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나라서 팔만대장경에 꽂힌 IT인재
'인도의 MIT' 명문공대 출신
외교관 신분 韓 사찰 방문뒤
안가본 절 없을 정도로 답사
불교흔적 추적 여행기 출간
"가장 인상깊은 곳은 해인사
부처의 뜻 어디서든 통해"
"인도에는 오랜 격언이 있습니다. '현자가 되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라'라고요."
디팡카르 아론 인도 석유화학부 국장(51)은 '인도의 MIT'라 불리는 델리 인도공과대학(IIT)에서 전기공학 학사와 에너지학 석사를 받은 뒤 28년째 공직에 몸담고 있다. 교육열로는 한국보다 한 수 위라는 인도에서 델리 IIT는 가장 엄선된 인재들이 가는 곳이다. 그는 공직 입문 후 국세청, 재무부, 외교부 등을 거쳐 지난 3월부터 인도 석유화학부 국장(차관보급)으로 재직 중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인도에서는 매우 드문 불교신자다. 인도는 현재 힌두교도가 전체 인구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불교 인구는 0.7%에 불과하다. 게다가 아론 국장은 힌두교도들 사이에서 성지로 추앙받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 우타라칸드주 출신이기도 하다.
그런 아론 국장이 불교에 빠져들게 된 것은 12년 전 홍콩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다. 동아시아 문명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여유 있을 때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태국에 이르기까지 인도에서 불교가 건너간 발자취를 따라 여행했다.
그는 "업무상 한국에 들러야 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전국으로 사찰 탐방을 떠났다. 통도사와 불국사, 해인사, 조계사 등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사찰들은 전부 섭렵했다"며 "아마 웬만한 한국인들보다 내가 더 많은 사찰을 찾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불교신자가 돼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론 국장은 "8세기 인도를 여행했던 혜초는 두 나라 간 교류가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주는 예"라며 "승려들의 수행부터 명상과 자비에 대한 철학까지, 인도와 한국은 불교를 매개로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고 이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고 말했다.
불교를 통해 국경을 뛰어넘는 유대감은 귀국 후 그가 작가로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인도인의 눈으로 본 동방불교의 모습을 담은 여행기를 출간한 것이다. '부처님의 길을 따라-동방으로의 여정'에서 그는 사찰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인도와 한국 등 동아시아 역사철학 간 연결고리를 탐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 사찰이 어디냐는 질문에 아론 국장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꼽았다. 그는 "팔만대장경은 다른 어떤 나라 사찰에도 없는 독자성을 간직한 유적"이라고 극찬하면서 "팔만대장경에 쓰인 수천 년 전 불교의 가르침은 시공간을 관통하는 진리"라고 강조했다. 팔만대장경에서 불교철학의 정수를 느꼈다는 것이다.
아론 국장은 팔만대장경의 핵심인 반야심경에서 대승불교의 사상을 나타내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예로 들었다. 그는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가 아닌 무상(無常)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고정되거나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모두는 연결돼 있으며 만물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이 때문에 어느 한 곳의 혼란은 그곳만의 일이 아닌 모두의 문제가 된다"며 "지금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들은 이를 대변해주는 사례"라고 부연했다.
아론 국장은 불교가 종교보다 과학에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불교에서 부처님, 즉 신은 어디 멀리 있는 존재이거나 무언가 구원을 바라게 되는 대상이 아니다"며 "신은 바로 지금 여기,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불교에선 사후세계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사는 현재에 집중해 열정적으로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인도 철학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한국석유화학협회 초청 등 업무차 한국을 찾은 아론 국장은 일정이 촉박해 이번엔 사찰 여행을 다닐 수 없지만 조만간 꼭 시간을 내서 한국에 다시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교에서 사람은 누구나 나이, 직업에 구애 없이 타인과 자연에서 끊임없이 배우는 존재"라면서 "그렇기에 나 또한 평생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학생인 셈"이라며 웃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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