0.65에 이른다. 100번 가운데 65번은 같은 방향으로 오르거나 내렸다는 뜻이다. 코스피 지수가 9월 다음으로 10월에 나빴던 것은 미국 증시 하락의 여파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미쳤던 일이 있었던 탓이다. 리먼 사태 파장이 그런 경우다. 미국에서 리먼 사태는 2008년 9월에 시작됐으나 코스피지수는 9월에 1.78% 하락에 그친 뒤 10월에 23.13%나 폭락했다. 한국증시의 우울한 계절이 ‘9∼10월’이 된 이유다.
24년간의 폭락 기록으로 보면 ‘증시에 비우호적인 9월’은 그저 운일 뿐이지만, 최근 몇년간의 9월 주가 흐름은 좀 달리 볼 필요가 있다. 나스닥 지수를 예로 들면, 2020년(-5.16%) 2021년 (-5.31%) 2022년(-10.50%) 2023년(-5.81%) 4년 연속 9월만 되면 가을 낙엽 떨어지듯 떨어졌다.
유력한 가설은 ‘실망의 가을’ 설이다. 앤드루 그레이엄 잭슨스퀘어캐피털 대표는 2022년 8월29일 씨엔비시(CNBC) 기고문에서 “증권사 연구원들이 연초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다가 2분기 어닝시즌이 끝날 때쯤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기관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하는 경우가 많아 9월 증시 성적표가 좋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9월은 투자자들이 연말까지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을 파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2022년 9월 나스닥지수는 10.5% 떨어졌지만 이달에만 급락한 게 아니다. 2021년 말부터 시작된 하락장의 막바지에서 공교롭게 9월에 월초 지수와 월말 지수 사이의 차이가 컸다. 2021년12월까지 급등했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하락의 마지막 파열음을 내면서 이달에 8.44% 떨어졌다.
올해는 급락장이 8월에 왔다. 한때 미국 증시 시가총액 1위까지 오르며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군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실적과 성장성에 대해 우려가 쏟아진 것이 계기다. 게다가 미국 고용지표가 계속 나빠지며 경기가 급격히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퍼졌다. 8월5일 주가 급락을 부른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는 조금씩 누그러지며 주가가 반등했다. 그런데 9월 장이 열리자 8월 고용지표 발표를 앞두고 ‘9월 효과’의 트라우마가 거칠게 되살아났다.
9월이라서 무조건 주가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중요한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확인할 수있는 경기, 실적 지표들이다. 기대만 못하다면 실망이 클 것이고, 기대를 웃돈다면 투자자도 시장도 활짝 웃을 것이다.
주식시장은 9월을 보낸 투자자들에게 ‘가장 수익률 높은 11월’을 선물해왔다.
정남구 선임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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